Tuesday, November 30, 2010

「한국을 찾아라」홍보를 위한 행진

올 해 나는 한국 학교 교사 25년 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어(국문학)를 전공한 것도 아닌데, 한국어(한글)교사를 하며 느끼는 점은 늘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교재를 구입하여 공부하고, 협회 연수는 거의 다 참석하며 듣고 배워 내 수업 자료로 만들어 사용했지만, 한계가 느껴지고 있을 때 온 라인 강좌라는 프로그램이 생기기 시작하여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쉽게 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올 여름 재외동포 재단과 함께 디지털 서울 문예대에서 내가 그렇게 부족하다고 느껴 공부해 보고 싶었던 분야를 위한 프로그램(한국어 교원 양성 과정)이 개설되어 두말 없이 영사관을 통해 등록하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미 한국 학교 협의회에서도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집중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국어학(한글)에 대한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배우면서 가르친다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기쁨이었는데, 올 해는 그 기쁨을 배로 누릴 수 있어 뿌듯함에, 교수법을 학습자에 맞게 정리를 해보고자 계획을 했는데, 「재외 한글 학교 교사 초청 워크숍」에 북 가주 협의회에서 발간한 「역사 문화 책, 한국을 찾아라 I」소개 및 시범 강사, 홍보 위원으로 추천 되어 서울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서, 구주 지역 13개국, 북미 지역 2개국, 아주 지역 12개국, 아중동 지역 12개국, 중남미 지역 7개국, CIS지역 8개국에서 총 175명이 참석하여 재외 한글 학교 교사의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일주일간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 되었는데, 나는 각 나라의 대표자 및 교장 선생님들께 협의회 발간 역사 문화 책 홍보를 위한 강의를 하였다.
주어진 시간 20분, 책의 발간 동기부터 사용법까지의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쉽고 빠르고 재미 있게 전하기 위해, 「왕소군과 모연수」중국고전 이야기를 동원하며 강의를 하였는데, 의외의 반응이 빨리 왔다. 대표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신 교장선생님들께서 시간이 되면 시범 강의를 부탁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퇴소하는 날까지 저녁 식사 후, 방을 돌며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및 시범 수업을 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모였지만, 그 동안 한글 수업을 하면서 늘 아쉬운 부분은 같았다.
한글 학교 교사로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갖는 역사 수업의 두려움,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교재가 막연히 없다는 점 등은 어느 나라던지 동일한 고민 덩어리였다.
교과 과정에 맞춰 유치반 과정부터 고급반 과정까지 시범 수업과정을 경청하던 교사들은 갈증 해소란 표현을 하며 이구동성으로 감탄하며 관심을 갖고 교재 구입을 즉석에서 신청 했다.
특히 CIS 지역에서 온 고려인 3세인 젊은 교사들은 매일 저녁 강의하는 방마다 찾아와 서툰 한국어로 질문을 하며 큰 관심을 보였고, 내 아들과 동갑인 23세의 김 블라디미르는 교재의 단원 명의 뜻까지 필기를 하는 열의를 보이며「세상의 주인」이 자기 이름의 뜻이라고 설명해 주기도 했다.
한글 보급을 목적으로 파견된 분들은 아니지만, 아 중동 지역에 요즘 불고 있는 한류의 열풍으로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드라마 등을 통한 접근이 좋은 방법인데, 노트북에 다운로드해 들고 다니지 못 함에 불편했는데, 교재의 교사용 CD를 보며 흡족해 하였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청와대 방문이 결정 되었다.
보통 그런 곳에 가면 지정 테이블에 앉아, 지정된 사람만 한두 마디 하게끔 철저한 사전 연습을 시키는데, 분명 가나가 순으로 테이블이 정해지면 제일 마지막 구석진 자리일 텐데,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역사 문화 책 」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을까 고민하였다.
생각대로 구석진 자리, 정해진 발표자 외에 두 명의 발언자에서도 선택되지 않아, 온통 기회를 잡을 생각 밖에 없었는데, 대륙 별로 사진 촬영이 있다 하기에 무조건 앞쪽 줄에 섰지만, 앞줄은 지정석이라 뒷줄로 또 밀렸다. 사진 촬영 후, 내려 올 때 기회를 잡아 다른 대륙의 교사들이 줄을 서는 동안 김윤옥 영부인께 책에 대해 설명한 후, 한 권 드리고 싶다고 하자 제지를 하여, 기회를 엿보았다.
모든 사진 촬영이 끝난 후, 재외 동포재단 권영건 이사장님을 앞세워 다시 잠깐 만나 보충 설명을 드리니, 주변의 제지를 뿌리치는 장면을 보셨는지「그 용기로 계속 힘써 주세요」하시며 비서실로 책을 보내 달라고 하셨다. 일단의 성공, 퇴소하는 날, 총알 택시를 타고 나는 홍보대사로서 책임을 완수 했다.
저녁 시간을 활용하여 책을 소개할 때는, 그 동안 학교에서 내가 수업 했던 자료들을 보여 주며 이렇게 수업을 했었는데, 「역사 문화 책 I」의 발간으로 인해 보다 더 좋은 자료들로 수업할 수 있다고 덧붙여 설명하기도 했다.
열심히 책을 소개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한글 날 특집 다큐 팀」이라는 PD가 한참을 지켜 보더니 2,30분 정도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책을 출판 하게 된 동기, 교재 사용법, 교재 호응도 등 다양한 질문에, 나는 정성을 다해 대답하며 촬영에 임했다. (YTN 한글 날 특집, 「한글, 세계를 품다」로 방영 됨.)

워크숍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위한 공부 방 몇 곳을 방문 했다.
아직 한국 말이 서툰 어머니와 자녀들이 하루 세 시간씩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기회를 얻어 오전 오후 두 곳에서 세 시간씩 수업을 했다.
역사 문화 책의 빈 지도에 살고 있는 곳, 가 보고 싶은 곳을 표시하며 지역 특산물까지 찾아 보고, 김치 담그는 법, 처음 담그며 겪은 일등 이국 생활을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위로자가 되어 가고 있어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모교를 방문하여 유학 온 중국 학생들을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 교재의 선덕여왕 부분에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벌써 역사 학자가 되어 있었고 가지고 간 책이 한 권도 없어 기부를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귀국하여, 워싱턴 DC의 초청에 협회에서 또 추천을 해 주셨다.
전체 강의 역사 문화 한 시간 40분, 분 반 강의 SAT II 한국어 두 시간이 주어졌다.
워싱턴 DC는 고학력의 분들이 계신다는 정보를 갖고 더 많은 준비를 하고 갔다.
이미 서울에서 강의를 한번씩 들은 교사들이 있어 그 분들의 소개로 이미 교재에 대해 듣고 있는 분들이 많았고, 내노라는 역사 학자들도 계셨고, 미 현지 정규학교의 교사도 계셔서 시간을 잘 활용하면 효과가 배가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강의 중 돌발의 질문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 질문을 무시해도 괜찮을 만큼 나는 사전 준비를 해 가서 두렵지 않았다.
워싱턴 DC 지역은 워싱턴, 메릴랜드, 버지니아 지역이 연합된 곳으로, 미 정치 일 번지 지역임에도 우리의 역사 문화 교재는 꼭 필요하고 유용한 교재임이 다시 한번 인증되었다.
이곳을 다녀오며, 정저지와 (井底之蛙), 학생들에게 늘 가르쳤던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출강이었다.
시애틀은 올해 두 번을 다녀 왔다.
집중 연수를 받기 위해 한 여름에 다녀 왔고, 집중 연수를 하기 위해 결실의 계절 가을에 갔다.
역사 문화 교재로 하는 한글 수업, 전체적인 수업 과정 등, 네 시간을 쉬지 않고 연속으로 강의를 하며 그 동안 한국 학교에서 배우며 쌓은 경험을 나누는데, 선교지로 다음 주에 떠나는 분께서 강의를 들으시다 질문을 하셨다.
혹시 그 교재 선교지에 바칠 의사가 없느냐 고.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 있습니다.

그 동안 쉬지 않고 학생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가르치던 것이 이 가을 이렇게 결실로 맺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며, 어디든지 언제던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이제는 즐겁게 풀어 놓아, 교재를 사용한 모든 분들이 이 교재가 한국을 알리는 문화 외교서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게 될 그날까지 함께 하고 싶다.

Tuesday, November 23, 2010

가을 편지

1980년 5월 18일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던 친구를 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나게 되었다.
시를 무척 좋아하던 친구는 3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나왔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한 작은 수첩을 꺼내, 시 한편을 읽어 준다.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 하지 않은 코스모스처럼/ 풋풋한 가을향기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차 한 잔을 마주하며 / 말없이 눈빛만 마주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빛처럼 /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 속에 / 향기가 녹아 들어 / 그윽한 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 / 초라하지 않으면서 /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에 억새처럼 출렁이는 / 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시를 잘 쓰던 친구라 당연히 친구의 작품인 줄 알고, 안경의 초점을 맞춰 가며 깨알처럼 적힌 시를 천천히 음미하며 낭독하는 중에, 요즘 유행하는 최신식 전화겸용 컴퓨터까지 되는 작은 패드를 손가락으로 밀 듯 무언가에 집중하던 친구가 하는 말, “아! 이 분” 그럴 줄 알았다는 투다.
이외수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란 시였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은 대학 신입생이라 해도 손색이 없고, 50을 넘긴 중년이란 표현이 무색했다.

늦가을의 파란 하늘을 쳐다 보니 여름에 읽었던 그 시가 생각나며, 함께 한국 학교 교사를 하셨던 박혜서 선생님이 떠올라 그 시를 메일로 보내 드렸더니, 뜨끈 뜨끈하게 도착한 선생님의 마음, 「miss you~ 」라 써 있는 파란 카드와 함께 한편의 시를 선생님도 보내 주셨다.

수확의 가을이 끝나면 /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자신들의 시린 발목을 덮는다.
바람이 불면 세월의 편린처럼 / 흩날리는 갈색 엽신들.

모든 사연들은 / 망각의 땅에 묻히고
모든 기억들은 / 허무의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다.

나무들은 인고의 겨울 속에 / 나신으로 버려진다.

낙엽은 퇴락한 꿈의 조각들로 썩어가지만 / 봄이 되면 다시금 푸른 숲이 된다.

숲의 영혼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낙엽 / 이외수)

친구가 읽어 준 시와 선생님이 보내 주신 시를 연결하여 몇 번을 읽으며, 가을로 빠져 드는데,
논어 학이편(論語 學而篇)의 명언 중 명언이 기억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공자 가라사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다.
벗이 있어 생각을 함께 나눔이 이렇게 큰 기쁨이 되어짐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가슴 깊이 느껴진다.

Friday, October 29, 2010

Mr. Rogers’ Neighborhood

언젠가, 아들은 컴퓨터로 열심히 무엇을 보느라 부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정신 없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하여 가까이 가서 보니, 체크 무늬 모직 스웨터를 입은 미스터 로저스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컴퓨터 속의 후레드 로저스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넋 놓고 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딸아이도 함께 합석을 하여 미스터 로저스가 하는 말에 숨을 죽이며 듣고 있었다.
「다 큰 애가 뭐 이런걸 보느냐」는 질문에 아들은 어렸을 적 「Mr. Rogers’ Neighborhood」은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은 모든 것, 새로운 물건들의 사용 방법, 일반 생활의 기본 상식, 예절 등을 가르쳐 준 TV 프로그램이라면서 지금도 컴퓨터에 저장을 해 놓고 그 때를 생각하며 자주 보곤 한다고 하니, 딸도「맞아!」하며 맞장구를 친다.
돌이켜 보니 그렇다.
미국 생활이 생소한 상황에서 아이는 태어났고, 일은 해야 하는 형편이니 교육 방송 격인 채널 9을 아이에게 계속 틀어 주게 되어, 아이는 자연스럽게 이 프로가 바로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이 프로를 통해서 미국을 배우며 경험하게 되었다.
동생이 태어나도 상황은 변하지 않아 두 남매가 늘 함께 보면서 곧장 잘 따라 하며 미국의 문화에 적응되어 갔다.
서너 살 무렵, 아이는 갖고 놀던 작은 장난감들을 줄을 맞춰 정리 정돈 하며 무어라 하기에 무슨 소리인가 물으니 미스터 로저스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여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때 잘 배워 습관이 들어서인지, 지금도 혼자 사는 아파트에 가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정리 정돈을 철저하게 해 놓고 살며, 이웃에 대한 예의, 예절이 반듯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은 사뭇 다르다.
「Mr. Rogers’ Neighborhood」와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아서인지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아서인지 정리 정돈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업 후에도 자기 물건이나 앉았던 의자조차도 아무렇게나 두고 교실을 도망치듯 떠나고, 심지어는 데리러 오시는 부모님들도 이런 상황을 묵인할 때가 많다.
사용한 컵도 책상 위에 그대로 놓고, 사용한 냅킨 또한 바닥에서 뒹굴어도 줍는 경우가 흔치 않고, 여럿이 모여 함께 간식을 할 때도 어른들이 들기 전에 불쑥 손을 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분명 함께 하는 간식이면 서로 적당 량을 나누어 가져가 먹는 것이 보이지 않는 약속인데, 주변 사람 생각 않고 혼자만 야금 야금거려도 주의를 주지 않으니 가끔은 교사로서 훈계를 하면 서운한 듯 몇 주 영 불편하다.
특히 한국 학교 수업 시간 지키기는 가장 어려운 듯, 첫째 시간 수업은 거의 자유 시간이 될 때가 많다. 수업 준비물과 숙제도 학부모님과 자녀가 서로 떠밀며 탓만 하면서, 모르쇠를 잡는다.
그러면, 이 학생들이 가정과 미국 정규 학교 생활도 이럴까?
대부분 부모님들께서는「절대 아니다.」라고 대답하신다. 무엇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왜 한국 학교에서만 학생들의 행동이 이런 것이지?
교사들은 매 시간 목에 힘줄이 돋도록 목소리 높여 설명을 하고 부탁을 하며「절대 하지마!」「절대 안 돼!」를 외치는데 왜「절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다정하게 얼굴을 마주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하며, 몇 번씩이라도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는 후레드 로저스가 문득 생각이 난다.
한번의 설명이 두 번째는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하는 훈계로 바뀌고, 세 번째는 마지 못해 짜증 섞인 명령을 하는 권위 있는 교사로서 교실을 지키기에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었는지 되돌아 보며, 학년 초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서약한 서약서의 내용에 다시 한번 나를 비추어 본다.
「우리는 세종한국학교 태극기 반입니다.
우리는 선생님과 모든 반 친구들을 존중하며, 우리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집니다.
한국 학교에 와서 많이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며 숙제를 잘 하겠습니다.
학교의 약속을 지키고 훌륭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랄 것입니다.」

Monday, October 18, 2010

깻잎 머리

대학 때 가정교사를 했던 학생의 어머님께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오셨다.
3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멋쟁이이신 어머님은 광수(그 개구쟁이 학생, 지금은 치료 잘 한다고 시내에서 입 소문난 유명한 치과 의사)의 소식을 전하며, 광수가 꼭 선생님께 자장면을 대접해 드리라 했다며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따라 나섰다.
동네에서 제일 비싸다는 중국집으로 가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이 더위에 무슨 자장면을 먹는담?」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때를 맞춰 광수가 전화를 해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하는 듯 감미로운 목소리가「선생님~」을 불러 주며, 꼭 자장면과 탕수육을 드시라고 한다.
목소리에 취해 얼떨결에「왜?」라고 물으니, 과외 받던 때, 시험만 끝나면 사주셨던 자장면에 대한 선생님의 추억이라며, 출국 전 치과에 들려 진료 받고 가라는 말까지 한다.
맛보다 감동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남김없이 먹고 나오는 데, 머리가 벗겨져 더 늙수그레한 깡마른 남자가 배달 통을 들고 들어오며, 나와 동행하신 분들을 보고 웃으며 다가오다 내 쪽을 보더니 반가움이 역력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순간 움찔 놀라 귀를 의심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이었다.
듣기로는 대기업에 다닌다고 했었는데, 강제 명퇴한 후 고향에 와서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내 얘기가 나왔다며 배달 밀렸다고 성화인 부인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40여 년 세월을 한달음에 쏟아 내며, 내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며 아직껏 변하지 않은 깻잎 머리(지금 용어로)를 말했다.
지금에야 헤어 스프레이도 있고 젤도 있고 폼도 있지만 그 당시는 보통 앞머리를 일자로 짧게 자르던지, 옆으로 넘겨 실핀으로 고정하는 정도였는데, 최신 유행인 「윤복희」
스타일로 멋을 한껏 부리던 나는 앞머리를 비스듬히 내려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를 고정하고 다녔었는데 부러움의 대상으로 눈총을 자주 받곤 했었다.
친구는 여기 저기 전화를 열심히 하면서 반창회를 열자고 했다. 내 일정은 무시한 채.
연결된 전화를 건네며 거울 보듯 통화하라고 하기에 신기함에 보니 영상 통화였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내 기억에서도 한번도 지워지지 않았던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일거수 일투족 기억해 주시며, 아직도 앞머리 내리고 다니냐고 물으신다.
너무나 뵙고 싶고 그리웠던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눈물을 보이시며 보고 싶었다고 하신다.
점심 장사 망쳤다고 투덜대던 안주인도 내 동생의 동창생이라며 얼음을 동동 띄운 수박 화채를 들고 나와서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군다.

한 나절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와 닿아 하루가 아쉬움에 일렁거린다.
나도 교사가 되리라고 다짐하도록 했던 선생님.
50이 넘은 제자를 아직까지도 일일이 기억하며 칭찬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선생님.
이런 든든한 선생님이 계시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늘 지켜주고 칭찬으로 이끌어 주는 그런 교사, 또 학생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 한번쯤 뵙고 싶어하는 그런 교사가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Thursday, September 16, 2010

제빵 왕 김탁구

온 나라가 폭염주의보로 후끈 달아 오른 8월,
마냥 바라보던 솟대와 멱 감던 실개천이 있는 고향을 방문했다.
열대야로 밤을 낮 삼아 한 바퀴 돌아본 동네에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그 모습은 낯선 도시로 탈바꿈되어 솟대가 있던 곳에는 빌딩이, 실개천은 메워져 상설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하던 큰 느티나무는 청남대로 떠나고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팔각 정자가 들어 와 있었다.
다음 날, 들른 상당 공원에는 다니던 여학교가 이전을 해서인지 추억을 찾기에는 어설프고, 동아 극장이 없어진 후 처음 들어선 도민 탑만 덩그러니 보이며,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였다는 큰 표지판만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 뒷길(지금은 상당로)을 따라 한참 올라가 수암골 쪽으로 가니, 한참 뜨고 있다는 드라마 촬영 일이 잡혀 있다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나도,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하며, 달 동네이었던 이곳이 벽화로 단장되며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새로운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팔봉 제빵 점(1947년부터)안으로 들어가 보니 드라마에서 언급된 빵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올 적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관광객의 푸념은 자주 방문을 했다는 의미인가 보다.

팔봉 제빵 점에서 꿈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 김탁구, 이번 워크샵 기간 동안 나는 김탁구 같은 한 청년을 만났다.
키르키즈스탄 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온 고려인 3세, 김 블라디미르.
올해 나이 스물 셋,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앳된 이 청년은 교사 워크샵에 어떻게 온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한국어가 어줍었다.
「한국을 찾아라」역사 문화 책을 소개하고 시범 강의를 한 후, 시간만 되면 옆으로 와 특히 역사에 대해 묻던 내 아들 나이의 이 청년은 오랜 민족 분쟁으로 인해 근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나라에서, 오전에는 사립 학교에서 초등 학생을 대상으로, 낮에는 키르키즈스탄 국립대학교에서, 저녁에는 한국 교육원에서 고려인 보다 성인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한국의 문화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로 인하여 급속도로 전파되었지만, 역사는 교육 하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교재뿐이라며, 역사의 뿌리 없는 문화만 날 뛰어 수업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걱정이다.
한때 한국에 대한 멋있는 꿈 때문에 한국인 기업에 취업을 했었는데, 키르키즈스탄 문화 속에서 자란 자신과 회사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실망만 하고 떠났지만, 대신 대단한 매력이 있는 한국어 교사로서 미래의 꿈을 만들며 펼쳐가고 싶다며, 이름 블라디미르는 세상의 주인이란 뜻이라고 귀띔한다.
세 곳에서 바쁘게 한국어 강의를 하면「배우자 후보 순위 1위?」라는 질문에, 오죽하면 세 곳을 돌며 강의를 하겠느냐며 반문을 한다.
생계 유지가 어려워 남자가 하지 않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한국어 교사이며, 여자 친구 만들기도 힘들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며 불안한 미래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고려인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높을 탁(卓), 구할 구(求) 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가장 배 부른 빵을 만들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어 내며 명인의 자리까지 오른 이 시대 제빵 업계의 그 분처럼, 자신의 뿌리의 혼이 담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생계 유지조차 힘든 현실이지만,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이름이 실현되는 그 날이 건강한 이 청년 블라디미르에게도 곧 올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Tuesday, August 31, 2010

노란 운동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아들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로 받았다.
쿠션 없이 밋밋하게 평평한 고무 바닥, 갈색 가죽 안창, 데님 같은 천으로 만들어져 발등을 감싸는 스타일의 가볍고 편한 운동화인데, 색깔이 노란 색이라 선뜻 신기가 쉽지 않아 겨울이 지나고, 봄을 보낸 후, 여름 맞이로 흰 바지를 입을 때 잠깐 신어 보았다.
7부 흰 바지에 신은 이 노란 운동화를 제일 먼저 알아 준 학생은 운동화 마니아 민우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계속 책상 밑을 주시하더니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신발을 벗어 보라고 안달, 너무 깜찍하다며 어디서 샀느냐고 묻는다. 「아들의 선물」이라는 답으로 하루를 마쳤고, 그 다음 주, 민우는 내 신발과 똑 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고 수업에 들어 왔다.
2006년 여름, 아르헨티나를 여행 중이던 블레이크 마이코스키이라는 미국의 젊은이가 맨발로 걸어 다니는 현지 아이들의 가난한 생활을 목격한 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그 지역의 민속화인 알파르가타를 본 후, 영감을 얻어 제작해 한 켤레가 팔릴 적마다 제3세계의 신발 없는 아이들에게 기부하겠다는 창업 약속을 한 신발이라, 좋은 일 한 번 해보고 싶어 온라인 주문으로 샀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발이름의 의미는 내일을 위한 신발(Shoe for Tomorrow)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2010년 여름, 아들이 사주고, 민우가 알려 준 의미 있는 노란 운동화를 신고, 나는 내일을 위한 한글 교사로서 열심히 뛰어 다녔다.
6월, 9주간의 사이버 연수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어학, 일반 언어학 및 응용 언어학,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론 영역, 한국 문화, 한국어 교육 실습, 그리고 영 유아 교수 방법론, 학습 심리학, 아동 상담, 아동 생활지도와 놀이 지도까지 새로운 학문을 접했다.
7월에는 시애틀에서 재미 한국 학교 협의회의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집중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다시 공부하며 정리하였고, 8월에는 한국으로 가서, 재외 한글 학교 교사 초청 워크숍을 통해 한국어 교육의 큰 그림을 보았다.
또 세계의 한국어 교사들에게 북 가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편찬 출판한 역사 문화 책을 소개하며 강의 시연을 하고 각국의 교사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현지 실정에 맞는 교육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9월, 이제는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교의 개학을 준비한다.
여름 동안 배우고 익힌 학문을 교실에서 직접 풀어 놓으며, 배우고 경험한대로 우리 학생들에게 좀더 유익한 내용의 수업을 재미있게 하여, 글자만 가르치기보다는 살아 있는 역사와 문화, 전통 예절을 알려 주며 체험하게 하면서, 글자 속에 담긴 민족의 정신, 혼까지도 가르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명명된, 내일을 위한 신발(Shoe for Tomorrow)을 창안한 것처럼, 이제 25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내일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좀 더 현실적이고, 현지화 시킨 재미있고 꼭 알아야만 하는 우리의 것으로 각인시켜 배우게 하고, 더 나아가 타 민족에게까지 보급하여 세계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본다.

Wednesday, July 7, 2010

김철수 선생님

6월의 함성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주며, 역시 박지성임을 다시 확인하게 하였다.
6월 12일, 4년을 기다려온 역사적인 날, 남아공 월드컵 첫 게임, 그리스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대결을 하는 날이었다.
한국 학교는 방학을 했지만, 개인으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저녁에 예정되어 있어서 수업을 위해 (학생들과 대화가 되려면) 축구 중계방송 시청을 새벽부터 하게 되었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에 느닷없이 남아공 월드컵 한국 대표팀 최종 엔트리가 누군지 아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끙끙대던 내 모습이 우스웠던지, 다른 한 학생이 친절하게 이 메일로 방송 시간과 채널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덧붙인 설명, 그리스는 키 큰 선수들이 많고 세계 13위, 2004 유로 우승팀.
아직까지 한국이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이긴 적이 없으니 이번에 그리스 팀을 이길 수 있도록 꼭 응원할 것.
학생의 연락을 받고 신문을 찾아, 선수와 그들의 등 번호, 포지션, 그리스 전에 출전하는 선수 명단 등을 알아 보고 경기를 시청하니 훨씬 재미 있었다.
쉰 목소리로 진행한 저녁 수업 시간, 교사와 학생은 혼연 일치로 한 시간 내내 첫 골의 주인공 이정수와 그림 같은 쐐기 골을 터뜨린 주장 박지성에 대해 아는 대로 열을 올리며 칭찬일색으로 수업을 마쳤다.

박지성을 닮고 싶어하는 한 학생이 있다.
평발, 볼품없이 깡마른 체격, 작은 키로 이 지역 축구 팀에 속해 있는 민영이는 박지성 박사다.
그 옛날 펠레나 마라도나같이 화려한 개인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차범근처럼 총알 같은 스피드를 가진 것도 아닌, 프로팀은커녕 대학 진학조차 힘들었던 평범한 청년 박지성을 자서전으로 만난 민영이는 늘 박지성을 영웅으로 노래한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날의 박지성을 보며 그의 성실한 노력과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만을 이야기 하는데, 이 보다 앞서 탄탄한 기본기, 강철같은 체력, 영리한 전술구사 능력을 소리 없이 만들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은 안양 초등학교에서 이영표 선수를 이미 키웠고, 수원 세류 초등학교로 전학 온 축구를 좋아하는 박지성을 만난 그가 어린 박지성에게 제일 처음 시킨 것은 리프팅 연습이었다. 어린 박지성 선수에겐 지겹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온 3년의 리프팅 연습, 그의 6가지 기본 전술에 응용 기술을 더해 익혀 가던 박지성은 어린 나이에 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 전체를 볼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전날에는 자기가 뛰게 될 모습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게 하면서 스스로 경기를 만들어가게끔 하는 상상 속의 축구경기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며 창의력을 갖게 했다.
격려와 긍정적 사고로 가르침을 받은 오늘의 영웅인 이영표와 박지성, 그 외의 선수들을 키워 낸, 그 분은 바로 김철수 선생님이다.

한글 학교 교사를 하면서 한번도 생각 못한 교육 방법, 이미지 트레이닝.
끊임 없는 격려와 따뜻한 위로로 긍정적 사고를 가질 수 있게 가르치신 분,
그 분이 감당한 2%의 역할로 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100% 안겨주며 많은 학생들이 꿈을 갖게 해준 분, 사재를 털어서라도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 기억되지 않고,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 그 곳에서 변함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분, 이 분을 교사로서 닮고 싶다.
훗날, 우리 학생들이 각자의 직위에 맞는 곳에서 대화를 할 때, 조국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모국어가 있다면, 거리낌 없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랑스런 학생들을 상상하며,
김철수 선생님!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