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16, 2010

제빵 왕 김탁구

온 나라가 폭염주의보로 후끈 달아 오른 8월,
마냥 바라보던 솟대와 멱 감던 실개천이 있는 고향을 방문했다.
열대야로 밤을 낮 삼아 한 바퀴 돌아본 동네에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그 모습은 낯선 도시로 탈바꿈되어 솟대가 있던 곳에는 빌딩이, 실개천은 메워져 상설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하던 큰 느티나무는 청남대로 떠나고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팔각 정자가 들어 와 있었다.
다음 날, 들른 상당 공원에는 다니던 여학교가 이전을 해서인지 추억을 찾기에는 어설프고, 동아 극장이 없어진 후 처음 들어선 도민 탑만 덩그러니 보이며,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였다는 큰 표지판만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 뒷길(지금은 상당로)을 따라 한참 올라가 수암골 쪽으로 가니, 한참 뜨고 있다는 드라마 촬영 일이 잡혀 있다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나도,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하며, 달 동네이었던 이곳이 벽화로 단장되며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새로운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팔봉 제빵 점(1947년부터)안으로 들어가 보니 드라마에서 언급된 빵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올 적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관광객의 푸념은 자주 방문을 했다는 의미인가 보다.

팔봉 제빵 점에서 꿈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 김탁구, 이번 워크샵 기간 동안 나는 김탁구 같은 한 청년을 만났다.
키르키즈스탄 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온 고려인 3세, 김 블라디미르.
올해 나이 스물 셋,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앳된 이 청년은 교사 워크샵에 어떻게 온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한국어가 어줍었다.
「한국을 찾아라」역사 문화 책을 소개하고 시범 강의를 한 후, 시간만 되면 옆으로 와 특히 역사에 대해 묻던 내 아들 나이의 이 청년은 오랜 민족 분쟁으로 인해 근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나라에서, 오전에는 사립 학교에서 초등 학생을 대상으로, 낮에는 키르키즈스탄 국립대학교에서, 저녁에는 한국 교육원에서 고려인 보다 성인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한국의 문화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로 인하여 급속도로 전파되었지만, 역사는 교육 하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교재뿐이라며, 역사의 뿌리 없는 문화만 날 뛰어 수업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걱정이다.
한때 한국에 대한 멋있는 꿈 때문에 한국인 기업에 취업을 했었는데, 키르키즈스탄 문화 속에서 자란 자신과 회사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실망만 하고 떠났지만, 대신 대단한 매력이 있는 한국어 교사로서 미래의 꿈을 만들며 펼쳐가고 싶다며, 이름 블라디미르는 세상의 주인이란 뜻이라고 귀띔한다.
세 곳에서 바쁘게 한국어 강의를 하면「배우자 후보 순위 1위?」라는 질문에, 오죽하면 세 곳을 돌며 강의를 하겠느냐며 반문을 한다.
생계 유지가 어려워 남자가 하지 않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한국어 교사이며, 여자 친구 만들기도 힘들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며 불안한 미래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고려인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높을 탁(卓), 구할 구(求) 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가장 배 부른 빵을 만들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어 내며 명인의 자리까지 오른 이 시대 제빵 업계의 그 분처럼, 자신의 뿌리의 혼이 담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생계 유지조차 힘든 현실이지만,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이름이 실현되는 그 날이 건강한 이 청년 블라디미르에게도 곧 올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Tuesday, August 31, 2010

노란 운동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아들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로 받았다.
쿠션 없이 밋밋하게 평평한 고무 바닥, 갈색 가죽 안창, 데님 같은 천으로 만들어져 발등을 감싸는 스타일의 가볍고 편한 운동화인데, 색깔이 노란 색이라 선뜻 신기가 쉽지 않아 겨울이 지나고, 봄을 보낸 후, 여름 맞이로 흰 바지를 입을 때 잠깐 신어 보았다.
7부 흰 바지에 신은 이 노란 운동화를 제일 먼저 알아 준 학생은 운동화 마니아 민우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계속 책상 밑을 주시하더니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신발을 벗어 보라고 안달, 너무 깜찍하다며 어디서 샀느냐고 묻는다. 「아들의 선물」이라는 답으로 하루를 마쳤고, 그 다음 주, 민우는 내 신발과 똑 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고 수업에 들어 왔다.
2006년 여름, 아르헨티나를 여행 중이던 블레이크 마이코스키이라는 미국의 젊은이가 맨발로 걸어 다니는 현지 아이들의 가난한 생활을 목격한 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그 지역의 민속화인 알파르가타를 본 후, 영감을 얻어 제작해 한 켤레가 팔릴 적마다 제3세계의 신발 없는 아이들에게 기부하겠다는 창업 약속을 한 신발이라, 좋은 일 한 번 해보고 싶어 온라인 주문으로 샀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발이름의 의미는 내일을 위한 신발(Shoe for Tomorrow)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2010년 여름, 아들이 사주고, 민우가 알려 준 의미 있는 노란 운동화를 신고, 나는 내일을 위한 한글 교사로서 열심히 뛰어 다녔다.
6월, 9주간의 사이버 연수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어학, 일반 언어학 및 응용 언어학,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론 영역, 한국 문화, 한국어 교육 실습, 그리고 영 유아 교수 방법론, 학습 심리학, 아동 상담, 아동 생활지도와 놀이 지도까지 새로운 학문을 접했다.
7월에는 시애틀에서 재미 한국 학교 협의회의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집중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다시 공부하며 정리하였고, 8월에는 한국으로 가서, 재외 한글 학교 교사 초청 워크숍을 통해 한국어 교육의 큰 그림을 보았다.
또 세계의 한국어 교사들에게 북 가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편찬 출판한 역사 문화 책을 소개하며 강의 시연을 하고 각국의 교사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현지 실정에 맞는 교육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9월, 이제는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교의 개학을 준비한다.
여름 동안 배우고 익힌 학문을 교실에서 직접 풀어 놓으며, 배우고 경험한대로 우리 학생들에게 좀더 유익한 내용의 수업을 재미있게 하여, 글자만 가르치기보다는 살아 있는 역사와 문화, 전통 예절을 알려 주며 체험하게 하면서, 글자 속에 담긴 민족의 정신, 혼까지도 가르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명명된, 내일을 위한 신발(Shoe for Tomorrow)을 창안한 것처럼, 이제 25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내일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좀 더 현실적이고, 현지화 시킨 재미있고 꼭 알아야만 하는 우리의 것으로 각인시켜 배우게 하고, 더 나아가 타 민족에게까지 보급하여 세계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본다.

Wednesday, July 7, 2010

김철수 선생님

6월의 함성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주며, 역시 박지성임을 다시 확인하게 하였다.
6월 12일, 4년을 기다려온 역사적인 날, 남아공 월드컵 첫 게임, 그리스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대결을 하는 날이었다.
한국 학교는 방학을 했지만, 개인으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저녁에 예정되어 있어서 수업을 위해 (학생들과 대화가 되려면) 축구 중계방송 시청을 새벽부터 하게 되었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에 느닷없이 남아공 월드컵 한국 대표팀 최종 엔트리가 누군지 아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끙끙대던 내 모습이 우스웠던지, 다른 한 학생이 친절하게 이 메일로 방송 시간과 채널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덧붙인 설명, 그리스는 키 큰 선수들이 많고 세계 13위, 2004 유로 우승팀.
아직까지 한국이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이긴 적이 없으니 이번에 그리스 팀을 이길 수 있도록 꼭 응원할 것.
학생의 연락을 받고 신문을 찾아, 선수와 그들의 등 번호, 포지션, 그리스 전에 출전하는 선수 명단 등을 알아 보고 경기를 시청하니 훨씬 재미 있었다.
쉰 목소리로 진행한 저녁 수업 시간, 교사와 학생은 혼연 일치로 한 시간 내내 첫 골의 주인공 이정수와 그림 같은 쐐기 골을 터뜨린 주장 박지성에 대해 아는 대로 열을 올리며 칭찬일색으로 수업을 마쳤다.

박지성을 닮고 싶어하는 한 학생이 있다.
평발, 볼품없이 깡마른 체격, 작은 키로 이 지역 축구 팀에 속해 있는 민영이는 박지성 박사다.
그 옛날 펠레나 마라도나같이 화려한 개인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차범근처럼 총알 같은 스피드를 가진 것도 아닌, 프로팀은커녕 대학 진학조차 힘들었던 평범한 청년 박지성을 자서전으로 만난 민영이는 늘 박지성을 영웅으로 노래한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날의 박지성을 보며 그의 성실한 노력과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만을 이야기 하는데, 이 보다 앞서 탄탄한 기본기, 강철같은 체력, 영리한 전술구사 능력을 소리 없이 만들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은 안양 초등학교에서 이영표 선수를 이미 키웠고, 수원 세류 초등학교로 전학 온 축구를 좋아하는 박지성을 만난 그가 어린 박지성에게 제일 처음 시킨 것은 리프팅 연습이었다. 어린 박지성 선수에겐 지겹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온 3년의 리프팅 연습, 그의 6가지 기본 전술에 응용 기술을 더해 익혀 가던 박지성은 어린 나이에 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 전체를 볼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전날에는 자기가 뛰게 될 모습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게 하면서 스스로 경기를 만들어가게끔 하는 상상 속의 축구경기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며 창의력을 갖게 했다.
격려와 긍정적 사고로 가르침을 받은 오늘의 영웅인 이영표와 박지성, 그 외의 선수들을 키워 낸, 그 분은 바로 김철수 선생님이다.

한글 학교 교사를 하면서 한번도 생각 못한 교육 방법, 이미지 트레이닝.
끊임 없는 격려와 따뜻한 위로로 긍정적 사고를 가질 수 있게 가르치신 분,
그 분이 감당한 2%의 역할로 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100% 안겨주며 많은 학생들이 꿈을 갖게 해준 분, 사재를 털어서라도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 기억되지 않고,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 그 곳에서 변함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분, 이 분을 교사로서 닮고 싶다.
훗날, 우리 학생들이 각자의 직위에 맞는 곳에서 대화를 할 때, 조국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모국어가 있다면, 거리낌 없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랑스런 학생들을 상상하며,
김철수 선생님! 존경합니다.

Tuesday, July 6, 2010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코 높이만큼 높아진 입에,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엉덩이로 문을 열며 들어온 아이는 수업 중임에도 책상에 엎드려 한숨만 쉰다.
이럴 때는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 경고보다는 무관심이 최선이다.
「자~, 이 글은 수필가 피천득님의 금아문선에 실린 글로 외동딸 서영이에게 보내는 글이다. 정확하게 소리 내어 잘 읽고, 잘 듣는다. 그럼 이쪽부터 시~작」
한 문단씩 읽어 가고 있는데 엎드려 있던 아이, 「저는 그 종이 못 받았는데요」 하며 부스스 일어나 교재 복사물을 찾는다. 화를 많이 삭인 듯 보인다.
교재를 다 읽고 글의 종류를 설명해 주고, 누가 누구에게 쓴 글인가에 대한 질문에 반 학생들은 한결같이 의아해 한다. 왜 편지를 써요?
하기야 이 책이 출판 되었을 때가 반 학생들의 부모님 출생 년도보다 오래 전이니까 시대를 이해 하기 어렵겠지.
쉬는 시간이 되기 무섭게 모두 나가는데 이 아이는 멍하니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프롬 갈 생각?」관심을 보이면 털어 놓게 돼있다. 오늘 아침에 엄마와 싸웠단다. (싸웠다는 표현에 깜짝 놀랐지만) 누가 이겼냐고 물으니 멋쩍게 웃는다.
준비 된 둘째 시간 수업 급 변경, 칠판에 시조 한 수를 적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이 몸이 있었을까 하늘 같은 가 없는 은혜 어디 대어 갚사오리.」
아버지가 딸에게 자상하게 쓴 편지를 읽었고, 부모님의 끝없는 은혜를 노래한 시조 한 수를 읽으며 시작한 둘째 시간에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도록 했다.
「어머니 날이 오니까 이거 너무 형식적이지 않아요?」하며 수업거부를 한다.
가끔 애용하는 준비된 노래를 들려 준다.
「엄마가 보고플 땐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엄마가 그리울 땐 엄마 편지 다시 보고, 엄마 내음 느껴지면 눈물이 납니다……」
촌스럽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면서 흥얼거린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분위기 최고조일 때 빨리 감정 정리하여 편지 마무리 하라고 하자, 엄마와 싸웠다는 이 아이, 울면서 하는 말, 「선생님 그 노래는 제발 틀지 말아요」
세대를 막론하고 엄마란 단어는 눈물 샘을 자극하고, 콧등을 시리게 하고, 가슴을 저미게 하나 보다.
흰 종이에 「엄마 미얀해요」만 연거푸 써 놓고 아이는 깊은 반성을 하나보다.
「그만~」이라고 하자, 아이는 더 진하게 쓴다. 「엄마 살랑해요」라고.

치어 리더

처음 치어리더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만 띄웠다.
치어리더란 그저 좀 예쁘고 몸매 괜찮은, 아니면 선생님께서 봐 주는 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하고 싶으면 누구라도 금방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 했었다. 초등 학교 운동회 때면 꼭 앞으로 불려 나가, 우리 편 이겨 라, 힘 내라, 힘! 을 외칠 때마다 꽃 수술을 손에 들고 흔들며 응원가 리듬에 따라 무용을 했던, 나의 그 수준으로 치어리더를 생각하고, 그래도 우리 애는 전후자 모두 해당 사항일 테니까 하는 엄마의 무지의 자만으로, 아이는 그 웃음을 긍정에 가깝게 받아 들였다.
학기가 끝날 무렵, 신청서를 내고 혼자 집에서 뭔가를 열심히 연습한다.
혼자 작품을 만들어 연습하는 거란다. 일차 오디션 시범용으로.
서류 심사 되고, 일차 관문에 통과되고, 배워 온 기본 동작으로 이차 심사가 남아 있는데, 연습 도중 넘어져 팔과 발목을 다치게 되었다.
울고 불고 난리 법석이 일어났다. 「야, 네가 안되면 누가 되냐? 걱정 마, 걱정 마」 하며 안심을 시키지만 이것도 여기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엄마의 어기 장에 불과 한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지만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연습 일마다 비록 연습은 하지 못 하더라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했다.
기다리던 날, 아이는 팔 보호대를 어깨에 메고 다리를 절면서 마지막 오디션에 참가 하였다.
평소 실력만큼, 연습한 만큼 실력 발휘 못 했다고, 기회를 다시 한번 달라고, 코치에게 부탁 해도 형평성으로 인한 규칙으로 아이는 시무룩하게 집으로 돌아 왔다.
그 날 저녁, 우리는 기도원에 올라 갔는데, 아이의 기분은 영 풀어질 줄을 몰랐다.
저녁 늦게 몇 번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 오는데 산 속이라 잘 터지지 않다가 밤 11시경 확인된 내용, 「You got it」
저녁 8시 학교 게시판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확인 한 친구가 날린 것이었다.
그 순간부터 시작된 찬양,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 할 수 없네, 나는 포기 할 수 없네」반복 또 반복.
그래서 아이는 학교 최초의 아시안,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대하던 치어리더가 되어 여름방학 동안 시작된 합숙 훈련, 매일 하는 고난도 연습을 무리 없이 소화 하며 당당하게 자리를 굳혀 갔다.
그 옛날, 시골 초등 학교 운동장에서 청 기나 백 기를 흔들거나 꽃 수술을 흔들던 수준과는 내용면과 질 모두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고차원의 것 임을 새삼 느끼며, 백인 전유물로 화합과 질서를 생명만큼 귀하게 여기는 치어 팀에 딸이 있음이 자랑스러워졌다.
각종 게임 때마다 앞에서 펼치는 절도 있는 다양한 동작들, 환호하는 관람객, 특히
지쳐 있는 팀에게 격려를 보내는 애교 있는 동작과 구호, 이에 힘을 얻어 뛰는 팀 선수들.

어머니 날, 아버지 날에 아이는 그 동안 찍어 두었던 사진들을 가지고, 오려 붙이기 한 작품을 우리 부부에게 선물 했다.
해 마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올 해도 우리를 실망 시키지 않고 재치 만점, 웃음 만발의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엄마는 나의 치어리더예요」라는 말,
아니, 엄마가 겨우 치어리더? 이건 어머니의 위상 비하이며 추락이다 란 생각이 들었다.
겨우 치어리더!
격한 감정을 억제하며 태연한 척 영한 사전, 영영 사전을 찾아 본다.
그럴싸한 좋은 뜻만을 가려본다. 격려하다. 지탱하다. 기분을 좋게 하다. 기운 나게 하다. 지지자. 안내자. 지주(支柱).
여기서 또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며, 그럼 그렇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아무런 관문 통관 없이 얻은 칭호, 치어리더.
내가 정말 아이의 격려자, 지지자, 안내자, 기분과 기운을 나게 하고 좋게 하는 사람인가?
또 다시 고민에 싸이며, 치어리더가 되고자 다친 팔에 보호대를 메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악착스럽고 끈기 있게 준비했던 오디션을 치르고 명명(命名)된 딸의 칭호에 박수를 보내고, 그 좋은 이름을 엄마에게도 붙혀 준 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딸아, 엄마는 너의 영원한 치어리더야, 알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 합니다. (시편 18;1)」

자장면과 노래방

딸 아이가 꽃 다발을 안고 집으로 들어 온다.
「왠 꽃?」,「생일이라고…」말꼬리를 흐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피시 웃었다.
학교 수업 끝나고, 세 시간씩 치어 리더링 연습하고 오는 아이는 피곤한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깨를 들썩 들썩, 엉덩이를 흔들 흔들 거리며 꽃 다발을 안은 채, 한 바퀴 돌며 흥얼거리다 왜 웃느냐며 묻는다.
첫 직장을 갖고, 처음 맞은 내 생일, 크리스마스가 껴서 애매 모호한 날, 눈이 오려는지 낮은 구름에 기분까지 우울한 날, 무슨 용기인지 출근하면서 꽃집에 들려 나이 수만큼 빨간 장미를 샀다.
곱은 손 비벼가며, 꽃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모두들 놀라며, 「왠 꽃?」하는데, 나 역시도 「생일이라고…」하며 말을 흐렸다.
하루 종일 온갖 추측이 난무하며, 사무실의 분위기는 높은 새털 구름이 피어 올라 있었다.
「니가 샀니?」「아니, 훼라가, Free Gas Card 하고 줬어, 근데 엄마 왜 웃어?」「으~응, 아냐」「어~엄마~」
오늘 저녁 엄마 과외 가는 날인데,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은근히 기대 하며) 기다릴 수 있냐고 물으니, 배가 엄청 고프단다.
고프겠지, 점심에 샌드위치 하나 달랑 먹고, 오후 5시까지 과격한 몸 놀림을 계속 해대고 왔는데.
나이 수만큼의 장미 꽃을 사는 바람에, 며칠 분 점심 값 다 날리고,
꽃을 들고 괜스레 시내를 돌며 하루 종일 쫄쫄 굶었던 기억을 얘기하니,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다. 엄마의 재 발견이라면서.
그 날 저녁, 추위에 언 몸을 하고 집에 와서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소다 물 넣고
반죽하여 뽑은 면에 자장을 올린, 어릴 적 생일 때마다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자장면, 그리고 탕수육이었다.
늦겠다고, 다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고는 과외를 갔다가 마치고 나오며,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아직 집에 도착 되지 않았단다.
케이크 하나 부탁 하고, 나는 차를 돌려 동네 유일한 자장면 집에 가서, 자장면을 To go로 주문하고, 탕수육 가격을 보며 잠시 망설인다.
차고 문을 열며, 자랑스럽게 아이를 부른다. 대답이 없다.
「자나?」 더 큰 소리로 부른다.
집 안에서 음악과 함께 패션 쇼가 한창 이었다. 친구들이 선물한 옷이라며 있던 옷들과 맞춰 가며 입어 보느라 정신이 없다.
「짜장면 먹자, 응? 빨리 와 빨리, 다 불겠네, 야! 빨리 와~」
조금 늦게 도착된 남편이 사 온 케이크, 「와~, 아빠 내가 그린 색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연녹색의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며 입이 귀에 걸린다.
자장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 하고, 서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 간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온 아빠는 피곤 하다고 소파로 가 눕고, 엄마는 내일 주문량이 많다고 일 하러 사무실로 가고, 아이는 숙제 한다고 제 방으로 가고…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면서, 벌써 저렇게 큰 아이를 생각 하니 감사하고,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일 하느라고 저녁 시간 함께 해 주지 못한 날이 17년 세월이 되었다.
무슨 일이 그리도 많은 지, 그러면서 하는 말, 「다~ 느들 위해 하는겨~」
엄마도 그러셨다. 우리 남매들을 위하는 거라고, 그런데 나는 그 말씀에 동감이 가지 않았다. 지금 내 아이도「엄마, 일찍 들어와」 하면서 동감이 가지 않거나, 인사치레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힘 들게 공부하고 온 아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 보며, 미주알고주알 밑두리 콧두리 캐 듯 얘기하면 들어 주고, 받아 주고, 안아 주고, 두드려 주며, 맞장구 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일은 일터에서 끝나고, 집에 와서는 온전히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 주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 끝내고 들어 오니, 아이는 이미 잠 들고, 자는 얼굴을 보니 또 미안한 맘뿐이다.
미안하다, 그렇지만, 다 너를 위한 거야, 알지?
무엇을 위한다는 것인지 뜻 모르는 말을 하며, 그래도 오늘 저녁 자장면 사 줬잖아 하면서 스스로 위안 삼으며, 감사 하신 하나님을 찾는데, 자는 줄 알았던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난 짜장면보다 노래방에 한번 가 봤으면 좋겠어…」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 하러 돌아 오매, (사무엘 하 6;20)」

Tenuto

여. 름. 방. 학.
꺄~아~악~ 오예~ 오예~
알림 장을 본 반 아이들은 천장을 날려 보낼 듯 소리를 질러댔다.
옆 반이 방해를 받던 말던 더 부추겨 목청을 돋게 했다.
얼마나 신이 나면 저럴까!
그 귀한 토요일 아침을 흥미도 없는 한글 공부를 위해 받친 보상으로 소리를 지르고 난 학생들은 한결 마음이 흡족하고 가뿐해 보였다.
여름 방학 때 꼭 해야 할 것들을 프린트 물을 통해 확인해 주니, 모두가 할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리고, 숙제를 언제 갖고 와야 하느냐는 질문까지 한다.
그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한 녀석, 벌써 가방은 챙겨져 등에 메어져 있고, 알림 장은 꼬깃 꼬깃 두 손에 감싸 있었다.
마지막 날까지 화를 낼 수 없어 주시(注視)만 하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손을 든다.
「선생님, 숙제요, 왜 줘요? 방학이잖아요.」순간 할 말을 잃고, 정적이 흐른다.
숙제를 제일 잘 해올 것 같이 열심히 밑줄 그며 질문하던 가장 나이 어린 녀석이 맞장구를 치니 모두「방학! 방학!」을 연호(連呼)한다.
얼마 전, 「소원을 말해봐」시간에 소원 0 순위로「숙제 없기」가 차지한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못 이기는 척 숙제 계획표를 회수 했다.
더욱 신이 난 이 녀석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난리법석이다.

개인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여름방학을 한글 공부에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
평상시에는 방과 후와 주말에 특별 활동을 많이 하기에 주 한 시간 하던 수업을 주 두 번이나 두 시간으로 연장해 달라고 부탁이지만, 정규 직장이 있는 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번에도 몇 분이 자녀들의 한국어 공부에 대해 문의를 하셨다.
애칭이「한글」인 학생의 어머님이 소개한 2세인 이 분의 자녀는 일곱 살 아들과 여섯 살짜리 쌍둥이 남매인데, 동네 한국 학교를 보내 보려고 몇 번 시도를 했다가, 친정 어머니께서「민폐」라며 극구 말리셔서 포기한 상태이니 더 늦기 전에 도와 달라고 하셨고, 다른 한 분은 한글이가 부르는 한국 동요를 듣고 한글을 가르쳐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한글 공부를 하며 동요를 많이 부르고, 간단한 악기이지만 직접 연주하게끔 하니 아마 흥미 유발에 약효(?)가 컸는지 대부분 한글 과외시간을 기다린다고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시며, 한 어머님은 아이가 툭하면「Tenuto 」하는데, 도대체 Tenuto (테누토)가 무엇이냐고 의아해 하시며, 질문을 하셨다.
학교와 다르게 개인 교습을 하면 학생들과 일대 삼, 사 정도이니 아무래도 배울 기회와 내용을 맞추기가 좋아, 수업시간에 가끔 음악적 용어나 기호를 사용하여 학생들의 분위기를 띄워 주기도 하고 질서를 잡기도 하고, 별명으로 불러 주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 사용 빈도가 많은 테누토(음표 밑에 __ 로 표시 되며, 음 길이를 충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를 아이가 가정에서 사용했나 보다.
학생들 대부분이 아직은 어리기에 15분 정도 수업하면 집중력이 떨어질 때, 「_」를 보여 주며「테누토」하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대로 축 처져있는 학생에게는「스타카토」를 붙인다.
너무 흥분되어 있을 때는「Andante」, 분위기가 우울할 때는「A Tempo」, 티격 태격일 때는「Dolce 부드럽게」, 자신 없는 학생에게는「Forte 강하고 자신 있게」
나름 생각을 모아 수업을 하니 학생들도 사용하면서 분위기를 도와 주곤 하는데,
아이에게 어느 때「테누토」라고 했는지 물어보니, 엄마가「빨리 빨리 숙제 하라」고 할 때였단다.

그렇다. 학교에서든 개인으로든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은 다 똑같다.
학생 개인의 의지로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어머니의 강요와 강제로 배우기에 학생들은 꿈에도 소원이「진짜 방학」이다.
이런 학생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면 연호(連呼)하는 방학을 이번만이라도 「Adagio 매우 느리고 평온하게」로 지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어머님께 지시 했듯이「테누토」하여, 자녀를 믿고, 자녀와 시간을 가지며 한국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한국어 공부가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 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