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7, 2010

김철수 선생님

6월의 함성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주며, 역시 박지성임을 다시 확인하게 하였다.
6월 12일, 4년을 기다려온 역사적인 날, 남아공 월드컵 첫 게임, 그리스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대결을 하는 날이었다.
한국 학교는 방학을 했지만, 개인으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저녁에 예정되어 있어서 수업을 위해 (학생들과 대화가 되려면) 축구 중계방송 시청을 새벽부터 하게 되었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에 느닷없이 남아공 월드컵 한국 대표팀 최종 엔트리가 누군지 아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끙끙대던 내 모습이 우스웠던지, 다른 한 학생이 친절하게 이 메일로 방송 시간과 채널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덧붙인 설명, 그리스는 키 큰 선수들이 많고 세계 13위, 2004 유로 우승팀.
아직까지 한국이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이긴 적이 없으니 이번에 그리스 팀을 이길 수 있도록 꼭 응원할 것.
학생의 연락을 받고 신문을 찾아, 선수와 그들의 등 번호, 포지션, 그리스 전에 출전하는 선수 명단 등을 알아 보고 경기를 시청하니 훨씬 재미 있었다.
쉰 목소리로 진행한 저녁 수업 시간, 교사와 학생은 혼연 일치로 한 시간 내내 첫 골의 주인공 이정수와 그림 같은 쐐기 골을 터뜨린 주장 박지성에 대해 아는 대로 열을 올리며 칭찬일색으로 수업을 마쳤다.

박지성을 닮고 싶어하는 한 학생이 있다.
평발, 볼품없이 깡마른 체격, 작은 키로 이 지역 축구 팀에 속해 있는 민영이는 박지성 박사다.
그 옛날 펠레나 마라도나같이 화려한 개인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차범근처럼 총알 같은 스피드를 가진 것도 아닌, 프로팀은커녕 대학 진학조차 힘들었던 평범한 청년 박지성을 자서전으로 만난 민영이는 늘 박지성을 영웅으로 노래한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날의 박지성을 보며 그의 성실한 노력과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만을 이야기 하는데, 이 보다 앞서 탄탄한 기본기, 강철같은 체력, 영리한 전술구사 능력을 소리 없이 만들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은 안양 초등학교에서 이영표 선수를 이미 키웠고, 수원 세류 초등학교로 전학 온 축구를 좋아하는 박지성을 만난 그가 어린 박지성에게 제일 처음 시킨 것은 리프팅 연습이었다. 어린 박지성 선수에겐 지겹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온 3년의 리프팅 연습, 그의 6가지 기본 전술에 응용 기술을 더해 익혀 가던 박지성은 어린 나이에 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 전체를 볼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전날에는 자기가 뛰게 될 모습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게 하면서 스스로 경기를 만들어가게끔 하는 상상 속의 축구경기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며 창의력을 갖게 했다.
격려와 긍정적 사고로 가르침을 받은 오늘의 영웅인 이영표와 박지성, 그 외의 선수들을 키워 낸, 그 분은 바로 김철수 선생님이다.

한글 학교 교사를 하면서 한번도 생각 못한 교육 방법, 이미지 트레이닝.
끊임 없는 격려와 따뜻한 위로로 긍정적 사고를 가질 수 있게 가르치신 분,
그 분이 감당한 2%의 역할로 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100% 안겨주며 많은 학생들이 꿈을 갖게 해준 분, 사재를 털어서라도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 기억되지 않고,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 그 곳에서 변함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분, 이 분을 교사로서 닮고 싶다.
훗날, 우리 학생들이 각자의 직위에 맞는 곳에서 대화를 할 때, 조국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모국어가 있다면, 거리낌 없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랑스런 학생들을 상상하며,
김철수 선생님! 존경합니다.

Tuesday, July 6, 2010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코 높이만큼 높아진 입에,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엉덩이로 문을 열며 들어온 아이는 수업 중임에도 책상에 엎드려 한숨만 쉰다.
이럴 때는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 경고보다는 무관심이 최선이다.
「자~, 이 글은 수필가 피천득님의 금아문선에 실린 글로 외동딸 서영이에게 보내는 글이다. 정확하게 소리 내어 잘 읽고, 잘 듣는다. 그럼 이쪽부터 시~작」
한 문단씩 읽어 가고 있는데 엎드려 있던 아이, 「저는 그 종이 못 받았는데요」 하며 부스스 일어나 교재 복사물을 찾는다. 화를 많이 삭인 듯 보인다.
교재를 다 읽고 글의 종류를 설명해 주고, 누가 누구에게 쓴 글인가에 대한 질문에 반 학생들은 한결같이 의아해 한다. 왜 편지를 써요?
하기야 이 책이 출판 되었을 때가 반 학생들의 부모님 출생 년도보다 오래 전이니까 시대를 이해 하기 어렵겠지.
쉬는 시간이 되기 무섭게 모두 나가는데 이 아이는 멍하니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프롬 갈 생각?」관심을 보이면 털어 놓게 돼있다. 오늘 아침에 엄마와 싸웠단다. (싸웠다는 표현에 깜짝 놀랐지만) 누가 이겼냐고 물으니 멋쩍게 웃는다.
준비 된 둘째 시간 수업 급 변경, 칠판에 시조 한 수를 적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이 몸이 있었을까 하늘 같은 가 없는 은혜 어디 대어 갚사오리.」
아버지가 딸에게 자상하게 쓴 편지를 읽었고, 부모님의 끝없는 은혜를 노래한 시조 한 수를 읽으며 시작한 둘째 시간에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도록 했다.
「어머니 날이 오니까 이거 너무 형식적이지 않아요?」하며 수업거부를 한다.
가끔 애용하는 준비된 노래를 들려 준다.
「엄마가 보고플 땐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엄마가 그리울 땐 엄마 편지 다시 보고, 엄마 내음 느껴지면 눈물이 납니다……」
촌스럽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면서 흥얼거린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분위기 최고조일 때 빨리 감정 정리하여 편지 마무리 하라고 하자, 엄마와 싸웠다는 이 아이, 울면서 하는 말, 「선생님 그 노래는 제발 틀지 말아요」
세대를 막론하고 엄마란 단어는 눈물 샘을 자극하고, 콧등을 시리게 하고, 가슴을 저미게 하나 보다.
흰 종이에 「엄마 미얀해요」만 연거푸 써 놓고 아이는 깊은 반성을 하나보다.
「그만~」이라고 하자, 아이는 더 진하게 쓴다. 「엄마 살랑해요」라고.

치어 리더

처음 치어리더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만 띄웠다.
치어리더란 그저 좀 예쁘고 몸매 괜찮은, 아니면 선생님께서 봐 주는 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하고 싶으면 누구라도 금방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 했었다. 초등 학교 운동회 때면 꼭 앞으로 불려 나가, 우리 편 이겨 라, 힘 내라, 힘! 을 외칠 때마다 꽃 수술을 손에 들고 흔들며 응원가 리듬에 따라 무용을 했던, 나의 그 수준으로 치어리더를 생각하고, 그래도 우리 애는 전후자 모두 해당 사항일 테니까 하는 엄마의 무지의 자만으로, 아이는 그 웃음을 긍정에 가깝게 받아 들였다.
학기가 끝날 무렵, 신청서를 내고 혼자 집에서 뭔가를 열심히 연습한다.
혼자 작품을 만들어 연습하는 거란다. 일차 오디션 시범용으로.
서류 심사 되고, 일차 관문에 통과되고, 배워 온 기본 동작으로 이차 심사가 남아 있는데, 연습 도중 넘어져 팔과 발목을 다치게 되었다.
울고 불고 난리 법석이 일어났다. 「야, 네가 안되면 누가 되냐? 걱정 마, 걱정 마」 하며 안심을 시키지만 이것도 여기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엄마의 어기 장에 불과 한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지만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연습 일마다 비록 연습은 하지 못 하더라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했다.
기다리던 날, 아이는 팔 보호대를 어깨에 메고 다리를 절면서 마지막 오디션에 참가 하였다.
평소 실력만큼, 연습한 만큼 실력 발휘 못 했다고, 기회를 다시 한번 달라고, 코치에게 부탁 해도 형평성으로 인한 규칙으로 아이는 시무룩하게 집으로 돌아 왔다.
그 날 저녁, 우리는 기도원에 올라 갔는데, 아이의 기분은 영 풀어질 줄을 몰랐다.
저녁 늦게 몇 번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 오는데 산 속이라 잘 터지지 않다가 밤 11시경 확인된 내용, 「You got it」
저녁 8시 학교 게시판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확인 한 친구가 날린 것이었다.
그 순간부터 시작된 찬양,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 할 수 없네, 나는 포기 할 수 없네」반복 또 반복.
그래서 아이는 학교 최초의 아시안,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대하던 치어리더가 되어 여름방학 동안 시작된 합숙 훈련, 매일 하는 고난도 연습을 무리 없이 소화 하며 당당하게 자리를 굳혀 갔다.
그 옛날, 시골 초등 학교 운동장에서 청 기나 백 기를 흔들거나 꽃 수술을 흔들던 수준과는 내용면과 질 모두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고차원의 것 임을 새삼 느끼며, 백인 전유물로 화합과 질서를 생명만큼 귀하게 여기는 치어 팀에 딸이 있음이 자랑스러워졌다.
각종 게임 때마다 앞에서 펼치는 절도 있는 다양한 동작들, 환호하는 관람객, 특히
지쳐 있는 팀에게 격려를 보내는 애교 있는 동작과 구호, 이에 힘을 얻어 뛰는 팀 선수들.

어머니 날, 아버지 날에 아이는 그 동안 찍어 두었던 사진들을 가지고, 오려 붙이기 한 작품을 우리 부부에게 선물 했다.
해 마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올 해도 우리를 실망 시키지 않고 재치 만점, 웃음 만발의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엄마는 나의 치어리더예요」라는 말,
아니, 엄마가 겨우 치어리더? 이건 어머니의 위상 비하이며 추락이다 란 생각이 들었다.
겨우 치어리더!
격한 감정을 억제하며 태연한 척 영한 사전, 영영 사전을 찾아 본다.
그럴싸한 좋은 뜻만을 가려본다. 격려하다. 지탱하다. 기분을 좋게 하다. 기운 나게 하다. 지지자. 안내자. 지주(支柱).
여기서 또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며, 그럼 그렇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아무런 관문 통관 없이 얻은 칭호, 치어리더.
내가 정말 아이의 격려자, 지지자, 안내자, 기분과 기운을 나게 하고 좋게 하는 사람인가?
또 다시 고민에 싸이며, 치어리더가 되고자 다친 팔에 보호대를 메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악착스럽고 끈기 있게 준비했던 오디션을 치르고 명명(命名)된 딸의 칭호에 박수를 보내고, 그 좋은 이름을 엄마에게도 붙혀 준 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딸아, 엄마는 너의 영원한 치어리더야, 알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 합니다. (시편 18;1)」

자장면과 노래방

딸 아이가 꽃 다발을 안고 집으로 들어 온다.
「왠 꽃?」,「생일이라고…」말꼬리를 흐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피시 웃었다.
학교 수업 끝나고, 세 시간씩 치어 리더링 연습하고 오는 아이는 피곤한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깨를 들썩 들썩, 엉덩이를 흔들 흔들 거리며 꽃 다발을 안은 채, 한 바퀴 돌며 흥얼거리다 왜 웃느냐며 묻는다.
첫 직장을 갖고, 처음 맞은 내 생일, 크리스마스가 껴서 애매 모호한 날, 눈이 오려는지 낮은 구름에 기분까지 우울한 날, 무슨 용기인지 출근하면서 꽃집에 들려 나이 수만큼 빨간 장미를 샀다.
곱은 손 비벼가며, 꽃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모두들 놀라며, 「왠 꽃?」하는데, 나 역시도 「생일이라고…」하며 말을 흐렸다.
하루 종일 온갖 추측이 난무하며, 사무실의 분위기는 높은 새털 구름이 피어 올라 있었다.
「니가 샀니?」「아니, 훼라가, Free Gas Card 하고 줬어, 근데 엄마 왜 웃어?」「으~응, 아냐」「어~엄마~」
오늘 저녁 엄마 과외 가는 날인데,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은근히 기대 하며) 기다릴 수 있냐고 물으니, 배가 엄청 고프단다.
고프겠지, 점심에 샌드위치 하나 달랑 먹고, 오후 5시까지 과격한 몸 놀림을 계속 해대고 왔는데.
나이 수만큼의 장미 꽃을 사는 바람에, 며칠 분 점심 값 다 날리고,
꽃을 들고 괜스레 시내를 돌며 하루 종일 쫄쫄 굶었던 기억을 얘기하니,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다. 엄마의 재 발견이라면서.
그 날 저녁, 추위에 언 몸을 하고 집에 와서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소다 물 넣고
반죽하여 뽑은 면에 자장을 올린, 어릴 적 생일 때마다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자장면, 그리고 탕수육이었다.
늦겠다고, 다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고는 과외를 갔다가 마치고 나오며,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아직 집에 도착 되지 않았단다.
케이크 하나 부탁 하고, 나는 차를 돌려 동네 유일한 자장면 집에 가서, 자장면을 To go로 주문하고, 탕수육 가격을 보며 잠시 망설인다.
차고 문을 열며, 자랑스럽게 아이를 부른다. 대답이 없다.
「자나?」 더 큰 소리로 부른다.
집 안에서 음악과 함께 패션 쇼가 한창 이었다. 친구들이 선물한 옷이라며 있던 옷들과 맞춰 가며 입어 보느라 정신이 없다.
「짜장면 먹자, 응? 빨리 와 빨리, 다 불겠네, 야! 빨리 와~」
조금 늦게 도착된 남편이 사 온 케이크, 「와~, 아빠 내가 그린 색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연녹색의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며 입이 귀에 걸린다.
자장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 하고, 서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 간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온 아빠는 피곤 하다고 소파로 가 눕고, 엄마는 내일 주문량이 많다고 일 하러 사무실로 가고, 아이는 숙제 한다고 제 방으로 가고…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면서, 벌써 저렇게 큰 아이를 생각 하니 감사하고,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일 하느라고 저녁 시간 함께 해 주지 못한 날이 17년 세월이 되었다.
무슨 일이 그리도 많은 지, 그러면서 하는 말, 「다~ 느들 위해 하는겨~」
엄마도 그러셨다. 우리 남매들을 위하는 거라고, 그런데 나는 그 말씀에 동감이 가지 않았다. 지금 내 아이도「엄마, 일찍 들어와」 하면서 동감이 가지 않거나, 인사치레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힘 들게 공부하고 온 아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 보며, 미주알고주알 밑두리 콧두리 캐 듯 얘기하면 들어 주고, 받아 주고, 안아 주고, 두드려 주며, 맞장구 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일은 일터에서 끝나고, 집에 와서는 온전히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 주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 끝내고 들어 오니, 아이는 이미 잠 들고, 자는 얼굴을 보니 또 미안한 맘뿐이다.
미안하다, 그렇지만, 다 너를 위한 거야, 알지?
무엇을 위한다는 것인지 뜻 모르는 말을 하며, 그래도 오늘 저녁 자장면 사 줬잖아 하면서 스스로 위안 삼으며, 감사 하신 하나님을 찾는데, 자는 줄 알았던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난 짜장면보다 노래방에 한번 가 봤으면 좋겠어…」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 하러 돌아 오매, (사무엘 하 6;20)」

Tenuto

여. 름. 방. 학.
꺄~아~악~ 오예~ 오예~
알림 장을 본 반 아이들은 천장을 날려 보낼 듯 소리를 질러댔다.
옆 반이 방해를 받던 말던 더 부추겨 목청을 돋게 했다.
얼마나 신이 나면 저럴까!
그 귀한 토요일 아침을 흥미도 없는 한글 공부를 위해 받친 보상으로 소리를 지르고 난 학생들은 한결 마음이 흡족하고 가뿐해 보였다.
여름 방학 때 꼭 해야 할 것들을 프린트 물을 통해 확인해 주니, 모두가 할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리고, 숙제를 언제 갖고 와야 하느냐는 질문까지 한다.
그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한 녀석, 벌써 가방은 챙겨져 등에 메어져 있고, 알림 장은 꼬깃 꼬깃 두 손에 감싸 있었다.
마지막 날까지 화를 낼 수 없어 주시(注視)만 하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손을 든다.
「선생님, 숙제요, 왜 줘요? 방학이잖아요.」순간 할 말을 잃고, 정적이 흐른다.
숙제를 제일 잘 해올 것 같이 열심히 밑줄 그며 질문하던 가장 나이 어린 녀석이 맞장구를 치니 모두「방학! 방학!」을 연호(連呼)한다.
얼마 전, 「소원을 말해봐」시간에 소원 0 순위로「숙제 없기」가 차지한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못 이기는 척 숙제 계획표를 회수 했다.
더욱 신이 난 이 녀석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난리법석이다.

개인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여름방학을 한글 공부에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
평상시에는 방과 후와 주말에 특별 활동을 많이 하기에 주 한 시간 하던 수업을 주 두 번이나 두 시간으로 연장해 달라고 부탁이지만, 정규 직장이 있는 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번에도 몇 분이 자녀들의 한국어 공부에 대해 문의를 하셨다.
애칭이「한글」인 학생의 어머님이 소개한 2세인 이 분의 자녀는 일곱 살 아들과 여섯 살짜리 쌍둥이 남매인데, 동네 한국 학교를 보내 보려고 몇 번 시도를 했다가, 친정 어머니께서「민폐」라며 극구 말리셔서 포기한 상태이니 더 늦기 전에 도와 달라고 하셨고, 다른 한 분은 한글이가 부르는 한국 동요를 듣고 한글을 가르쳐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한글 공부를 하며 동요를 많이 부르고, 간단한 악기이지만 직접 연주하게끔 하니 아마 흥미 유발에 약효(?)가 컸는지 대부분 한글 과외시간을 기다린다고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시며, 한 어머님은 아이가 툭하면「Tenuto 」하는데, 도대체 Tenuto (테누토)가 무엇이냐고 의아해 하시며, 질문을 하셨다.
학교와 다르게 개인 교습을 하면 학생들과 일대 삼, 사 정도이니 아무래도 배울 기회와 내용을 맞추기가 좋아, 수업시간에 가끔 음악적 용어나 기호를 사용하여 학생들의 분위기를 띄워 주기도 하고 질서를 잡기도 하고, 별명으로 불러 주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 사용 빈도가 많은 테누토(음표 밑에 __ 로 표시 되며, 음 길이를 충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를 아이가 가정에서 사용했나 보다.
학생들 대부분이 아직은 어리기에 15분 정도 수업하면 집중력이 떨어질 때, 「_」를 보여 주며「테누토」하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대로 축 처져있는 학생에게는「스타카토」를 붙인다.
너무 흥분되어 있을 때는「Andante」, 분위기가 우울할 때는「A Tempo」, 티격 태격일 때는「Dolce 부드럽게」, 자신 없는 학생에게는「Forte 강하고 자신 있게」
나름 생각을 모아 수업을 하니 학생들도 사용하면서 분위기를 도와 주곤 하는데,
아이에게 어느 때「테누토」라고 했는지 물어보니, 엄마가「빨리 빨리 숙제 하라」고 할 때였단다.

그렇다. 학교에서든 개인으로든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은 다 똑같다.
학생 개인의 의지로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어머니의 강요와 강제로 배우기에 학생들은 꿈에도 소원이「진짜 방학」이다.
이런 학생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면 연호(連呼)하는 방학을 이번만이라도 「Adagio 매우 느리고 평온하게」로 지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어머님께 지시 했듯이「테누토」하여, 자녀를 믿고, 자녀와 시간을 가지며 한국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한국어 공부가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 주셨으면 한다.

스펙

드라마「공부의 신」에 빠져 있던 규리가 어느 날「레알」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한글 단어 인듯하여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레」로 시작하는 한글은 온통 외래어뿐 이었다.
결국 정확한 답변을 해 주지 못하고, 드라마의 내용을 들어 보니 풀잎이가 백현에게
「중간 고사 공부 레알 열심히 하라」는 내용으로 보아 혹시「리얼(Real)」이 아닐까 하면서 얼버무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사회인이 된 한국 학교 제자들을 가끔 만나 안부를 물으면 아직은 「삽질」 중이라고 대답을 하던데「바쁘다」는 뜻인지, 「힘들다」는 뜻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난처한 적도 있었다.
얼마 전 있었던「한국어 능력 시험」에 대해 올해는 대학생이나 대학 졸업생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문의가 부쩍 많았다.
지금까지는 한글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한국 학교 학생들에게만 권유를 했었지, 이렇게 대학에 진학해 있는 학생들에게는 권유해 보지 않았는데, 문의를 받게 되니 오히려 궁금해져 물어 보니「스펙」때문이란다.
「스펙」? 내가 알고 있는「스펙」은「Specification」즉「제품 설명서」인데, 또 다른 뜻이 있는가 영한 사전을 찾아 보니 별 다른 뜻이 없어, 요즘 새로 부여된 의미가 있나 보구나 하며 지나쳤는데, 「스펙」이란 단어를 너무 많이 듣게 되었다.
심지어「스펙 6종 세트」를 채우기 위해 미국으로 인턴 십을 오고 싶어 하는 청년을 소개 받기도 했다.
궁금하던 차, 「김정태 저,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를 읽고, 「스펙」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2004년 국립 국어원 신조어로 등록된「스펙」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학벌, 학점, 토익, 인턴 십, 자격증(영어 및 그 외 관련 된), 봉사 활동 등, 구직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앞 둔 재외 동포 자녀들은 한국어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열풍이 일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좋은 현상이다.
높아진 조국의 위상으로 인해 미 사회에서도 한국어의 활용이 늘어 동포 2세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취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조국으로 취업 되어 가는 경우에도 한국어를 사용할 줄 알면 동질감을 느껴 적응 시간이 훨씬 빨라서 좋다고 한다.
내 나라 말과 글이기에 당연히 배워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SAT II 의 영향으로 등한시 되었던 한글이 이제는 나의 능력 증명서의 한 요소로 한글의 자격증(한국어 구사 능력 인증서) 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모차르트 효과

「시계는 아침부터 똑닥 똑닥, 언제나 같은 소리 똑닥 똑닥, 자~ 몇 시? 」
「아홉 시 반요. 」
「시계는 아침부터 째각 째각, 언제나 같은 소리 째각 째각, 부지런히 일 해요. 자~ 지금은 몇 시? 」「아침 열 시요. 」「그럼, 무슨 시간?」「쉬는 시간요.」 「언제까지?」「열 시 십 분까지요. 」
시간 맞춰 들어 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와르르 몰려 나간다.
마침 옆 반 선생님이 지나 가시다 교실에 들러 한 말씀 하시는데, 다른 옆 반 선생님까지도 합세(合勢) 하며 거든다.
우리 반 때문에 수업하는데 지장이 많다고 그 동안 쌓인 불만을 털어 놓는데,
완전 불만 충만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노래 부르는 것도 모자라 두드리고, 구르고, 치고, 흔들어 대는 행위가 좁은 복도를 통해 울려 퍼졌을 생각을 하니 미안 하기 그지 없었다.
예전에는 교과서 수업 내용에 합당한 동요를 선별하여 마지막 수업 시간에 별도로 동요 부르기로 했는데, 배운 노래와 수업 내용을 연관 짓지 못할뿐더러, 기억 조차 하지 못하여, 수업을 하면서 음악을 듣고 리듬에 맞춰 직접 두드리고 치며 따라 부르니 노래 가사도 더 기억을 잘하고, 수업 내용도 쉽게 기억을 잘해 내는 듯 하여, 매주 수업을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수업 효과가 나타났다.
오늘도「시간」에 대해 배웠는데, 무조건「8:00」 라고 칠판에 써 놓고, 「몇 시?」라고 질문하는 것보다 동요「시계」를 부르며, 준비한 시계로「8:00」를 맞춰 놓으면서 질문을 하면 리듬에 맞춰 대답이 더 잘 나와 수업 효과도 훨씬 높아 이 방법으로 진행된 수업이 다른 반에게는 피해라니!

한 동안 언론이「모차르트 효과」를 부추긴 적이 있었다.
1990년대 초 과학 논문 지「네이처」에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를 대학생들에게 들려 주고 공간 추리력을 실시한 결과 높은 점수가 나왔다 하여 모차르트 효과에 대한CD와 책이 유행 하였다.
그런데, 점차 모순점이 들어 나며 밝혀진 사실은 좋아하는 어느 음악이든 들으면 긍정적 감정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2000년 대 초, 캐나다에서는 무작위 선정한 유치원생들에게 듣는 음악뿐만 아니라 직접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게 끔 한 후, 1년 뒤 그 학생들의 지능을 검사한 결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약간의 상승이 있었다는 연구가 발표 되었었다.

그래서, 나는 동요를 들려 주고 비록 타악기 일색이지만 학생들에게 직접 들으며 리듬에 맞춰 두드리고 흔들고 치게 하여 학습 효과를 높여 좋은 학습 결과를 얻기 위함이었는데, 다소 시끄럽고 정신을 쏘옥 뺄지라도 우리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 이런 연주를 하며 즐길 수 있을까요?
음악, 들으면 정서에 좋고, 직접 하면 지능에 좋다고 하니
불평, 접어 주세요.

지성. 주영. 청용. 성용 그리고 민영

동계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동계 올림픽의 경기 종목 및 경기 방법, 우리 나라가 출전하는 종목에 대해 숙제를 주었다.
그런데 차분히 조사를 해 온 것 같지 않아 다시 숙제를 주었건만, 한결 같이 우리 나라가 출전하는 종목이라면서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트, 피겨 스케이트만 마지 못해 적어 왔고, 경기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왜 숙제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시간 없다」는 말보다 더 충격적인「관심 없다」란 대답이 나왔다.
그래서 관심 있는 스포츠에 대한 숙제를 주고, 동계 올림픽의 종목에는「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트, 피겨 스케이트, 스키 점프, 봅슬레이, 스켈레톤, 크로스 컨트리, 루지, 알파인 스키, 프리 스타일 스키, 바이에슬론, 스노우 보드, 아이스 하키, 노르딕 복합, 컬링」이 있고, 이중 우리나라는 아이스 하키, 노르딕 복합, 컬링을 제외한 12 종목에 출전한다고 하니「관심 없다」던 아이들이 저마다 알고 있는 종목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얼마 전 감상한 영화「국가 대표」로 화제가 옮겨가 한 시간 내내 영화 속「스키 점프」에 관심이 집중 되었다.

이 번 주에는 삼일절에 대해 수업을 꼭 해야만 했는데, 숙제 검사 및 토의로 무려 두 시간을 허비하였다.
삼일절에 대한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아이들이 해온 숙제에 대한 설명은 스포츠 전문가 버금갔다.
그 중「지성. 주영. 청용. 성용 그리고 민영」이란 제목으로 한 숙제는 간단하지만 깊은 뜻과 큰 꿈이 담겨 있었다.
지성, 주영, 청용, 성용과 민영의 같은 점은 이름 끝 자가「ㅇ」이다. 축구 선수다.
소속팀이 외국이다. 「지성(맨유) 주영(AS모나코) 청용(볼턴) 성용(셀틱) 민영(미국)」
공격수이며 미드필더다. 대한 민국의 희망이다.
다른 점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민영만 참석 못한다.(이유 너무 어리기에)
네모 칸을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작성하여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축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선수들의 특징, 월드컵의 분석까지 해 주어 모두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민영이란 선수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명이 없고 미국의 어느 팀인지 분명하지 않아 질문을 하니, 지금은 아직 소속 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며, 최소한8년 후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면 아마 미국 팀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궁금증을 더하는 대답에 계속되는 질문, 결국 우리들은 축구 선수 민영은 우리 반 그 숙제를 해온 바로 그 민영임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아우네 장터의 함성이 들리며 시상대에 선 피겨 스케이트 선수인 김연아와 세계의 운동장에서 공을 좇아 쏜살같이 뛰는 민영이가 생각난다.
장터의 그 절규의 함성이 있었기에 오늘의 김연아가 세계인들에게 영광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고, 대한 민국의 희망인 지성 주영 청용 성용이 유럽 무대를 주름 잡을 수 있었고, 우리 민영이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이 땅에서 세계적인 미드 필더로 우뚝 설 꿈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우리 민영이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생각하니 허비한 두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기분 좋은 삼일절 아침이다.

헛사셨습니까?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고, 가을 학기 종강 일이고, 이 번 학기로 5년간 수고 하신 학교의 귀한 보배이신 남자 선생님께서 그만 두시는 날이다.
주 중 내내 우중충한 날씨도 오늘만큼은 기분 좋게 맑다.
첫째 시간이 시작되고, 20여분이 지난 후 부른 출석, 다니엘은 오늘도 결석이다.
가을 학기 동안 단 3일 출석한 다니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본다. 오늘도 역시 스포츠 때문이란다.
둘째 시간 후 간식 시간, 승엽이와 승주는 오늘도 간식을 준비해 오지 않아 어린 친구들을 괴롭힌다. 우리 반 막내, 매일 내 것 빼앗는다고 울며 불며 하소연이다.
대부분 간식보다 게임기에 더 관심이 많아 복도에서 삼삼 오오 짝을 지어 게임 하기에 바쁘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시무룩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는 태영이, 할머니가 아프다고 걱정이다.
동생이 우리 반으로 올라 오면 어떡하냐고 걱정인 병훈이, 너무 바빠 숙제 할 시간이 없단다.
우리 반 교실 앞에서 웅성거리는 다른 반, 큰 학생들, 담임 선생님께서 그만 두신다고 투덜대며, 그 선생님과 3년을 공부 했다면서 자기들도 학교를 이제 그만 나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셋째 시간 기말고사,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여 숙제로 주었고, 첫째 둘째 시간에 복습을 했건만, 힘이 쭉 빠진다. 대답은 먹이 받아 먹는 아기 참새처럼 모두 넙죽 넙죽 잘 하더니 답안지는 이게 뭐람!

옛날 한 선비(scholar)가 강을 건너고 있었다.
“사공(boatman), 그대는「공자(Confucius)」를 아는가?”
선비는 천천히 부채(fan)를 부치며 물었다.
“모릅니다.” “그럼「맹자(Mencius)」는?” 선비의 물음에 사공은 또 모른다고 대답했다.
“참 딱하구먼. 그렇다면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천자문(primer of Chinese characters」은 떼었는가?”
“그 또한 모릅니다.”
“쯧쯧, 안됐구먼. 그것들을 모르다니 자네는 인생을 헛살았구먼.”
선비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때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비바람이 몰아쳤다. 작은 배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뒤집어지고 말았다.
“어푸어푸,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선비님, 어서 헤엄(swimming)을 쳐서 땅으로 오르십시오.”
“나는 헤엄을 못 친다네.”
“팔과 다리를 열심히 저어 보세요. 금세 배우실 것입니다.”
“안 되네, 그 어려운 것을 어떻게 금세 배운다고 그러나.”
“참으로 딱하십니다. 어려운 글 공부는 잘 하시면서 그렇게 쉬운 헤엄도 못 치신다니 선비님은 정말로 인생 헛사셨습니다.”
넷째 시간, 「듣고 내 생각 쓰기」시간에 읽어 준 내용이다.
눈을 끔벅이며 열심히 듣는 아이, 책상 밑에서 열심히 게임기 눌러대는 아이, 미리 쓰기 숙제 하는 아이, 하품으로 지겨움을 표하는 아이, 셀폰으로 계속 시간 확인 하는 아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표현 해 올까?
다음 주가 기대되면서「선생님은 정말로 인생 헛사셨습니다.」란 문장이 어느 아이의 공책에서 아른거려짐은 노파심 때문일까?
선생님의 엄청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을 학생들은 선생님께서 그만 두시니까 학교를 그만 오고 싶다고 하는데, 이런 큰 선생님과의 맑고 밝은 오늘 날씨 같은 만남을 나도 감사한다.

가슴 높이

지금의 반을 담당하고부터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앉아 있는 학생과 이야기를 할 때는 그 학생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아예 털썩 주저 앉아 아이와 같이 무릎을 대고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신발(구두)이 불편해 신을 벗고 양말 발로 교실 앞 뒤를 다니며 수업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학부모님 한 분이 왜 교실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여 아이 양말을 그 꼴이 되게 하였느냐며 항의를 했다.
신을 벗으라고 한 적은 없지만, 제가 신을 벗고 수업을 한다고 하니 의아해 했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의 숙제 검사를 하거나 수업 내용 습득 확인을 위해 학생들 사이를 다니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숙제를 해 왔건 그렇지 않건, 수업 내용을 이해 했건 말건 학생들 대 부분은 주눅든 표정으로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비좁은 공간을 헤집고 무릎을 꿇고 앉아 학생의 책상에 가슴을 대고 눈을 맞춰 가며 확인을 하고 곧 바로 칭찬의 3단계 포옹과, 위로의 강약 포옹, 환희의 손뼉 치기, 격려의 손 가락 대기를 하고 위로와 격려를 받은 학생에게는 꼭 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다음 순서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교실은 가끔 난장판 일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감정 표현을 좀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핑계 대는 일이 적어졌으며, 자신 있게 수업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교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우리 반은 이래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 바람만이 내 가슴을 꽉 채우고 있어서 내 눈 높이에 어린 학생의 눈과 가슴이 맞춰지길 안달복달, 교사 생각으로 학생들을 판단하여 학생들의 가슴은 아랑곳 없었다.
그런데, 늘 채워지지 않는 나의 욕심에 대해 한 어린 학생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너는 선생님이지, 나가 선생님이면 나가도 해지요」
내 욕구 충족을 위해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저지른 나의 큰 실수.
그 후, 생겨진 버릇으로 아이의 눈이 내 마음을 읽게 하고, 내 눈이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눈을 맞추고 가슴을 맞출 수 있게 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느껴지는 아이의 심장 박동으로 내 열정과 사랑은 다듬어져서 다시 아이의 가슴에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으로 새겨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연말 북 가주 교사 협의회에서 추천해 주시고, 지역 사회에서 큰 상을 주심에 감사 하며, 올 해도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학생의 상황에서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느낌을 공유하는 따뜻한 마음의 교사로 학생과 가슴 높이가 같은 교사를 소망해 본다.

또 다른 열매를 위하여

숭례문이 화재로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했던 승용이가 벌써 SAT II 한국어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항일 운동을 하셨던 외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승용이에게 잘못 표기된 독도와 동해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여름에 만났던「반크」이야기를 해 주면서 거기서 받은 지도를 보여 주니 갖고 싶어 안달이다.
나도 한 장 밖에 없고 수업용으로 사용 하기에 선뜻 줄 수 없음에 미안 했는데, 하루 빌려 달라고 하여 그렇게 했더니, 그 큰 지도를 복사하여 코팅까지 해서 책상 앞에 걸어 놓은 것이 아닌가!
「완전 감동」이었다.
또, 한 청년은 십 이삼 년 전 학교의 골치 덩어리였다. 교사 누구도 그 학생을 담임 하기 싫어해 서로 떠 밀기 바빴다. 어머님은 결국 손을 들고 한국 학교를 포기 하셨고, 그는 쾌거를 부르며 한국 학교를 자랑스럽게 은퇴(?) 했다.
지금 그는 응급차 간호사인데 가끔 911으로 출동해서 가 보면 영어 못하는 한국 노인 분들이 계셔 안타깝다고 호소를 하며, 뒤 늦게 한글 공부를 하느라 휴일을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모국에 대해 남 다른 애착을 보이는 2~3세 학생들이 가끔 있는데, 이 학생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학생들보다도 더 (내 느낌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비록 한국 학교에서 적응을 못 하여 낙인(?)이 찍혔을지라도 개인적으로 한글을 배우며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사람임을 자부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 않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 가기가 힘들어져서 그런지 한글에 대한 관대한(?) 견해를 가진 부모님을 만나면 가끔 곤혹스럽다.
가정에서 대화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지 뭘 더 시키냐면서 대학 갈 때 크레딧 받게 한국 학교 자원 봉사자로 일하게 해달라고 성화고, 결석이 잦아 연락을 드리면 학원 수업 때문에 못 간다고 딱 자르고, 12학년이 되면서 11월에 있을 SAT II 한국어 시험을 보게 지도해 달라며 자녀의 실력과는 상관 않고 막무가내로 부탁이다.
사실, 한국어가 점수 따기 쉬운 것은 꾸준히 공부한 학생에게만 해당 사항이지 그렇지 않으면 헷갈리기 쉬워 일년에 한번 있는 시험 망칠 확률이 큰 과목이다.
벼락치기 석 달 공부한 후 다행히 만족한 점수 나오면 그냥 지나가고, 점수가 영 맘에 걸리면 다음 학기 다른 학생들 등록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크」에서는 3%가 있기에 가장 작은 겨자씨를 심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 했다고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지는 한국 학교 교사 이지만, 3%의 겨자씨들이 곳곳에 있기에 오늘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난다.
이번 주면 SAT II 한국어 점수가 다 나왔을 텐데, 큰 기대를 하며 토요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I love 한글

약간 어눌한 말투의 젊은 엄마와 손을 잡고 들어온 여자 아이는 대여섯 살 되어 보였다.
「이름이 뭐야? 」「한글」역시 말투가 연변(?) 특유의 억양이었다.
「한글? 와~ 이름 좋다. 」생일이 10월 9일이라 아이를「한글」이라고 부른다는 이 분은 중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하다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큰 아이 열 두 살, 작은 아이 여덟 살 때 조기 유학을 위해 중국에서 미국으로 오신 한국에서 유행하는 소위「기러기 가정」이다.
미국 온지 이제 일년 반, 아이는 영어보다 중국 말이 훨씬 편하고 한국 말은 하지만 아직 글은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한글 공부를 시작한 지 서너 달, 아이는 언어 감각이 남 다르게 뛰어났다.
벌써 한글을 읽고 호기심이 많아 어느 내용이든 흥미 있게 배우려 한다.
이야기 책을 감정 넣어 읽어 주면 똑같이 따라 읽으며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해를 하지 못 하며, 「too boring」만 연발한다.
그런데, 한글이가 한글 공부를 이렇게 재미 있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어 보니,
첫째 한글이「so easy」란다.
「말 나오는 데로 모두 쓸 수 있고 글자 따라 읽으면 모두 읽어지고 읽은 것이 뜻이 되니까」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한자(漢字)를 배워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한글이가 어렸을 때부터 배웠던 중국어는 모든 글자를 외워야만 글을 쓸 수 있는 표의문자이지만, 한글은 소리 글자(표음 문자)로 낱자 하나는 낱소리 하나를 나타내며 낱소리는 닿소리(자음)와 홀소리(모음)로 이루어지고, 한 소리마디는 첫소리(초성), 가운데소리(중성), 끝소리(종성)로 이루어지며, 닿소리 홀소리 모두 각 고유의 음을 가지고 있어 낱자 따라 읽으면 읽어지게 되는 것이고, 쓸 때는 영어처럼 하나씩 풀어 쓰는 것이 아니라 소리대로 모아 쓰면 되기에 마음 먹고 배우면 쉬운 글자다.
그래서,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도「슬기로운 이는 아침 먹기 전에,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한글은 쓰기가「very simple」하고 생각하는 글자를 모두 만들 수 있어서 재미 있다고 하면서「I like 한글, I love 한글」하며 생글 생글 눈 웃음을 친다.
어머니도 아이가 한글 공부를 이렇게 재미 있어 할 줄 몰랐다고 하시며 감사를 표 하니 한국 학교 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이렇게 가르치면서 느끼는 보람도 있지만, 학교 운영 자금 모금을 위한 행사를 할 적마다 느끼는 보람 또한 크다.
올 해에도 기금 모금 골프 대회가 지난 주에 있었는데 경기 침체로 인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시며 힘이 되어 주시고, 특히 자녀가 학교를 졸업 했음에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학부모님을 뵈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고 기쁨을 느끼며 희망을 본다.
「too boring」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일지라도 간혹「I like 한글, I love 한글」이라고 말해 주는 학생이 있고, 학교 일이라면 두 팔 걷어 부치고 나서서 도와주시는 학부모님, 이사진, 그리고 주변의 모든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도 우리 교사들은 기쁨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준비를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세종한국학교 기금 모금에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