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5, 2010

또 다른 재범이

「재미교포 3세인 갑은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처음에는 낯선 땅에서 한국어도 서툴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도 빈번하여 힘든 시간을 보냈다. 1년 후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연예기획사에 발탁되어 연습생들과 그룹을 결성하고 음반을 발표하였다. 현재 갑은 가창력을 겸비한 한국 최고의 가수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

「나에겐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은 중요하다. 이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반영한다. 내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이 나라의 부분이고 이 나라가 나에게 부여하는 기회를 이용해왔다. 또한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은 나의 의식의 중심에 있다. 」

한국에서 2009학년도 9월 고2 전국 연합 학력 평가(위)와 고 3 모의고사(아래)에 출제된 예문을 발췌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아무 말 않고 나누어 주며 읽으라고 하니 금방 반응이 왔다. 이구동성(異口同聲)이란 사자 성어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모두 재범이의 상황을 이해하며 동정하고 자기들이 겪은 이야기를 하는데 분위기를 조절할 수가 없었다.
야구와 아이스 하키를 좋아하는 재현이는 아버지가 외국 분이다. 미국 학교 이름은 Andrew, 한국 이름은 재현, 「재」자가 같다며 특별히 재범을 옹호하며 작년 여름 방학 이야기를 했다.
늘씬한 훈남 재현이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 겪은 일하나, 문이 닫히려고 할 때 밖에서 어느 여자가 뛰어 오길래 문을 잡고 기다려 주니 아무 말 없이 타고는 14층까지 올라 가는 동안 누구와 큰소리로 통화를 하며 어느 놈이 자기를 보며 쪼갠다느니 생긴 것 진짜 괜찮다느니 마구 얘기를 해서 내릴 때 한국 말로「잘 들었습니다. 」하니 오히려 화를 냈고, 겪은 일 둘, 꽉 찬 엘리베이터 안으로 어느 여자가 막무가내로 밀치고 들어 오는데 소리가 났는데 내리지 않고 오히려 옆의 자기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하여, 「너나 내리세요.」하니 그 안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우~하며 이상한 소리를 냈단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서 한국 말을 하니 엄마 흉을 보아(자기가 듣고 이해 하기에는) 한국에서 야구 선수 하고 싶었던 꿈이 싹 없어졌다고 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에 혼돈이 와 사실 한글 공부도 싫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한국 가서 댄스 가수가 꿈이라 이곳에서 있었던 오디션에도 참석 하고 나름 한글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군대 문제 등 생각지 않은 일들과 이곳에 유학 온 친구들과의 아주 사소한 일로 의견 차가 생길 때에는 조국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다 무너져 버렸다고 하며 마냥 좋은 곳으로 생각 했던 때는 지났다고 했다.
그래도 위의 학생들은 2세이지만 한글 공부를 게으르게 하지 않아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이렇게 말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다른 학생 몇 몇은 위의 두 글을 이해 조차 하지 못 했고 재범이의 일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듯 했다.
재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재범이가 겪었던 일이 우리 자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마음이 아프다.
어느 예능 프로에 나와 빨리 돈 벌어 엄마 쇼핑 시켜 드리는 게 가장 큰 바램이라던 앳된 모습의 재범이는 그 꿈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씨애틀로 돌아왔다.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나의 의식의 중심에 자랑스런 한국인이라는 사고를 품고 있는 우리의 동포 청소년들에게 이제 더 이상 마구 잡이 식 편견을 두지 말고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2PM 재범이와 또 다른 많은 재범이에게
「하쿠나 마타타 (Hakuna Matata!) 걱정 마, 다 잘 될 꺼야, 힘 내. 」

무조건

드디어 개학이다.
정신 없이 바빴지만 개학 날을 손 꼽아 기다렸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에도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하며 나만의 자료를 만들고 다듬었다.
특히 7월에 있었던 학술 대회에서는 이 지역을 벗어난 미 전역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배울 수 있었고, 그들은 우리의 귀한 학생들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으며, 특히 한글 학회 김승곤 회장님의「우리말의 말 대접 법 」강의는 전혀 모르고 있던 언어 사용의 예의와 대화법에 대한 교사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왜곡된 한국 역사에 대하여 사이버 외교 사절단「반크」를 통해 바르고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게 된 한국의 현직 중학교 국어 교사인 분을 통해 맞춤법과 틀리기 쉬운 단어에 대한 개별 강좌는 한글 SAT 문법에 자주 나오는 부분이어서 큰 소득이 되었다.
또, 장기 자랑을 위해 배운 노래 역시 새삼스러웠다.
학생들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이 즐겨 듣는 장르의 최신 노래만을 잘 알아 듣지 못하면서도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막상 이런 풍의 노래는 거의 듣지 않았었는데, 가사를 읽다 보니 갑자기 교사인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 줘, 언제든지 달려 갈게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특급 사랑이야……」
과연 나는 귀한 학생들에게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달려 가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어찌 나만의 고민일까, 한국 학교에 몸 담은 모든 교사들의 똑 같은 마음이고, 고민이고 각오이며, 소망하는 사랑이겠지.

이런 준비된 마음과 자세로 기다리던 개학이 이제 다음 주이다.
방학 동안에 학교가 이사를 하여 더욱 새로워진 환경에서 만나게 될 우리 학생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바른 말(문법적으로 맞는 말), 고은 말(정성을 다 하는 말)을 가르치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기대하니 마음은 벌써 부풀어 가을 하늘로 떠 오른다.

썬 글라스

준비물 목록을 하나씩 확인하며 올 해는 또 어떤 기대를 채워 올 수 있을까 하는 설렘으로 들떠 있었는데, 전체 준비물로 썬 글라스를 가져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초등학교 2 학년부터 안경을 사용하여 나의 큰 소원 중에 하나가 멋 있는 썬 글라스를 써 보는 것이었던 나에게 드디어 썬 글라스를 써 볼 기회가 생기는구나 하며 부풀었다.
주말에만 운전을 하는 나는 토요일 아침, 한국 학교에 갈 때 햇빛을 안고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햇빛을 안고 온다.
햇빛이 강한 날은 오만상을 지으며 운전을 하다 보니 두통이 생기는 일이 비일 비재 했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 때 뜻 밖의 선물을 받았다.
조그만 런치 백을 주길래 마침 점심 때가 약간 지난 시간이라 점심이나 간식 인 줄 알고 시장하던 참에 덥석 받았는데 느낌이 아니었다.
「선생님 운전할 때 입으세요」「뭔데」
「되게 원하는 거요」「선생님이 원하는 것이 뭐지? 지금 열어 봐도 돼?」
「맘대로」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이렇게 알아서 선물로 주다니 너무 감격하여 체면도 없이 봉투를 쫙 찢어 보니「검정색 썬 글라스」더불어 눈에 확 뜨인 것은 가격 표, $5.99, 순간 감동과 서운함의 교차지점에서 연출되는 표정 연기.
언젠가 말하기 시간에 갖고 싶은 것에 대해 발표를 할 때 교사인 내가 갖고 싶고, 받고 싶은 선물이 썬 글라스라고 해서 마침 주유소에서 주유 하고 거스름 돈을 받다가 계산대 옆에 주렁 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이 나서 샀다고 한다.
한글을 뒤 늦게 철들어 배우는 이 학생은 초 중고등학교 때 한국 학교에 열심히 등교는 해서 개근 상은 몇 번 받았지만, 겨우 한글 자모음 더듬거리며 읽는 정도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이제 한글의 필요성을 깨닫고 열심히 과외 지도까지 받으며 공부하는 이유는 순전히「TaLK」때문이다.
대학 2년을 마치고, TalK로 한국 생활을 꿈 꾸는 이 학생은 내년 5월을 기다리고 있고, 막상 선물로 받은 썬 글라스를 착용 할 기회가 없어서 늘 차 안에 넣고 다니며 때를 기다리던 나는 이번 낙스 학술 대회에 가서 드디어 사용 하게 되었다.
만날 적 마다 썬 글라스 왜 안 입냐고 묻기에 안경을 벗으면 볼 수가 없다는 나에게「안경 위에 덮어 입으면 되요」하던 너의 말대로, 선생님 꼭 썬 글라스 가져가서 안경에 덧쓰고라도 임무 수행 하고 사진 찍어 와서 보여 줄게.
고마워, 까만 썬 글라스.

어머님 은혜

한 학년을 마칠 때 꼭 하는 것 중에 제일 부담 되는 것은 교지와 학습 발표회다.
교지 원고를 위해 봄 학기가 시작 되면서 준비를 해도 출석이 고르지 않은 이유로 한 번에 모아지기 힘들어 마감까지는 애를 먹는다.
그런데 교지 원고 모으기 보다 더 힘들고 맥 빠지는 것은 학습 발표회다.
수업 중간 중간 짬을 내어 연습시켜 놓으면 꼭 종업식 때 빠지는 녀석들이 있어서
황당 했던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찍 계획하여 연극에 동요를 접목 시켜 내용을 녹음 해 놓으면 결석하는 친구가 있어도 발표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려고 대본 읽기를 시작 했는데, 다른 반이 연극을 하겠다고 계획서를 제출했다. 우리 반과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이라 좀 꺼려졌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하려고 하니 학생들이 난리다.
며칠 고민 끝에 합주로 하기로 결정을 하고, 각자 연주 할 수 있는 악기가 무엇인지 파악을 했다. 다양한 악기가 나왔다. 아직 악기를 다루지 않는 학생에게는 템버린과 트라이 앵글을 맡겼다.
그런데 계획대로 척척 될 줄 알았는데 대부분 학교에서 이제 시작하여, 겨우 악보 읽고 키도 완전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주(週) 하루 만나 한 시간 연습으로는 어림없는 일이고 갈수록 태산이 되었다. 선곡 된 악보를 각 악기에 맞게 그리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진퇴 양난 (進退 兩難),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허비한 2주의 시간, 그러나 분명, 한 줄기 빛은 나에게 비추고 있었다.
학부모님들과 말씀을 나누다 한 어머니께서 작곡을 공부 중 이신 사실을 알았다.
부탁에 흔쾌히 답을 주셔서 일사 천리(一瀉 千里), 교사 입장에서는 신이 났다.
음악을 전공하신 어머니께서는 학생들의 실력에 맞게 악보를 다시 그리며 쉽게 편곡을 하여 남은 연습시간 3주, 시간으로는 135분, 열심히 지도해 주셨다.
잘 따라 연습에 임하는 개구쟁이들.
만반의 준비를 갖추니 뿌듯함과 흥분, 한편으로는 누가 결석하면 어쩌지, 한 주간 동안 노심초사(勞心焦思).
기다리던 시간, 천하의 개구쟁이들도 긴장이 되는지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연주, 합창, 연주에 맞춰 모이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합창, 짧은 3분이지만 세 시간 공연을 한듯하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자녀들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시던 학부모님들도 옛 생각이 나는지 모두 숙연해지는 분위기였지만, 희망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발견한 학습 발표회였다.
어머님 은혜,
열정으로 도와 주신 어머님 은혜도 감사하며.

비타민

일 주일에 한번 만나지만 꼭 교실로 찾아 오셔서 안부를 묻는 젊은 어머니가 계신다.
개구쟁이 아들 때문이라고 하지만 예의와 성의가 배어 있어 참 고맙다.
현충일 연휴, 속 썩이는 아이들을 떠나 편히 쉬라는 인사를 받고, 한 주 토요일을 집에서 여유 있게 보내는데 몸과 마음은 영 편치 않다.
흐린 날씨로 인한 기분 탓이라고 하기에는 몸이 너무 찌뿌드드하고, 머리가 지끈대며 오한이 나기도 했다.
갱년기 증상이 오기 전에 비타민을 꼼꼼히 챙겨 먹으라던 주변 분들의 충고가 떠오르며, 그럼 나도 이제 그런 나이?
생각하기조차 끔직해 반 학생들의 생활 기록부 및 성적표를 작성해 본다.
차분하게 앉아 시작하지만 눈이 침침하고 뻑뻑하여 불편하기 그지 없어 애꿎은 안경만 벗었다 썼다 한다.

일년을 함께한 귀한 아이들.
이들에게 무슨 말로 칭찬을 해 줄까!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니 나를 미소 짓게 하고, 급기야는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찌근대던 머리도 어느새 맑아져 기분이 산뜻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나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비타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감기 예방과 치료, 항 산화 효과로 암과 동맥경화까지도 예방한다는 비타민 C 같은 아이, 시력 저하를 방지한다는 비타민 A 같은 아이, 피로 회복과 정신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비타민 B1 같은 아이, 해독작용 입술이나 혀가 거칠어지는 것을 방지 한다는 B2 같은 아이, 편두통을 예방하고 통증을 완화 시킨다는 B3, 빈혈 방지, 심장 질환, 우울증 예방의 B9같은 아니,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치매 예방을 한다는 비타민 E같은 아이, 혈액 응고를 돕는 비타민 K같은 아이, 그리고 혈액 순환촉진, 뇌의 영양 공급을 돕는 오메가 3와 같은 아이, 관절 영양제 글루코사민 같은 아이까지.
한 마디로 우리 반 아이들은 종합 비타민의 결정체 이었다.
그런데 생활 기록부에 「교사의 노화를 늦추고 치매 예방을 도와 주는 비타민 E와 같은 학생입니다.」「교사의 편두통의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비타민 B3와 같은 귀한 학생 입니다.」라고 기록할 수 없음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제 긴 여름 방학에 들어 간다.
그 동안 배운 것 잊지 말았으면 좋겠고, 가정에서도 한국어 사용을 활성화 하여 9월 새 학기에는 한국말이 자연스럽게 술술 나왔으면 좋겠고, 특히 경기가 회복 되어 가정 형편으로 등록을 미루는 학생이 없었으면 좋겠고, 등록 학생이 더 많이 늘어 반에서 감당 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그 동안 내 삶의 비타민이 되어 주었고, 또 계속 되어 줄 귀한 우리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오월은 푸르구나

초등 학교 시절, 처음으로 학교 전체 어머니 날(그 당시는) 학예회에 출연하게 되었다. 모든 어머니는 꼭 참석해야 한다, 특히 연극에 출연하는 학생들의 어머니는 모두 참석하시겠다는 도장을 받아 학교에 제출 했다.
도 교육감님께서도 참석하신다고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방과 후까지 연습을 시키셨다. 드디어 공연 날이 왔다. 몇 번이고 준비물을 확인하고 들 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 밤 중에 집안에 소동이 났다.
어린 나이라 무슨 일인지 몰라 울기만 했는데, 할머니의 발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새벽까지 들리고 나중에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아기를 낳으신 거다. 순간 엄마를 모시고 오지 않아 학교 가서 혼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왜 하필이면 엄마는 아기를 오늘 낳았을까 하는 골 부리를 하며 퉁퉁 부은 얼굴로 학교를 갔던 기억이 떠 오른 하루다.
오는 5월 9일, 북 가주 학생 한글 백일장 대회 및 그림 그리기가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Golden Gate Park에서 열린다. 참가 신청을 받기 위해 알림 장을 발송한 후 확인 하는 날, 한 녀석이 뚱한 얼굴로 「안 가요」대답하며 책상에 엎드린다. 모두 확인 되고 수업이 시작 되는데 이 녀석은 아직도 엎드려 있다.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을 않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의 당황함, 등을 토닥거려 주며 다시 물어보니, Golden Gate Park에 가고 싶은데 엄마가 못 가게 하셨단다. 너무 멀고, 가도 상도 못 탈 거고, 돈도 내야 하고…… 이 녀석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약속을 했단다. 거기서 만나자고.
상 타는 것 보다 친구와의 약속이 더 중요한 우리 아이.
우리 학교는 매 년 개최되는 한글 백일장 대회 및 그림 그리기 대회에 참석을 하였는데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 하여 올해부터는 참석자만 개별 참석하고 나머지는 학교 수업을 하기로 결정 하였다. 처음에는 어차피 저조한 출석률로 동의를 하였는데, 막상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어 보니 공감이 갔다.
일년에 한 번 모든 학교가 모여, 작은 학교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고, 다른 학생들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 주며 동기를 부여 하는 것도 좋고, 함께 공원에서 운동하는 것도 좋고, 참석 학교에 단체 상이라도 하나 주면 학생들뿐 만 아니라 함께 참석한 학부모들도 기분 좋고…… 일일이 맞출 수는 없지만 작은 학교 학부모님의 소망이다.
어쩔 수 없이 친구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아이, 상을 타던 못 타던 대회라는 곳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던 아이, 교실 밖에서 한 번쯤은 선생님과 김밥을 먹고 싶다는 아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큰 소리로 외치며 뛰고 싶다는 아이, 쏘리 쏘리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자는 아이들을 위해 그 날(5월 9일) 파킹 장에서라도 야외 수업을 해 보아야겠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 날 노래를 부르며.

나 시험 봤어

직원 조회시간, 오 해피데이~하며 전화 벨이 울렸다.
받을 상황이 아니라 받지 않았는데 자동 응답으로 넘어 갔다.
첫째 수업시간, 띠띠하며 문자가 온다. 「Taking test」확인만 한 후, 수업을 진행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칠 때까지 잊고 있었는데, 저녁에 이 메일을 확인하다 생각이 났다.
미안한 마음에 자동 응답을 들어보니 「시험 가지러 왔어요.」그리고 문자 메시지.
「Thank you」간단하게 문자로 답했다. 늦은 시간이기도 해서.

지난 학기부터 SAT II 시험이 UC 계열에서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 소문으로
학생들의 한국 학교 등록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라고, 그렇지 않다고 설득을 해도 마음은 벌써 정해진 듯 했었다.
그러면서 아침부터 학원으로 가서 SAT I 과목을 수강하고, 모자라는 과목 수강하면
오후 4시란다. 토요일은 하루 종일 학원에서 있는데 재미도 없고 공부도 안 하는데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단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SAT 한글도 여기서 해요,
그런데 선생님만큼 재미없고 설명을 잘 못해줘요.」과분한 칭찬에 으쓱하며,
모의고사 볼 때 연락한다고 한 후, 모의고사 있기 이틀 전 전화로 가까운 학교 가서
시험보라고 연락을 했는데, 고맙게 시험을 치른다는 연락을 한 것이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 「UC에서 이제는 SAT II 시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의
진상에 대해 알아 본 결과는 「SAT 서브젝트 테스트를 치르지 않았어도 UC에
지원할 수 있다」란 의미였다.
덧붙이면 「지원할 수는 있어도 합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이다.
그리고, 「SAT 서브젝트 테스트 의무 조항 제외」는 고교 졸업률이 50% 밑도는
흑인이나 라틴계 학생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면 되니, 우리 한인
학생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 없음」이다.
그러니까 SAT II 에서 한국 학교를 꾸준히 다녔던 학생들은 한국어로 고득점이
가능하므로 한글 공부를 포기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 이런 루머는 부모님, 학생뿐만 아니라 한국 학교 운영에도 커다란 지장을
초래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한국 학교를 그만 두는 심정 충분히 이해 하지만, 어차피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 중이거나, SAT II를 한국어로 정했다면 가까운 한국 학교에
등록해 시험 준비도 하고, 재미있는 한국 역사도 배우고, 정확한 정보도 알고, 덤으로
한국어 능력 시험까지 치러 여러 모로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또, 학교 운영도 될 수
있게.
시험 보러 왔다는 말을 시험 가지러 왔다고 음성 메시지를 남긴 우리 정우는 이번
모의고사를 어떻게 보았을까?
다음 주가 기다려진다.

거위의 꿈

한번도 결석 지각을 하지 않았던 학생이 봄학기 시작 첫날 결석을 했다.
알림 장에 굵은 글씨로 밑줄까지 그어 봄학기 등록일임을 알렸고, 바로 전날 금요일 저녁, 전화로 내일이 개학일임과 학교에서 보자는 인사를 나누었는데 결석이라니, 의아했다. 2교시 후 간식 시간에 전화를 해 보았다.
아이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학교 수업이 끝나도록 귀에 맴도는 말.
「내꺼 아빠 일이가 없어 나가 스쿨 안가」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요즈음 모두가 겪는 일이라며 한숨만 내쉬며 아이 셋을 한국 학교에 보내기가 벅차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 아이 하나 잃어야 함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떻게 도와 드려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북 가주에는 크고 작은 한국 학교가 50여 곳이 있고, 이중 반 이상은 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은 거의 한글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고, 또 다니는 교회에서 한글교육을 하지 않아도 기회를 얻을 수 없어서, 일반 한국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두 곳의 장단점은 있지만, 교회 학교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상 교육내지는 저렴한 등록금이기 때문이란다. 그 어머니께서도 자녀 셋을 교회 운영 학교로 보내 볼까 생각을 하셨는데 등 하교가 가장 큰 문제고, 아무래도 다니던 학교에 정도 들어서 쉽게 옮기지를 못하고 한 학기 쉬다 경기가 풀리면 다시 등록하겠다 하신다.
그렇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2005년 조사에서 미주 한인 학생 15%만 한글 수업 중이라는 귀동냥에 한 명이라도 기회를 더 주고 싶었다.
그런데 기회를 가진 부모님 혹자는 따끔한 지적을 하신다.
한글 교육 이래도 되는가, 특히 교사의 자질, 초등학생 위주의 학교 운영, 우후 죽순으로 생겨 분산된 학교, 중고등 학생이 되면 한국 학교를 회피하는 이유, 또 외국인을 한쪽 부모로 둔 자녀에 대한 교육 등등.
우리 교사들과 학교 관계자, 재외 동포 재단 등 정부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한번쯤 풀어야 할 숙제이고, 교사 자신들도 자기투자에 게으르지 말고, 학생 수나 교사의 수가 적은 학교는 합병 운영하여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학생들에게도 SAT II 한국어뿐만 아니라, 고교에서 한국 학교 수업이 제 2 외국어로 학점이 인정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준다면 굳이 한국 학교를 외면 하겠느냐며 중국 학교나 일본 학교를 예로 들으신다. 옳으신 말씀이다. 십분 공감 한다.
공감 하면서도 대책은 아직 멀다. 아쉽게.

「산 산 산 산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들 들 들 들에는 곡식들이 자란다……」 노래 말미에 꼭 이어서 하는 노래 말, 「세종 학교 학생들이 자란다」가 학생의 목소리로 귀에 들리고, 노바디에 맞춰 윙크를 하며 떨던 애교가 눈에 아른거린 한 주였는데, 한 학생의 이 메일을 받았다. 노래가 첨부된.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 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중략)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내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다.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기회가 없어서 등록비가 없어서 다니던 한국 학교를 그만 두는 우리 학생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하는 나의 꿈.
난 그 꿈을 믿는다.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에 함께할 우리 학생들이 있기에.

Thursday, April 1, 2010

설날 잔치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인해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
힘들어, 언제쯤 풀리려나, 못 살겠어, 죽겠어 가 세밑이라 그런지 더욱 맥 빠지게 하더니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으로 금방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 듯 하다.
지난 한해 우리 학교는 급등한 렌트비와 재적생 감소로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과외 활동의 마지막 선택이 한국 학교 등록, 그나마 활동의 스케줄에 따라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요즘같이 여러 가지로 힘이 들 때는 최우선 순위가 한국 학교 자퇴다. (모든 가정이 다 그런 것은 아님.)
2월 봄학기 등록이 다가와 지난 가을 학기 때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한결같이 등록금 걱정을 하시며 지금까지 해 오던 악기레슨을 그만 둘 순 없고,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안 보낼 수 없다고 하시며 등록금 삭감내지는 할인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불경기 속에서도 꾸준히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 주시고 학교 일이라면 두 팔 걷어 붙이고 도우시는 분들도 있다.

이번 설날에도 우리 학교는 예전과 같이 큰 잔치를 한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한복을 입고, 설날의 덕담을 들으며,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고 민속 놀이를 한다.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투호(投壺), 그리고 한국 연은 아니지만 연을 날리며 새해 소망을 빈다.
또, 정성껏 준비해 주신 떡국을 먹으며 가래떡의 유래를 듣는다.
떡의 흰색은 평화를, 가래는 길고 둥글다는 뜻으로 장수(長壽)와 모나지 않은 삶을 상징한다고 열심히 설명을 해 준다.
이해를 하는지 대답은 큰 소리로 하건만, 떡볶이 그릇에 시선은 집중되어 있곤 했다.
힘이 들어 못 살겠고 죽겠다고 신음을 하다가도 설날 잔치 음식 준비로 참석하신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 TV속 놀이인 줄 안, 이런 놀이를 어디서 해보냐며 표정이 밝고, 학생들의 얼굴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교사들도 교실 수업보다 힘은 들었지만 어우러져 함께 한 설날 수업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많은 학생들의 참석을 희망한다.

오랜 기간, 교사를 하면서 이번처럼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을 뵌 적도 처음이고, 학교 운영이 어려운 것도 처음이다.
기축년 새해,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 대한 온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그 동안의 위기가 기회가 되어, 경기 회복으로 못 살겠다느니 죽겠다는 표현은 이제 그만, 우리 자녀들에게 모국의 교육 기회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라면서, 지역의 동포단체나 기관, 교회 등에서 장소를 함께 나누며 사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본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인해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
힘들어, 언제쯤 풀리려나, 못 살겠어, 죽겠어 가 세밑이라 그런지 더욱 맥 빠지게 하더니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으로 금방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 듯 하다.
지난 한해 우리 학교는 급등한 렌트비와 재적생 감소로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과외 활동의 마지막 선택이 한국 학교 등록, 그나마 활동의 스케줄에 따라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요즘같이 여러 가지로 힘이 들 때는 최우선 순위가 한국 학교 자퇴다. (모든 가정이 다 그런 것은 아님.)
2월 봄학기 등록이 다가와 지난 가을 학기 때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한결같이 등록금 걱정을 하시며 지금까지 해 오던 악기레슨을 그만 둘 순 없고,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안 보낼 수 없다고 하시며 등록금 삭감내지는 할인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불경기 속에서도 꾸준히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 주시고 학교 일이라면 두 팔 걷어 붙이고 도우시는 분들도 있다.

이번 설날에도 우리 학교는 예전과 같이 큰 잔치를 한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한복을 입고, 설날의 덕담을 들으며,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고 민속 놀이를 한다.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투호(投壺), 그리고 한국 연은 아니지만 연을 날리며 새해 소망을 빈다.
또, 정성껏 준비해 주신 떡국을 먹으며 가래떡의 유래를 듣는다.
떡의 흰색은 평화를, 가래는 길고 둥글다는 뜻으로 장수(長壽)와 모나지 않은 삶을 상징한다고 열심히 설명을 해 준다.
이해를 하는지 대답은 큰 소리로 하건만, 떡볶이 그릇에 시선은 집중되어 있곤 했다.
힘이 들어 못 살겠고 죽겠다고 신음을 하다가도 설날 잔치 음식 준비로 참석하신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 TV속 놀이인 줄 안, 이런 놀이를 어디서 해보냐며 표정이 밝고, 학생들의 얼굴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교사들도 교실 수업보다 힘은 들었지만 어우러져 함께 한 설날 수업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많은 학생들의 참석을 희망한다.

오랜 기간, 교사를 하면서 이번처럼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을 뵌 적도 처음이고, 학교 운영이 어려운 것도 처음이다.
기축년 새해,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 대한 온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그 동안의 위기가 기회가 되어, 경기 회복으로 못 살겠다느니 죽겠다는 표현은 이제 그만, 우리 자녀들에게 모국의 교육 기회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라면서, 지역의 동포단체나 기관, 교회 등에서 장소를 함께 나누며 사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