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16, 2010

제빵 왕 김탁구

온 나라가 폭염주의보로 후끈 달아 오른 8월,
마냥 바라보던 솟대와 멱 감던 실개천이 있는 고향을 방문했다.
열대야로 밤을 낮 삼아 한 바퀴 돌아본 동네에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그 모습은 낯선 도시로 탈바꿈되어 솟대가 있던 곳에는 빌딩이, 실개천은 메워져 상설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하던 큰 느티나무는 청남대로 떠나고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팔각 정자가 들어 와 있었다.
다음 날, 들른 상당 공원에는 다니던 여학교가 이전을 해서인지 추억을 찾기에는 어설프고, 동아 극장이 없어진 후 처음 들어선 도민 탑만 덩그러니 보이며,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였다는 큰 표지판만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 뒷길(지금은 상당로)을 따라 한참 올라가 수암골 쪽으로 가니, 한참 뜨고 있다는 드라마 촬영 일이 잡혀 있다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나도,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하며, 달 동네이었던 이곳이 벽화로 단장되며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새로운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팔봉 제빵 점(1947년부터)안으로 들어가 보니 드라마에서 언급된 빵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올 적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관광객의 푸념은 자주 방문을 했다는 의미인가 보다.

팔봉 제빵 점에서 꿈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 김탁구, 이번 워크샵 기간 동안 나는 김탁구 같은 한 청년을 만났다.
키르키즈스탄 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온 고려인 3세, 김 블라디미르.
올해 나이 스물 셋,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앳된 이 청년은 교사 워크샵에 어떻게 온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한국어가 어줍었다.
「한국을 찾아라」역사 문화 책을 소개하고 시범 강의를 한 후, 시간만 되면 옆으로 와 특히 역사에 대해 묻던 내 아들 나이의 이 청년은 오랜 민족 분쟁으로 인해 근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나라에서, 오전에는 사립 학교에서 초등 학생을 대상으로, 낮에는 키르키즈스탄 국립대학교에서, 저녁에는 한국 교육원에서 고려인 보다 성인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한국의 문화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로 인하여 급속도로 전파되었지만, 역사는 교육 하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교재뿐이라며, 역사의 뿌리 없는 문화만 날 뛰어 수업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걱정이다.
한때 한국에 대한 멋있는 꿈 때문에 한국인 기업에 취업을 했었는데, 키르키즈스탄 문화 속에서 자란 자신과 회사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실망만 하고 떠났지만, 대신 대단한 매력이 있는 한국어 교사로서 미래의 꿈을 만들며 펼쳐가고 싶다며, 이름 블라디미르는 세상의 주인이란 뜻이라고 귀띔한다.
세 곳에서 바쁘게 한국어 강의를 하면「배우자 후보 순위 1위?」라는 질문에, 오죽하면 세 곳을 돌며 강의를 하겠느냐며 반문을 한다.
생계 유지가 어려워 남자가 하지 않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한국어 교사이며, 여자 친구 만들기도 힘들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며 불안한 미래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고려인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높을 탁(卓), 구할 구(求) 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가장 배 부른 빵을 만들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어 내며 명인의 자리까지 오른 이 시대 제빵 업계의 그 분처럼, 자신의 뿌리의 혼이 담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생계 유지조차 힘든 현실이지만,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이름이 실현되는 그 날이 건강한 이 청년 블라디미르에게도 곧 올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