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30, 2010

「한국을 찾아라」홍보를 위한 행진

올 해 나는 한국 학교 교사 25년 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어(국문학)를 전공한 것도 아닌데, 한국어(한글)교사를 하며 느끼는 점은 늘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교재를 구입하여 공부하고, 협회 연수는 거의 다 참석하며 듣고 배워 내 수업 자료로 만들어 사용했지만, 한계가 느껴지고 있을 때 온 라인 강좌라는 프로그램이 생기기 시작하여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쉽게 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올 여름 재외동포 재단과 함께 디지털 서울 문예대에서 내가 그렇게 부족하다고 느껴 공부해 보고 싶었던 분야를 위한 프로그램(한국어 교원 양성 과정)이 개설되어 두말 없이 영사관을 통해 등록하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재미 한국 학교 협의회에서도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집중 연수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국어학(한글)에 대한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배우면서 가르친다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가슴 벅차게 다가오는 기쁨이었는데, 올 해는 그 기쁨을 배로 누릴 수 있어 뿌듯함에, 교수법을 학습자에 맞게 정리를 해보고자 계획을 했는데, 「재외 한글 학교 교사 초청 워크숍」에 북 가주 협의회에서 발간한 「역사 문화 책, 한국을 찾아라 I」소개 및 시범 강사, 홍보 위원으로 추천 되어 서울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서, 구주 지역 13개국, 북미 지역 2개국, 아주 지역 12개국, 아중동 지역 12개국, 중남미 지역 7개국, CIS지역 8개국에서 총 175명이 참석하여 재외 한글 학교 교사의 한국어와 한국 문화 교육의욕 고취를 목적으로 일주일간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 되었는데, 나는 각 나라의 대표자 및 교장 선생님들께 협의회 발간 역사 문화 책 홍보를 위한 강의를 하였다.
주어진 시간 20분, 책의 발간 동기부터 사용법까지의 많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쉽고 빠르고 재미 있게 전하기 위해, 「왕소군과 모연수」중국고전 이야기를 동원하며 강의를 하였는데, 의외의 반응이 빨리 왔다. 대표자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신 교장선생님들께서 시간이 되면 시범 강의를 부탁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퇴소하는 날까지 저녁 식사 후, 방을 돌며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 및 시범 수업을 하게 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모였지만, 그 동안 한글 수업을 하면서 늘 아쉬운 부분은 같았다.
한글 학교 교사로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았기에 갖는 역사 수업의 두려움,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교재가 막연히 없다는 점 등은 어느 나라던지 동일한 고민 덩어리였다.
교과 과정에 맞춰 유치반 과정부터 고급반 과정까지 시범 수업과정을 경청하던 교사들은 갈증 해소란 표현을 하며 이구동성으로 감탄하며 관심을 갖고 교재 구입을 즉석에서 신청 했다.
특히 CIS 지역에서 온 고려인 3세인 젊은 교사들은 매일 저녁 강의하는 방마다 찾아와 서툰 한국어로 질문을 하며 큰 관심을 보였고, 내 아들과 동갑인 23세의 김 블라디미르는 교재의 단원 명의 뜻까지 필기를 하는 열의를 보이며「세상의 주인」이 자기 이름의 뜻이라고 설명해 주기도 했다.
한글 보급을 목적으로 파견된 분들은 아니지만, 아 중동 지역에 요즘 불고 있는 한류의 열풍으로 현지인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드라마 등을 통한 접근이 좋은 방법인데, 노트북에 다운로드해 들고 다니지 못 함에 불편했는데, 교재의 교사용 CD를 보며 흡족해 하였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청와대 방문이 결정 되었다.
보통 그런 곳에 가면 지정 테이블에 앉아, 지정된 사람만 한두 마디 하게끔 철저한 사전 연습을 시키는데, 분명 가나가 순으로 테이블이 정해지면 제일 마지막 구석진 자리일 텐데, 어떻게 기회를 만들어「역사 문화 책 」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을까 고민하였다.
생각대로 구석진 자리, 정해진 발표자 외에 두 명의 발언자에서도 선택되지 않아, 온통 기회를 잡을 생각 밖에 없었는데, 대륙 별로 사진 촬영이 있다 하기에 무조건 앞쪽 줄에 섰지만, 앞줄은 지정석이라 뒷줄로 또 밀렸다. 사진 촬영 후, 내려 올 때 기회를 잡아 다른 대륙의 교사들이 줄을 서는 동안 김윤옥 영부인께 책에 대해 설명한 후, 한 권 드리고 싶다고 하자 제지를 하여, 기회를 엿보았다.
모든 사진 촬영이 끝난 후, 재외 동포재단 권영건 이사장님을 앞세워 다시 잠깐 만나 보충 설명을 드리니, 주변의 제지를 뿌리치는 장면을 보셨는지「그 용기로 계속 힘써 주세요」하시며 비서실로 책을 보내 달라고 하셨다. 일단의 성공, 퇴소하는 날, 총알 택시를 타고 나는 홍보대사로서 책임을 완수 했다.
저녁 시간을 활용하여 책을 소개할 때는, 그 동안 학교에서 내가 수업 했던 자료들을 보여 주며 이렇게 수업을 했었는데, 「역사 문화 책 I」의 발간으로 인해 보다 더 좋은 자료들로 수업할 수 있다고 덧붙여 설명하기도 했다.
열심히 책을 소개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한글 날 특집 다큐 팀」이라는 PD가 한참을 지켜 보더니 2,30분 정도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책을 출판 하게 된 동기, 교재 사용법, 교재 호응도 등 다양한 질문에, 나는 정성을 다해 대답하며 촬영에 임했다. (YTN 한글 날 특집, 「한글, 세계를 품다」로 방영 됨.)

워크숍이 끝나고, 개인적으로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위한 공부 방 몇 곳을 방문 했다.
아직 한국 말이 서툰 어머니와 자녀들이 하루 세 시간씩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기회를 얻어 오전 오후 두 곳에서 세 시간씩 수업을 했다.
역사 문화 책의 빈 지도에 살고 있는 곳, 가 보고 싶은 곳을 표시하며 지역 특산물까지 찾아 보고, 김치 담그는 법, 처음 담그며 겪은 일등 이국 생활을 이야기하다 보니 서로 위로자가 되어 가고 있어 가슴 뭉클함을 느꼈다.
모교를 방문하여 유학 온 중국 학생들을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우리 교재의 선덕여왕 부분에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벌써 역사 학자가 되어 있었고 가지고 간 책이 한 권도 없어 기부를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귀국하여, 워싱턴 DC의 초청에 협회에서 또 추천을 해 주셨다.
전체 강의 역사 문화 한 시간 40분, 분 반 강의 SAT II 한국어 두 시간이 주어졌다.
워싱턴 DC는 고학력의 분들이 계신다는 정보를 갖고 더 많은 준비를 하고 갔다.
이미 서울에서 강의를 한번씩 들은 교사들이 있어 그 분들의 소개로 이미 교재에 대해 듣고 있는 분들이 많았고, 내노라는 역사 학자들도 계셨고, 미 현지 정규학교의 교사도 계셔서 시간을 잘 활용하면 효과가 배가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강의 중 돌발의 질문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 질문을 무시해도 괜찮을 만큼 나는 사전 준비를 해 가서 두렵지 않았다.
워싱턴 DC 지역은 워싱턴, 메릴랜드, 버지니아 지역이 연합된 곳으로, 미 정치 일 번지 지역임에도 우리의 역사 문화 교재는 꼭 필요하고 유용한 교재임이 다시 한번 인증되었다.
이곳을 다녀오며, 정저지와 (井底之蛙), 학생들에게 늘 가르쳤던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출강이었다.
시애틀은 올해 두 번을 다녀 왔다.
집중 연수를 받기 위해 한 여름에 다녀 왔고, 집중 연수를 하기 위해 결실의 계절 가을에 갔다.
역사 문화 교재로 하는 한글 수업, 전체적인 수업 과정 등, 네 시간을 쉬지 않고 연속으로 강의를 하며 그 동안 한국 학교에서 배우며 쌓은 경험을 나누는데, 선교지로 다음 주에 떠나는 분께서 강의를 들으시다 질문을 하셨다.
혹시 그 교재 선교지에 바칠 의사가 없느냐 고.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물론 있습니다.

그 동안 쉬지 않고 학생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가르치던 것이 이 가을 이렇게 결실로 맺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며, 어디든지 언제던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이제는 즐겁게 풀어 놓아, 교재를 사용한 모든 분들이 이 교재가 한국을 알리는 문화 외교서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게 될 그날까지 함께 하고 싶다.

Tuesday, November 23, 2010

가을 편지

1980년 5월 18일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던 친구를 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나게 되었다.
시를 무척 좋아하던 친구는 3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나왔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한 작은 수첩을 꺼내, 시 한편을 읽어 준다.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 하지 않은 코스모스처럼/ 풋풋한 가을향기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차 한 잔을 마주하며 / 말없이 눈빛만 마주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빛처럼 /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 속에 / 향기가 녹아 들어 / 그윽한 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 / 초라하지 않으면서 /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에 억새처럼 출렁이는 / 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시를 잘 쓰던 친구라 당연히 친구의 작품인 줄 알고, 안경의 초점을 맞춰 가며 깨알처럼 적힌 시를 천천히 음미하며 낭독하는 중에, 요즘 유행하는 최신식 전화겸용 컴퓨터까지 되는 작은 패드를 손가락으로 밀 듯 무언가에 집중하던 친구가 하는 말, “아! 이 분” 그럴 줄 알았다는 투다.
이외수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란 시였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은 대학 신입생이라 해도 손색이 없고, 50을 넘긴 중년이란 표현이 무색했다.

늦가을의 파란 하늘을 쳐다 보니 여름에 읽었던 그 시가 생각나며, 함께 한국 학교 교사를 하셨던 박혜서 선생님이 떠올라 그 시를 메일로 보내 드렸더니, 뜨끈 뜨끈하게 도착한 선생님의 마음, 「miss you~ 」라 써 있는 파란 카드와 함께 한편의 시를 선생님도 보내 주셨다.

수확의 가을이 끝나면 /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자신들의 시린 발목을 덮는다.
바람이 불면 세월의 편린처럼 / 흩날리는 갈색 엽신들.

모든 사연들은 / 망각의 땅에 묻히고
모든 기억들은 / 허무의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다.

나무들은 인고의 겨울 속에 / 나신으로 버려진다.

낙엽은 퇴락한 꿈의 조각들로 썩어가지만 / 봄이 되면 다시금 푸른 숲이 된다.

숲의 영혼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낙엽 / 이외수)

친구가 읽어 준 시와 선생님이 보내 주신 시를 연결하여 몇 번을 읽으며, 가을로 빠져 드는데,
논어 학이편(論語 學而篇)의 명언 중 명언이 기억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공자 가라사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다.
벗이 있어 생각을 함께 나눔이 이렇게 큰 기쁨이 되어짐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가슴 깊이 느껴진다.

Friday, October 29, 2010

Mr. Rogers’ Neighborhood

언젠가, 아들은 컴퓨터로 열심히 무엇을 보느라 부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정신 없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하여 가까이 가서 보니, 체크 무늬 모직 스웨터를 입은 미스터 로저스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컴퓨터 속의 후레드 로저스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넋 놓고 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딸아이도 함께 합석을 하여 미스터 로저스가 하는 말에 숨을 죽이며 듣고 있었다.
「다 큰 애가 뭐 이런걸 보느냐」는 질문에 아들은 어렸을 적 「Mr. Rogers’ Neighborhood」은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은 모든 것, 새로운 물건들의 사용 방법, 일반 생활의 기본 상식, 예절 등을 가르쳐 준 TV 프로그램이라면서 지금도 컴퓨터에 저장을 해 놓고 그 때를 생각하며 자주 보곤 한다고 하니, 딸도「맞아!」하며 맞장구를 친다.
돌이켜 보니 그렇다.
미국 생활이 생소한 상황에서 아이는 태어났고, 일은 해야 하는 형편이니 교육 방송 격인 채널 9을 아이에게 계속 틀어 주게 되어, 아이는 자연스럽게 이 프로가 바로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이 프로를 통해서 미국을 배우며 경험하게 되었다.
동생이 태어나도 상황은 변하지 않아 두 남매가 늘 함께 보면서 곧장 잘 따라 하며 미국의 문화에 적응되어 갔다.
서너 살 무렵, 아이는 갖고 놀던 작은 장난감들을 줄을 맞춰 정리 정돈 하며 무어라 하기에 무슨 소리인가 물으니 미스터 로저스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여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때 잘 배워 습관이 들어서인지, 지금도 혼자 사는 아파트에 가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정리 정돈을 철저하게 해 놓고 살며, 이웃에 대한 예의, 예절이 반듯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은 사뭇 다르다.
「Mr. Rogers’ Neighborhood」와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아서인지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아서인지 정리 정돈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업 후에도 자기 물건이나 앉았던 의자조차도 아무렇게나 두고 교실을 도망치듯 떠나고, 심지어는 데리러 오시는 부모님들도 이런 상황을 묵인할 때가 많다.
사용한 컵도 책상 위에 그대로 놓고, 사용한 냅킨 또한 바닥에서 뒹굴어도 줍는 경우가 흔치 않고, 여럿이 모여 함께 간식을 할 때도 어른들이 들기 전에 불쑥 손을 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분명 함께 하는 간식이면 서로 적당 량을 나누어 가져가 먹는 것이 보이지 않는 약속인데, 주변 사람 생각 않고 혼자만 야금 야금거려도 주의를 주지 않으니 가끔은 교사로서 훈계를 하면 서운한 듯 몇 주 영 불편하다.
특히 한국 학교 수업 시간 지키기는 가장 어려운 듯, 첫째 시간 수업은 거의 자유 시간이 될 때가 많다. 수업 준비물과 숙제도 학부모님과 자녀가 서로 떠밀며 탓만 하면서, 모르쇠를 잡는다.
그러면, 이 학생들이 가정과 미국 정규 학교 생활도 이럴까?
대부분 부모님들께서는「절대 아니다.」라고 대답하신다. 무엇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왜 한국 학교에서만 학생들의 행동이 이런 것이지?
교사들은 매 시간 목에 힘줄이 돋도록 목소리 높여 설명을 하고 부탁을 하며「절대 하지마!」「절대 안 돼!」를 외치는데 왜「절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다정하게 얼굴을 마주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하며, 몇 번씩이라도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는 후레드 로저스가 문득 생각이 난다.
한번의 설명이 두 번째는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하는 훈계로 바뀌고, 세 번째는 마지 못해 짜증 섞인 명령을 하는 권위 있는 교사로서 교실을 지키기에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었는지 되돌아 보며, 학년 초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서약한 서약서의 내용에 다시 한번 나를 비추어 본다.
「우리는 세종한국학교 태극기 반입니다.
우리는 선생님과 모든 반 친구들을 존중하며, 우리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집니다.
한국 학교에 와서 많이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며 숙제를 잘 하겠습니다.
학교의 약속을 지키고 훌륭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랄 것입니다.」

Monday, October 18, 2010

깻잎 머리

대학 때 가정교사를 했던 학생의 어머님께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오셨다.
3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멋쟁이이신 어머님은 광수(그 개구쟁이 학생, 지금은 치료 잘 한다고 시내에서 입 소문난 유명한 치과 의사)의 소식을 전하며, 광수가 꼭 선생님께 자장면을 대접해 드리라 했다며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따라 나섰다.
동네에서 제일 비싸다는 중국집으로 가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이 더위에 무슨 자장면을 먹는담?」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때를 맞춰 광수가 전화를 해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하는 듯 감미로운 목소리가「선생님~」을 불러 주며, 꼭 자장면과 탕수육을 드시라고 한다.
목소리에 취해 얼떨결에「왜?」라고 물으니, 과외 받던 때, 시험만 끝나면 사주셨던 자장면에 대한 선생님의 추억이라며, 출국 전 치과에 들려 진료 받고 가라는 말까지 한다.
맛보다 감동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남김없이 먹고 나오는 데, 머리가 벗겨져 더 늙수그레한 깡마른 남자가 배달 통을 들고 들어오며, 나와 동행하신 분들을 보고 웃으며 다가오다 내 쪽을 보더니 반가움이 역력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순간 움찔 놀라 귀를 의심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이었다.
듣기로는 대기업에 다닌다고 했었는데, 강제 명퇴한 후 고향에 와서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내 얘기가 나왔다며 배달 밀렸다고 성화인 부인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40여 년 세월을 한달음에 쏟아 내며, 내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며 아직껏 변하지 않은 깻잎 머리(지금 용어로)를 말했다.
지금에야 헤어 스프레이도 있고 젤도 있고 폼도 있지만 그 당시는 보통 앞머리를 일자로 짧게 자르던지, 옆으로 넘겨 실핀으로 고정하는 정도였는데, 최신 유행인 「윤복희」
스타일로 멋을 한껏 부리던 나는 앞머리를 비스듬히 내려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를 고정하고 다녔었는데 부러움의 대상으로 눈총을 자주 받곤 했었다.
친구는 여기 저기 전화를 열심히 하면서 반창회를 열자고 했다. 내 일정은 무시한 채.
연결된 전화를 건네며 거울 보듯 통화하라고 하기에 신기함에 보니 영상 통화였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내 기억에서도 한번도 지워지지 않았던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일거수 일투족 기억해 주시며, 아직도 앞머리 내리고 다니냐고 물으신다.
너무나 뵙고 싶고 그리웠던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눈물을 보이시며 보고 싶었다고 하신다.
점심 장사 망쳤다고 투덜대던 안주인도 내 동생의 동창생이라며 얼음을 동동 띄운 수박 화채를 들고 나와서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군다.

한 나절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와 닿아 하루가 아쉬움에 일렁거린다.
나도 교사가 되리라고 다짐하도록 했던 선생님.
50이 넘은 제자를 아직까지도 일일이 기억하며 칭찬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선생님.
이런 든든한 선생님이 계시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늘 지켜주고 칭찬으로 이끌어 주는 그런 교사, 또 학생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 한번쯤 뵙고 싶어하는 그런 교사가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Thursday, September 16, 2010

제빵 왕 김탁구

온 나라가 폭염주의보로 후끈 달아 오른 8월,
마냥 바라보던 솟대와 멱 감던 실개천이 있는 고향을 방문했다.
열대야로 밤을 낮 삼아 한 바퀴 돌아본 동네에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그 모습은 낯선 도시로 탈바꿈되어 솟대가 있던 곳에는 빌딩이, 실개천은 메워져 상설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하던 큰 느티나무는 청남대로 떠나고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팔각 정자가 들어 와 있었다.
다음 날, 들른 상당 공원에는 다니던 여학교가 이전을 해서인지 추억을 찾기에는 어설프고, 동아 극장이 없어진 후 처음 들어선 도민 탑만 덩그러니 보이며,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였다는 큰 표지판만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 뒷길(지금은 상당로)을 따라 한참 올라가 수암골 쪽으로 가니, 한참 뜨고 있다는 드라마 촬영 일이 잡혀 있다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나도,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하며, 달 동네이었던 이곳이 벽화로 단장되며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새로운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팔봉 제빵 점(1947년부터)안으로 들어가 보니 드라마에서 언급된 빵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올 적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관광객의 푸념은 자주 방문을 했다는 의미인가 보다.

팔봉 제빵 점에서 꿈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 김탁구, 이번 워크샵 기간 동안 나는 김탁구 같은 한 청년을 만났다.
키르키즈스탄 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온 고려인 3세, 김 블라디미르.
올해 나이 스물 셋,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앳된 이 청년은 교사 워크샵에 어떻게 온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한국어가 어줍었다.
「한국을 찾아라」역사 문화 책을 소개하고 시범 강의를 한 후, 시간만 되면 옆으로 와 특히 역사에 대해 묻던 내 아들 나이의 이 청년은 오랜 민족 분쟁으로 인해 근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나라에서, 오전에는 사립 학교에서 초등 학생을 대상으로, 낮에는 키르키즈스탄 국립대학교에서, 저녁에는 한국 교육원에서 고려인 보다 성인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한국의 문화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로 인하여 급속도로 전파되었지만, 역사는 교육 하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교재뿐이라며, 역사의 뿌리 없는 문화만 날 뛰어 수업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걱정이다.
한때 한국에 대한 멋있는 꿈 때문에 한국인 기업에 취업을 했었는데, 키르키즈스탄 문화 속에서 자란 자신과 회사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실망만 하고 떠났지만, 대신 대단한 매력이 있는 한국어 교사로서 미래의 꿈을 만들며 펼쳐가고 싶다며, 이름 블라디미르는 세상의 주인이란 뜻이라고 귀띔한다.
세 곳에서 바쁘게 한국어 강의를 하면「배우자 후보 순위 1위?」라는 질문에, 오죽하면 세 곳을 돌며 강의를 하겠느냐며 반문을 한다.
생계 유지가 어려워 남자가 하지 않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한국어 교사이며, 여자 친구 만들기도 힘들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며 불안한 미래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고려인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높을 탁(卓), 구할 구(求) 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가장 배 부른 빵을 만들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어 내며 명인의 자리까지 오른 이 시대 제빵 업계의 그 분처럼, 자신의 뿌리의 혼이 담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생계 유지조차 힘든 현실이지만,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이름이 실현되는 그 날이 건강한 이 청년 블라디미르에게도 곧 올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Tuesday, August 31, 2010

노란 운동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아들에게 운동화 한 켤레를 선물로 받았다.
쿠션 없이 밋밋하게 평평한 고무 바닥, 갈색 가죽 안창, 데님 같은 천으로 만들어져 발등을 감싸는 스타일의 가볍고 편한 운동화인데, 색깔이 노란 색이라 선뜻 신기가 쉽지 않아 겨울이 지나고, 봄을 보낸 후, 여름 맞이로 흰 바지를 입을 때 잠깐 신어 보았다.
7부 흰 바지에 신은 이 노란 운동화를 제일 먼저 알아 준 학생은 운동화 마니아 민우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계속 책상 밑을 주시하더니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신발을 벗어 보라고 안달, 너무 깜찍하다며 어디서 샀느냐고 묻는다. 「아들의 선물」이라는 답으로 하루를 마쳤고, 그 다음 주, 민우는 내 신발과 똑 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고 수업에 들어 왔다.
2006년 여름, 아르헨티나를 여행 중이던 블레이크 마이코스키이라는 미국의 젊은이가 맨발로 걸어 다니는 현지 아이들의 가난한 생활을 목격한 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그 지역의 민속화인 알파르가타를 본 후, 영감을 얻어 제작해 한 켤레가 팔릴 적마다 제3세계의 신발 없는 아이들에게 기부하겠다는 창업 약속을 한 신발이라, 좋은 일 한 번 해보고 싶어 온라인 주문으로 샀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발이름의 의미는 내일을 위한 신발(Shoe for Tomorrow)이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2010년 여름, 아들이 사주고, 민우가 알려 준 의미 있는 노란 운동화를 신고, 나는 내일을 위한 한글 교사로서 열심히 뛰어 다녔다.
6월, 9주간의 사이버 연수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어학, 일반 언어학 및 응용 언어학,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론 영역, 한국 문화, 한국어 교육 실습, 그리고 영 유아 교수 방법론, 학습 심리학, 아동 상담, 아동 생활지도와 놀이 지도까지 새로운 학문을 접했다.
7월에는 시애틀에서 재미 한국 학교 협의회의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집중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다시 공부하며 정리하였고, 8월에는 한국으로 가서, 재외 한글 학교 교사 초청 워크숍을 통해 한국어 교육의 큰 그림을 보았다.
또 세계의 한국어 교사들에게 북 가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편찬 출판한 역사 문화 책을 소개하며 강의 시연을 하고 각국의 교사들과 정보를 교환하며 현지 실정에 맞는 교육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9월, 이제는 내가 몸 담고 있는 학교의 개학을 준비한다.
여름 동안 배우고 익힌 학문을 교실에서 직접 풀어 놓으며, 배우고 경험한대로 우리 학생들에게 좀더 유익한 내용의 수업을 재미있게 하여, 글자만 가르치기보다는 살아 있는 역사와 문화, 전통 예절을 알려 주며 체험하게 하면서, 글자 속에 담긴 민족의 정신, 혼까지도 가르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명명된, 내일을 위한 신발(Shoe for Tomorrow)을 창안한 것처럼, 이제 25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내일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좀 더 현실적이고, 현지화 시킨 재미있고 꼭 알아야만 하는 우리의 것으로 각인시켜 배우게 하고, 더 나아가 타 민족에게까지 보급하여 세계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 본다.

Wednesday, July 7, 2010

김철수 선생님

6월의 함성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주며, 역시 박지성임을 다시 확인하게 하였다.
6월 12일, 4년을 기다려온 역사적인 날, 남아공 월드컵 첫 게임, 그리스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대결을 하는 날이었다.
한국 학교는 방학을 했지만, 개인으로 한글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의 수업이 저녁에 예정되어 있어서 수업을 위해 (학생들과 대화가 되려면) 축구 중계방송 시청을 새벽부터 하게 되었다.
지난 주 수업 시간에 느닷없이 남아공 월드컵 한국 대표팀 최종 엔트리가 누군지 아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끙끙대던 내 모습이 우스웠던지, 다른 한 학생이 친절하게 이 메일로 방송 시간과 채널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덧붙인 설명, 그리스는 키 큰 선수들이 많고 세계 13위, 2004 유로 우승팀.
아직까지 한국이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이긴 적이 없으니 이번에 그리스 팀을 이길 수 있도록 꼭 응원할 것.
학생의 연락을 받고 신문을 찾아, 선수와 그들의 등 번호, 포지션, 그리스 전에 출전하는 선수 명단 등을 알아 보고 경기를 시청하니 훨씬 재미 있었다.
쉰 목소리로 진행한 저녁 수업 시간, 교사와 학생은 혼연 일치로 한 시간 내내 첫 골의 주인공 이정수와 그림 같은 쐐기 골을 터뜨린 주장 박지성에 대해 아는 대로 열을 올리며 칭찬일색으로 수업을 마쳤다.

박지성을 닮고 싶어하는 한 학생이 있다.
평발, 볼품없이 깡마른 체격, 작은 키로 이 지역 축구 팀에 속해 있는 민영이는 박지성 박사다.
그 옛날 펠레나 마라도나같이 화려한 개인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차범근처럼 총알 같은 스피드를 가진 것도 아닌, 프로팀은커녕 대학 진학조차 힘들었던 평범한 청년 박지성을 자서전으로 만난 민영이는 늘 박지성을 영웅으로 노래한다.
그래서 알게 된 사실.
많은 사람들은 오늘 날의 박지성을 보며 그의 성실한 노력과 히딩크 감독과의 만남만을 이야기 하는데, 이 보다 앞서 탄탄한 기본기, 강철같은 체력, 영리한 전술구사 능력을 소리 없이 만들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은 안양 초등학교에서 이영표 선수를 이미 키웠고, 수원 세류 초등학교로 전학 온 축구를 좋아하는 박지성을 만난 그가 어린 박지성에게 제일 처음 시킨 것은 리프팅 연습이었다. 어린 박지성 선수에겐 지겹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해온 3년의 리프팅 연습, 그의 6가지 기본 전술에 응용 기술을 더해 익혀 가던 박지성은 어린 나이에 공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운동장 전체를 볼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전날에는 자기가 뛰게 될 모습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보게 하면서 스스로 경기를 만들어가게끔 하는 상상 속의 축구경기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며 창의력을 갖게 했다.
격려와 긍정적 사고로 가르침을 받은 오늘의 영웅인 이영표와 박지성, 그 외의 선수들을 키워 낸, 그 분은 바로 김철수 선생님이다.

한글 학교 교사를 하면서 한번도 생각 못한 교육 방법, 이미지 트레이닝.
끊임 없는 격려와 따뜻한 위로로 긍정적 사고를 가질 수 있게 가르치신 분,
그 분이 감당한 2%의 역할로 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100% 안겨주며 많은 학생들이 꿈을 갖게 해준 분, 사재를 털어서라도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분, 기억되지 않고, 알아주지 않아도 지금 그 곳에서 변함없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분, 이 분을 교사로서 닮고 싶다.
훗날, 우리 학생들이 각자의 직위에 맞는 곳에서 대화를 할 때, 조국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모국어가 있다면, 거리낌 없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자랑스런 학생들을 상상하며,
김철수 선생님! 존경합니다.

Tuesday, July 6, 2010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코 높이만큼 높아진 입에, 시선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인지 엉덩이로 문을 열며 들어온 아이는 수업 중임에도 책상에 엎드려 한숨만 쉰다.
이럴 때는 다년간의 경험에 의해 경고보다는 무관심이 최선이다.
「자~, 이 글은 수필가 피천득님의 금아문선에 실린 글로 외동딸 서영이에게 보내는 글이다. 정확하게 소리 내어 잘 읽고, 잘 듣는다. 그럼 이쪽부터 시~작」
한 문단씩 읽어 가고 있는데 엎드려 있던 아이, 「저는 그 종이 못 받았는데요」 하며 부스스 일어나 교재 복사물을 찾는다. 화를 많이 삭인 듯 보인다.
교재를 다 읽고 글의 종류를 설명해 주고, 누가 누구에게 쓴 글인가에 대한 질문에 반 학생들은 한결같이 의아해 한다. 왜 편지를 써요?
하기야 이 책이 출판 되었을 때가 반 학생들의 부모님 출생 년도보다 오래 전이니까 시대를 이해 하기 어렵겠지.
쉬는 시간이 되기 무섭게 모두 나가는데 이 아이는 멍하니 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프롬 갈 생각?」관심을 보이면 털어 놓게 돼있다. 오늘 아침에 엄마와 싸웠단다. (싸웠다는 표현에 깜짝 놀랐지만) 누가 이겼냐고 물으니 멋쩍게 웃는다.
준비 된 둘째 시간 수업 급 변경, 칠판에 시조 한 수를 적었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시면 이 몸이 있었을까 하늘 같은 가 없는 은혜 어디 대어 갚사오리.」
아버지가 딸에게 자상하게 쓴 편지를 읽었고, 부모님의 끝없는 은혜를 노래한 시조 한 수를 읽으며 시작한 둘째 시간에는 부모님께 편지를 쓰도록 했다.
「어머니 날이 오니까 이거 너무 형식적이지 않아요?」하며 수업거부를 한다.
가끔 애용하는 준비된 노래를 들려 준다.
「엄마가 보고플 땐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 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고요, 울고도 싶어요……
엄마가 그리울 땐 엄마 편지 다시 보고, 엄마 내음 느껴지면 눈물이 납니다……」
촌스럽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면서 흥얼거린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분위기 최고조일 때 빨리 감정 정리하여 편지 마무리 하라고 하자, 엄마와 싸웠다는 이 아이, 울면서 하는 말, 「선생님 그 노래는 제발 틀지 말아요」
세대를 막론하고 엄마란 단어는 눈물 샘을 자극하고, 콧등을 시리게 하고, 가슴을 저미게 하나 보다.
흰 종이에 「엄마 미얀해요」만 연거푸 써 놓고 아이는 깊은 반성을 하나보다.
「그만~」이라고 하자, 아이는 더 진하게 쓴다. 「엄마 살랑해요」라고.

치어 리더

처음 치어리더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웃음만 띄웠다.
치어리더란 그저 좀 예쁘고 몸매 괜찮은, 아니면 선생님께서 봐 주는 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하고 싶으면 누구라도 금방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 했었다. 초등 학교 운동회 때면 꼭 앞으로 불려 나가, 우리 편 이겨 라, 힘 내라, 힘! 을 외칠 때마다 꽃 수술을 손에 들고 흔들며 응원가 리듬에 따라 무용을 했던, 나의 그 수준으로 치어리더를 생각하고, 그래도 우리 애는 전후자 모두 해당 사항일 테니까 하는 엄마의 무지의 자만으로, 아이는 그 웃음을 긍정에 가깝게 받아 들였다.
학기가 끝날 무렵, 신청서를 내고 혼자 집에서 뭔가를 열심히 연습한다.
혼자 작품을 만들어 연습하는 거란다. 일차 오디션 시범용으로.
서류 심사 되고, 일차 관문에 통과되고, 배워 온 기본 동작으로 이차 심사가 남아 있는데, 연습 도중 넘어져 팔과 발목을 다치게 되었다.
울고 불고 난리 법석이 일어났다. 「야, 네가 안되면 누가 되냐? 걱정 마, 걱정 마」 하며 안심을 시키지만 이것도 여기의 실정을 전혀 모르는 엄마의 어기 장에 불과 한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지만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연습 일마다 비록 연습은 하지 못 하더라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했다.
기다리던 날, 아이는 팔 보호대를 어깨에 메고 다리를 절면서 마지막 오디션에 참가 하였다.
평소 실력만큼, 연습한 만큼 실력 발휘 못 했다고, 기회를 다시 한번 달라고, 코치에게 부탁 해도 형평성으로 인한 규칙으로 아이는 시무룩하게 집으로 돌아 왔다.
그 날 저녁, 우리는 기도원에 올라 갔는데, 아이의 기분은 영 풀어질 줄을 몰랐다.
저녁 늦게 몇 번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 오는데 산 속이라 잘 터지지 않다가 밤 11시경 확인된 내용, 「You got it」
저녁 8시 학교 게시판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확인 한 친구가 날린 것이었다.
그 순간부터 시작된 찬양,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 할 수 없네, 나는 포기 할 수 없네」반복 또 반복.
그래서 아이는 학교 최초의 아시안, 최초의 한국인으로 기대하던 치어리더가 되어 여름방학 동안 시작된 합숙 훈련, 매일 하는 고난도 연습을 무리 없이 소화 하며 당당하게 자리를 굳혀 갔다.
그 옛날, 시골 초등 학교 운동장에서 청 기나 백 기를 흔들거나 꽃 수술을 흔들던 수준과는 내용면과 질 모두 비교조차 되지 않는 고차원의 것 임을 새삼 느끼며, 백인 전유물로 화합과 질서를 생명만큼 귀하게 여기는 치어 팀에 딸이 있음이 자랑스러워졌다.
각종 게임 때마다 앞에서 펼치는 절도 있는 다양한 동작들, 환호하는 관람객, 특히
지쳐 있는 팀에게 격려를 보내는 애교 있는 동작과 구호, 이에 힘을 얻어 뛰는 팀 선수들.

어머니 날, 아버지 날에 아이는 그 동안 찍어 두었던 사진들을 가지고, 오려 붙이기 한 작품을 우리 부부에게 선물 했다.
해 마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더니, 올 해도 우리를 실망 시키지 않고 재치 만점, 웃음 만발의 선물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엄마는 나의 치어리더예요」라는 말,
아니, 엄마가 겨우 치어리더? 이건 어머니의 위상 비하이며 추락이다 란 생각이 들었다.
겨우 치어리더!
격한 감정을 억제하며 태연한 척 영한 사전, 영영 사전을 찾아 본다.
그럴싸한 좋은 뜻만을 가려본다. 격려하다. 지탱하다. 기분을 좋게 하다. 기운 나게 하다. 지지자. 안내자. 지주(支柱).
여기서 또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며, 그럼 그렇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아무런 관문 통관 없이 얻은 칭호, 치어리더.
내가 정말 아이의 격려자, 지지자, 안내자, 기분과 기운을 나게 하고 좋게 하는 사람인가?
또 다시 고민에 싸이며, 치어리더가 되고자 다친 팔에 보호대를 메고, 다리를 절룩거리며 악착스럽고 끈기 있게 준비했던 오디션을 치르고 명명(命名)된 딸의 칭호에 박수를 보내고, 그 좋은 이름을 엄마에게도 붙혀 준 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딸아, 엄마는 너의 영원한 치어리더야, 알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님을 사랑 합니다. (시편 18;1)」

자장면과 노래방

딸 아이가 꽃 다발을 안고 집으로 들어 온다.
「왠 꽃?」,「생일이라고…」말꼬리를 흐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피시 웃었다.
학교 수업 끝나고, 세 시간씩 치어 리더링 연습하고 오는 아이는 피곤한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깨를 들썩 들썩, 엉덩이를 흔들 흔들 거리며 꽃 다발을 안은 채, 한 바퀴 돌며 흥얼거리다 왜 웃느냐며 묻는다.
첫 직장을 갖고, 처음 맞은 내 생일, 크리스마스가 껴서 애매 모호한 날, 눈이 오려는지 낮은 구름에 기분까지 우울한 날, 무슨 용기인지 출근하면서 꽃집에 들려 나이 수만큼 빨간 장미를 샀다.
곱은 손 비벼가며, 꽃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니 모두들 놀라며, 「왠 꽃?」하는데, 나 역시도 「생일이라고…」하며 말을 흐렸다.
하루 종일 온갖 추측이 난무하며, 사무실의 분위기는 높은 새털 구름이 피어 올라 있었다.
「니가 샀니?」「아니, 훼라가, Free Gas Card 하고 줬어, 근데 엄마 왜 웃어?」「으~응, 아냐」「어~엄마~」
오늘 저녁 엄마 과외 가는 날인데,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은근히 기대 하며) 기다릴 수 있냐고 물으니, 배가 엄청 고프단다.
고프겠지, 점심에 샌드위치 하나 달랑 먹고, 오후 5시까지 과격한 몸 놀림을 계속 해대고 왔는데.
나이 수만큼의 장미 꽃을 사는 바람에, 며칠 분 점심 값 다 날리고,
꽃을 들고 괜스레 시내를 돌며 하루 종일 쫄쫄 굶었던 기억을 얘기하니,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다. 엄마의 재 발견이라면서.
그 날 저녁, 추위에 언 몸을 하고 집에 와서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소다 물 넣고
반죽하여 뽑은 면에 자장을 올린, 어릴 적 생일 때마다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자장면, 그리고 탕수육이었다.
늦겠다고, 다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고는 과외를 갔다가 마치고 나오며,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아직 집에 도착 되지 않았단다.
케이크 하나 부탁 하고, 나는 차를 돌려 동네 유일한 자장면 집에 가서, 자장면을 To go로 주문하고, 탕수육 가격을 보며 잠시 망설인다.
차고 문을 열며, 자랑스럽게 아이를 부른다. 대답이 없다.
「자나?」 더 큰 소리로 부른다.
집 안에서 음악과 함께 패션 쇼가 한창 이었다. 친구들이 선물한 옷이라며 있던 옷들과 맞춰 가며 입어 보느라 정신이 없다.
「짜장면 먹자, 응? 빨리 와 빨리, 다 불겠네, 야! 빨리 와~」
조금 늦게 도착된 남편이 사 온 케이크, 「와~, 아빠 내가 그린 색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연녹색의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며 입이 귀에 걸린다.
자장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 하고, 서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 간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온 아빠는 피곤 하다고 소파로 가 눕고, 엄마는 내일 주문량이 많다고 일 하러 사무실로 가고, 아이는 숙제 한다고 제 방으로 가고…
사무실에 앉아 일을 하면서, 벌써 저렇게 큰 아이를 생각 하니 감사하고,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매일, 일 하느라고 저녁 시간 함께 해 주지 못한 날이 17년 세월이 되었다.
무슨 일이 그리도 많은 지, 그러면서 하는 말, 「다~ 느들 위해 하는겨~」
엄마도 그러셨다. 우리 남매들을 위하는 거라고, 그런데 나는 그 말씀에 동감이 가지 않았다. 지금 내 아이도「엄마, 일찍 들어와」 하면서 동감이 가지 않거나, 인사치레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힘 들게 공부하고 온 아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 보며, 미주알고주알 밑두리 콧두리 캐 듯 얘기하면 들어 주고, 받아 주고, 안아 주고, 두드려 주며, 맞장구 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일은 일터에서 끝나고, 집에 와서는 온전히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 주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 끝내고 들어 오니, 아이는 이미 잠 들고, 자는 얼굴을 보니 또 미안한 맘뿐이다.
미안하다, 그렇지만, 다 너를 위한 거야, 알지?
무엇을 위한다는 것인지 뜻 모르는 말을 하며, 그래도 오늘 저녁 자장면 사 줬잖아 하면서 스스로 위안 삼으며, 감사 하신 하나님을 찾는데, 자는 줄 알았던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난 짜장면보다 노래방에 한번 가 봤으면 좋겠어…」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 하러 돌아 오매, (사무엘 하 6;20)」

Tenuto

여. 름. 방. 학.
꺄~아~악~ 오예~ 오예~
알림 장을 본 반 아이들은 천장을 날려 보낼 듯 소리를 질러댔다.
옆 반이 방해를 받던 말던 더 부추겨 목청을 돋게 했다.
얼마나 신이 나면 저럴까!
그 귀한 토요일 아침을 흥미도 없는 한글 공부를 위해 받친 보상으로 소리를 지르고 난 학생들은 한결 마음이 흡족하고 가뿐해 보였다.
여름 방학 때 꼭 해야 할 것들을 프린트 물을 통해 확인해 주니, 모두가 할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리고, 숙제를 언제 갖고 와야 하느냐는 질문까지 한다.
그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한 녀석, 벌써 가방은 챙겨져 등에 메어져 있고, 알림 장은 꼬깃 꼬깃 두 손에 감싸 있었다.
마지막 날까지 화를 낼 수 없어 주시(注視)만 하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손을 든다.
「선생님, 숙제요, 왜 줘요? 방학이잖아요.」순간 할 말을 잃고, 정적이 흐른다.
숙제를 제일 잘 해올 것 같이 열심히 밑줄 그며 질문하던 가장 나이 어린 녀석이 맞장구를 치니 모두「방학! 방학!」을 연호(連呼)한다.
얼마 전, 「소원을 말해봐」시간에 소원 0 순위로「숙제 없기」가 차지한 것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못 이기는 척 숙제 계획표를 회수 했다.
더욱 신이 난 이 녀석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난리법석이다.

개인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오히려 여름방학을 한글 공부에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
평상시에는 방과 후와 주말에 특별 활동을 많이 하기에 주 한 시간 하던 수업을 주 두 번이나 두 시간으로 연장해 달라고 부탁이지만, 정규 직장이 있는 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번에도 몇 분이 자녀들의 한국어 공부에 대해 문의를 하셨다.
애칭이「한글」인 학생의 어머님이 소개한 2세인 이 분의 자녀는 일곱 살 아들과 여섯 살짜리 쌍둥이 남매인데, 동네 한국 학교를 보내 보려고 몇 번 시도를 했다가, 친정 어머니께서「민폐」라며 극구 말리셔서 포기한 상태이니 더 늦기 전에 도와 달라고 하셨고, 다른 한 분은 한글이가 부르는 한국 동요를 듣고 한글을 가르쳐 보고 싶다고 하셨다.
한글 공부를 하며 동요를 많이 부르고, 간단한 악기이지만 직접 연주하게끔 하니 아마 흥미 유발에 약효(?)가 컸는지 대부분 한글 과외시간을 기다린다고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시며, 한 어머님은 아이가 툭하면「Tenuto 」하는데, 도대체 Tenuto (테누토)가 무엇이냐고 의아해 하시며, 질문을 하셨다.
학교와 다르게 개인 교습을 하면 학생들과 일대 삼, 사 정도이니 아무래도 배울 기회와 내용을 맞추기가 좋아, 수업시간에 가끔 음악적 용어나 기호를 사용하여 학생들의 분위기를 띄워 주기도 하고 질서를 잡기도 하고, 별명으로 불러 주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 사용 빈도가 많은 테누토(음표 밑에 __ 로 표시 되며, 음 길이를 충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를 아이가 가정에서 사용했나 보다.
학생들 대부분이 아직은 어리기에 15분 정도 수업하면 집중력이 떨어질 때, 「_」를 보여 주며「테누토」하면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대로 축 처져있는 학생에게는「스타카토」를 붙인다.
너무 흥분되어 있을 때는「Andante」, 분위기가 우울할 때는「A Tempo」, 티격 태격일 때는「Dolce 부드럽게」, 자신 없는 학생에게는「Forte 강하고 자신 있게」
나름 생각을 모아 수업을 하니 학생들도 사용하면서 분위기를 도와 주곤 하는데,
아이에게 어느 때「테누토」라고 했는지 물어보니, 엄마가「빨리 빨리 숙제 하라」고 할 때였단다.

그렇다. 학교에서든 개인으로든 한글을 배우는 학생들은 다 똑같다.
학생 개인의 의지로 한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어머니의 강요와 강제로 배우기에 학생들은 꿈에도 소원이「진짜 방학」이다.
이런 학생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면 연호(連呼)하는 방학을 이번만이라도 「Adagio 매우 느리고 평온하게」로 지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가 어머님께 지시 했듯이「테누토」하여, 자녀를 믿고, 자녀와 시간을 가지며 한국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한국어 공부가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 주셨으면 한다.

스펙

드라마「공부의 신」에 빠져 있던 규리가 어느 날「레알」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처음 듣는 한글 단어 인듯하여 국어 사전을 찾아보니「레」로 시작하는 한글은 온통 외래어뿐 이었다.
결국 정확한 답변을 해 주지 못하고, 드라마의 내용을 들어 보니 풀잎이가 백현에게
「중간 고사 공부 레알 열심히 하라」는 내용으로 보아 혹시「리얼(Real)」이 아닐까 하면서 얼버무린 적이 있었다.
지금은 사회인이 된 한국 학교 제자들을 가끔 만나 안부를 물으면 아직은 「삽질」 중이라고 대답을 하던데「바쁘다」는 뜻인지, 「힘들다」는 뜻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난처한 적도 있었다.
얼마 전 있었던「한국어 능력 시험」에 대해 올해는 대학생이나 대학 졸업생의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문의가 부쩍 많았다.
지금까지는 한글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한국 학교 학생들에게만 권유를 했었지, 이렇게 대학에 진학해 있는 학생들에게는 권유해 보지 않았는데, 문의를 받게 되니 오히려 궁금해져 물어 보니「스펙」때문이란다.
「스펙」? 내가 알고 있는「스펙」은「Specification」즉「제품 설명서」인데, 또 다른 뜻이 있는가 영한 사전을 찾아 보니 별 다른 뜻이 없어, 요즘 새로 부여된 의미가 있나 보구나 하며 지나쳤는데, 「스펙」이란 단어를 너무 많이 듣게 되었다.
심지어「스펙 6종 세트」를 채우기 위해 미국으로 인턴 십을 오고 싶어 하는 청년을 소개 받기도 했다.
궁금하던 차, 「김정태 저,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를 읽고, 「스펙」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2004년 국립 국어원 신조어로 등록된「스펙」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학벌, 학점, 토익, 인턴 십, 자격증(영어 및 그 외 관련 된), 봉사 활동 등, 구직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요소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앞 둔 재외 동포 자녀들은 한국어 자격증을 갖고 있으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열풍이 일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 좋은 현상이다.
높아진 조국의 위상으로 인해 미 사회에서도 한국어의 활용이 늘어 동포 2세들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취업을 하는데 도움이 되고, 조국으로 취업 되어 가는 경우에도 한국어를 사용할 줄 알면 동질감을 느껴 적응 시간이 훨씬 빨라서 좋다고 한다.
내 나라 말과 글이기에 당연히 배워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SAT II 의 영향으로 등한시 되었던 한글이 이제는 나의 능력 증명서의 한 요소로 한글의 자격증(한국어 구사 능력 인증서) 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모차르트 효과

「시계는 아침부터 똑닥 똑닥, 언제나 같은 소리 똑닥 똑닥, 자~ 몇 시? 」
「아홉 시 반요. 」
「시계는 아침부터 째각 째각, 언제나 같은 소리 째각 째각, 부지런히 일 해요. 자~ 지금은 몇 시? 」「아침 열 시요. 」「그럼, 무슨 시간?」「쉬는 시간요.」 「언제까지?」「열 시 십 분까지요. 」
시간 맞춰 들어 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와르르 몰려 나간다.
마침 옆 반 선생님이 지나 가시다 교실에 들러 한 말씀 하시는데, 다른 옆 반 선생님까지도 합세(合勢) 하며 거든다.
우리 반 때문에 수업하는데 지장이 많다고 그 동안 쌓인 불만을 털어 놓는데,
완전 불만 충만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노래 부르는 것도 모자라 두드리고, 구르고, 치고, 흔들어 대는 행위가 좁은 복도를 통해 울려 퍼졌을 생각을 하니 미안 하기 그지 없었다.
예전에는 교과서 수업 내용에 합당한 동요를 선별하여 마지막 수업 시간에 별도로 동요 부르기로 했는데, 배운 노래와 수업 내용을 연관 짓지 못할뿐더러, 기억 조차 하지 못하여, 수업을 하면서 음악을 듣고 리듬에 맞춰 직접 두드리고 치며 따라 부르니 노래 가사도 더 기억을 잘하고, 수업 내용도 쉽게 기억을 잘해 내는 듯 하여, 매주 수업을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수업 효과가 나타났다.
오늘도「시간」에 대해 배웠는데, 무조건「8:00」 라고 칠판에 써 놓고, 「몇 시?」라고 질문하는 것보다 동요「시계」를 부르며, 준비한 시계로「8:00」를 맞춰 놓으면서 질문을 하면 리듬에 맞춰 대답이 더 잘 나와 수업 효과도 훨씬 높아 이 방법으로 진행된 수업이 다른 반에게는 피해라니!

한 동안 언론이「모차르트 효과」를 부추긴 적이 있었다.
1990년대 초 과학 논문 지「네이처」에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를 대학생들에게 들려 주고 공간 추리력을 실시한 결과 높은 점수가 나왔다 하여 모차르트 효과에 대한CD와 책이 유행 하였다.
그런데, 점차 모순점이 들어 나며 밝혀진 사실은 좋아하는 어느 음악이든 들으면 긍정적 감정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2000년 대 초, 캐나다에서는 무작위 선정한 유치원생들에게 듣는 음악뿐만 아니라 직접 음악을 배우고 연주하게 끔 한 후, 1년 뒤 그 학생들의 지능을 검사한 결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약간의 상승이 있었다는 연구가 발표 되었었다.

그래서, 나는 동요를 들려 주고 비록 타악기 일색이지만 학생들에게 직접 들으며 리듬에 맞춰 두드리고 흔들고 치게 하여 학습 효과를 높여 좋은 학습 결과를 얻기 위함이었는데, 다소 시끄럽고 정신을 쏘옥 뺄지라도 우리 학생들이 언제 어디서 이런 연주를 하며 즐길 수 있을까요?
음악, 들으면 정서에 좋고, 직접 하면 지능에 좋다고 하니
불평, 접어 주세요.

지성. 주영. 청용. 성용 그리고 민영

동계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동계 올림픽의 경기 종목 및 경기 방법, 우리 나라가 출전하는 종목에 대해 숙제를 주었다.
그런데 차분히 조사를 해 온 것 같지 않아 다시 숙제를 주었건만, 한결 같이 우리 나라가 출전하는 종목이라면서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트, 피겨 스케이트만 마지 못해 적어 왔고, 경기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왜 숙제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시간 없다」는 말보다 더 충격적인「관심 없다」란 대답이 나왔다.
그래서 관심 있는 스포츠에 대한 숙제를 주고, 동계 올림픽의 종목에는「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트, 피겨 스케이트, 스키 점프, 봅슬레이, 스켈레톤, 크로스 컨트리, 루지, 알파인 스키, 프리 스타일 스키, 바이에슬론, 스노우 보드, 아이스 하키, 노르딕 복합, 컬링」이 있고, 이중 우리나라는 아이스 하키, 노르딕 복합, 컬링을 제외한 12 종목에 출전한다고 하니「관심 없다」던 아이들이 저마다 알고 있는 종목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얼마 전 감상한 영화「국가 대표」로 화제가 옮겨가 한 시간 내내 영화 속「스키 점프」에 관심이 집중 되었다.

이 번 주에는 삼일절에 대해 수업을 꼭 해야만 했는데, 숙제 검사 및 토의로 무려 두 시간을 허비하였다.
삼일절에 대한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안중근 의사에 대해서는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아이들이 해온 숙제에 대한 설명은 스포츠 전문가 버금갔다.
그 중「지성. 주영. 청용. 성용 그리고 민영」이란 제목으로 한 숙제는 간단하지만 깊은 뜻과 큰 꿈이 담겨 있었다.
지성, 주영, 청용, 성용과 민영의 같은 점은 이름 끝 자가「ㅇ」이다. 축구 선수다.
소속팀이 외국이다. 「지성(맨유) 주영(AS모나코) 청용(볼턴) 성용(셀틱) 민영(미국)」
공격수이며 미드필더다. 대한 민국의 희망이다.
다른 점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민영만 참석 못한다.(이유 너무 어리기에)
네모 칸을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작성하여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데도 불구하고 축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선수들의 특징, 월드컵의 분석까지 해 주어 모두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민영이란 선수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명이 없고 미국의 어느 팀인지 분명하지 않아 질문을 하니, 지금은 아직 소속 팀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며, 최소한8년 후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면 아마 미국 팀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궁금증을 더하는 대답에 계속되는 질문, 결국 우리들은 축구 선수 민영은 우리 반 그 숙제를 해온 바로 그 민영임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아우네 장터의 함성이 들리며 시상대에 선 피겨 스케이트 선수인 김연아와 세계의 운동장에서 공을 좇아 쏜살같이 뛰는 민영이가 생각난다.
장터의 그 절규의 함성이 있었기에 오늘의 김연아가 세계인들에게 영광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고, 대한 민국의 희망인 지성 주영 청용 성용이 유럽 무대를 주름 잡을 수 있었고, 우리 민영이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이 땅에서 세계적인 미드 필더로 우뚝 설 꿈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우리 민영이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생각하니 허비한 두 시간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기분 좋은 삼일절 아침이다.

헛사셨습니까?

새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고, 가을 학기 종강 일이고, 이 번 학기로 5년간 수고 하신 학교의 귀한 보배이신 남자 선생님께서 그만 두시는 날이다.
주 중 내내 우중충한 날씨도 오늘만큼은 기분 좋게 맑다.
첫째 시간이 시작되고, 20여분이 지난 후 부른 출석, 다니엘은 오늘도 결석이다.
가을 학기 동안 단 3일 출석한 다니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본다. 오늘도 역시 스포츠 때문이란다.
둘째 시간 후 간식 시간, 승엽이와 승주는 오늘도 간식을 준비해 오지 않아 어린 친구들을 괴롭힌다. 우리 반 막내, 매일 내 것 빼앗는다고 울며 불며 하소연이다.
대부분 간식보다 게임기에 더 관심이 많아 복도에서 삼삼 오오 짝을 지어 게임 하기에 바쁘다.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시무룩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는 태영이, 할머니가 아프다고 걱정이다.
동생이 우리 반으로 올라 오면 어떡하냐고 걱정인 병훈이, 너무 바빠 숙제 할 시간이 없단다.
우리 반 교실 앞에서 웅성거리는 다른 반, 큰 학생들, 담임 선생님께서 그만 두신다고 투덜대며, 그 선생님과 3년을 공부 했다면서 자기들도 학교를 이제 그만 나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셋째 시간 기말고사,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여 숙제로 주었고, 첫째 둘째 시간에 복습을 했건만, 힘이 쭉 빠진다. 대답은 먹이 받아 먹는 아기 참새처럼 모두 넙죽 넙죽 잘 하더니 답안지는 이게 뭐람!

옛날 한 선비(scholar)가 강을 건너고 있었다.
“사공(boatman), 그대는「공자(Confucius)」를 아는가?”
선비는 천천히 부채(fan)를 부치며 물었다.
“모릅니다.” “그럼「맹자(Mencius)」는?” 선비의 물음에 사공은 또 모른다고 대답했다.
“참 딱하구먼. 그렇다면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천자문(primer of Chinese characters」은 떼었는가?”
“그 또한 모릅니다.”
“쯧쯧, 안됐구먼. 그것들을 모르다니 자네는 인생을 헛살았구먼.”
선비가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때 갑자기 천둥이 치더니 비바람이 몰아쳤다. 작은 배는 거센 물결에 휩쓸려 뒤집어지고 말았다.
“어푸어푸,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선비님, 어서 헤엄(swimming)을 쳐서 땅으로 오르십시오.”
“나는 헤엄을 못 친다네.”
“팔과 다리를 열심히 저어 보세요. 금세 배우실 것입니다.”
“안 되네, 그 어려운 것을 어떻게 금세 배운다고 그러나.”
“참으로 딱하십니다. 어려운 글 공부는 잘 하시면서 그렇게 쉬운 헤엄도 못 치신다니 선비님은 정말로 인생 헛사셨습니다.”
넷째 시간, 「듣고 내 생각 쓰기」시간에 읽어 준 내용이다.
눈을 끔벅이며 열심히 듣는 아이, 책상 밑에서 열심히 게임기 눌러대는 아이, 미리 쓰기 숙제 하는 아이, 하품으로 지겨움을 표하는 아이, 셀폰으로 계속 시간 확인 하는 아이.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표현 해 올까?
다음 주가 기대되면서「선생님은 정말로 인생 헛사셨습니다.」란 문장이 어느 아이의 공책에서 아른거려짐은 노파심 때문일까?
선생님의 엄청난 사랑과 관심의 표현을 학생들은 선생님께서 그만 두시니까 학교를 그만 오고 싶다고 하는데, 이런 큰 선생님과의 맑고 밝은 오늘 날씨 같은 만남을 나도 감사한다.

가슴 높이

지금의 반을 담당하고부터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앉아 있는 학생과 이야기를 할 때는 그 학생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아예 털썩 주저 앉아 아이와 같이 무릎을 대고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신발(구두)이 불편해 신을 벗고 양말 발로 교실 앞 뒤를 다니며 수업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학부모님 한 분이 왜 교실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여 아이 양말을 그 꼴이 되게 하였느냐며 항의를 했다.
신을 벗으라고 한 적은 없지만, 제가 신을 벗고 수업을 한다고 하니 의아해 했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의 숙제 검사를 하거나 수업 내용 습득 확인을 위해 학생들 사이를 다니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숙제를 해 왔건 그렇지 않건, 수업 내용을 이해 했건 말건 학생들 대 부분은 주눅든 표정으로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비좁은 공간을 헤집고 무릎을 꿇고 앉아 학생의 책상에 가슴을 대고 눈을 맞춰 가며 확인을 하고 곧 바로 칭찬의 3단계 포옹과, 위로의 강약 포옹, 환희의 손뼉 치기, 격려의 손 가락 대기를 하고 위로와 격려를 받은 학생에게는 꼭 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다음 순서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교실은 가끔 난장판 일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감정 표현을 좀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핑계 대는 일이 적어졌으며, 자신 있게 수업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교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우리 반은 이래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 바람만이 내 가슴을 꽉 채우고 있어서 내 눈 높이에 어린 학생의 눈과 가슴이 맞춰지길 안달복달, 교사 생각으로 학생들을 판단하여 학생들의 가슴은 아랑곳 없었다.
그런데, 늘 채워지지 않는 나의 욕심에 대해 한 어린 학생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너는 선생님이지, 나가 선생님이면 나가도 해지요」
내 욕구 충족을 위해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저지른 나의 큰 실수.
그 후, 생겨진 버릇으로 아이의 눈이 내 마음을 읽게 하고, 내 눈이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눈을 맞추고 가슴을 맞출 수 있게 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느껴지는 아이의 심장 박동으로 내 열정과 사랑은 다듬어져서 다시 아이의 가슴에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으로 새겨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연말 북 가주 교사 협의회에서 추천해 주시고, 지역 사회에서 큰 상을 주심에 감사 하며, 올 해도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학생의 상황에서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느낌을 공유하는 따뜻한 마음의 교사로 학생과 가슴 높이가 같은 교사를 소망해 본다.

또 다른 열매를 위하여

숭례문이 화재로 없어졌다고 안타까워했던 승용이가 벌써 SAT II 한국어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항일 운동을 하셨던 외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승용이에게 잘못 표기된 독도와 동해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여름에 만났던「반크」이야기를 해 주면서 거기서 받은 지도를 보여 주니 갖고 싶어 안달이다.
나도 한 장 밖에 없고 수업용으로 사용 하기에 선뜻 줄 수 없음에 미안 했는데, 하루 빌려 달라고 하여 그렇게 했더니, 그 큰 지도를 복사하여 코팅까지 해서 책상 앞에 걸어 놓은 것이 아닌가!
「완전 감동」이었다.
또, 한 청년은 십 이삼 년 전 학교의 골치 덩어리였다. 교사 누구도 그 학생을 담임 하기 싫어해 서로 떠 밀기 바빴다. 어머님은 결국 손을 들고 한국 학교를 포기 하셨고, 그는 쾌거를 부르며 한국 학교를 자랑스럽게 은퇴(?) 했다.
지금 그는 응급차 간호사인데 가끔 911으로 출동해서 가 보면 영어 못하는 한국 노인 분들이 계셔 안타깝다고 호소를 하며, 뒤 늦게 한글 공부를 하느라 휴일을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모국에 대해 남 다른 애착을 보이는 2~3세 학생들이 가끔 있는데, 이 학생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학생들보다도 더 (내 느낌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비록 한국 학교에서 적응을 못 하여 낙인(?)이 찍혔을지라도 개인적으로 한글을 배우며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 사람임을 자부하는 마음은 누구 못지 않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 가기가 힘들어져서 그런지 한글에 대한 관대한(?) 견해를 가진 부모님을 만나면 가끔 곤혹스럽다.
가정에서 대화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지 뭘 더 시키냐면서 대학 갈 때 크레딧 받게 한국 학교 자원 봉사자로 일하게 해달라고 성화고, 결석이 잦아 연락을 드리면 학원 수업 때문에 못 간다고 딱 자르고, 12학년이 되면서 11월에 있을 SAT II 한국어 시험을 보게 지도해 달라며 자녀의 실력과는 상관 않고 막무가내로 부탁이다.
사실, 한국어가 점수 따기 쉬운 것은 꾸준히 공부한 학생에게만 해당 사항이지 그렇지 않으면 헷갈리기 쉬워 일년에 한번 있는 시험 망칠 확률이 큰 과목이다.
벼락치기 석 달 공부한 후 다행히 만족한 점수 나오면 그냥 지나가고, 점수가 영 맘에 걸리면 다음 학기 다른 학생들 등록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반크」에서는 3%가 있기에 가장 작은 겨자씨를 심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 했다고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려워지는 한국 학교 교사 이지만, 3%의 겨자씨들이 곳곳에 있기에 오늘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만난다.
이번 주면 SAT II 한국어 점수가 다 나왔을 텐데, 큰 기대를 하며 토요일을 애타게 기다린다.

I love 한글

약간 어눌한 말투의 젊은 엄마와 손을 잡고 들어온 여자 아이는 대여섯 살 되어 보였다.
「이름이 뭐야? 」「한글」역시 말투가 연변(?) 특유의 억양이었다.
「한글? 와~ 이름 좋다. 」생일이 10월 9일이라 아이를「한글」이라고 부른다는 이 분은 중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고 직장 생활하다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고 큰 아이 열 두 살, 작은 아이 여덟 살 때 조기 유학을 위해 중국에서 미국으로 오신 한국에서 유행하는 소위「기러기 가정」이다.
미국 온지 이제 일년 반, 아이는 영어보다 중국 말이 훨씬 편하고 한국 말은 하지만 아직 글은 모르는 상태라고 했다.
한글 공부를 시작한 지 서너 달, 아이는 언어 감각이 남 다르게 뛰어났다.
벌써 한글을 읽고 호기심이 많아 어느 내용이든 흥미 있게 배우려 한다.
이야기 책을 감정 넣어 읽어 주면 똑같이 따라 읽으며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해를 하지 못 하며, 「too boring」만 연발한다.
그런데, 한글이가 한글 공부를 이렇게 재미 있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어 보니,
첫째 한글이「so easy」란다.
「말 나오는 데로 모두 쓸 수 있고 글자 따라 읽으면 모두 읽어지고 읽은 것이 뜻이 되니까」라고 말을 하는데, 이는 한자(漢字)를 배워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할 수 없는 말이다.
한글이가 어렸을 때부터 배웠던 중국어는 모든 글자를 외워야만 글을 쓸 수 있는 표의문자이지만, 한글은 소리 글자(표음 문자)로 낱자 하나는 낱소리 하나를 나타내며 낱소리는 닿소리(자음)와 홀소리(모음)로 이루어지고, 한 소리마디는 첫소리(초성), 가운데소리(중성), 끝소리(종성)로 이루어지며, 닿소리 홀소리 모두 각 고유의 음을 가지고 있어 낱자 따라 읽으면 읽어지게 되는 것이고, 쓸 때는 영어처럼 하나씩 풀어 쓰는 것이 아니라 소리대로 모아 쓰면 되기에 마음 먹고 배우면 쉬운 글자다.
그래서,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도「슬기로운 이는 아침 먹기 전에,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한글은 쓰기가「very simple」하고 생각하는 글자를 모두 만들 수 있어서 재미 있다고 하면서「I like 한글, I love 한글」하며 생글 생글 눈 웃음을 친다.
어머니도 아이가 한글 공부를 이렇게 재미 있어 할 줄 몰랐다고 하시며 감사를 표 하니 한국 학교 교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이렇게 가르치면서 느끼는 보람도 있지만, 학교 운영 자금 모금을 위한 행사를 할 적마다 느끼는 보람 또한 크다.
올 해에도 기금 모금 골프 대회가 지난 주에 있었는데 경기 침체로 인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시며 힘이 되어 주시고, 특히 자녀가 학교를 졸업 했음에도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학부모님을 뵈면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고 기쁨을 느끼며 희망을 본다.
「too boring」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일지라도 간혹「I like 한글, I love 한글」이라고 말해 주는 학생이 있고, 학교 일이라면 두 팔 걷어 부치고 나서서 도와주시는 학부모님, 이사진, 그리고 주변의 모든 분들이 계시기에 오늘도 우리 교사들은 기쁨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준비를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세종한국학교 기금 모금에 여러 모양으로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Monday, April 5, 2010

또 다른 재범이

「재미교포 3세인 갑은 가수가 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처음에는 낯선 땅에서 한국어도 서툴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도 빈번하여 힘든 시간을 보냈다. 1년 후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 ○○연예기획사에 발탁되어 연습생들과 그룹을 결성하고 음반을 발표하였다. 현재 갑은 가창력을 겸비한 한국 최고의 가수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

「나에겐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은 중요하다. 이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반영한다. 내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이라는 것을 알고 나는 이 나라의 부분이고 이 나라가 나에게 부여하는 기회를 이용해왔다. 또한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것은 나의 의식의 중심에 있다. 」

한국에서 2009학년도 9월 고2 전국 연합 학력 평가(위)와 고 3 모의고사(아래)에 출제된 예문을 발췌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아무 말 않고 나누어 주며 읽으라고 하니 금방 반응이 왔다. 이구동성(異口同聲)이란 사자 성어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모두 재범이의 상황을 이해하며 동정하고 자기들이 겪은 이야기를 하는데 분위기를 조절할 수가 없었다.
야구와 아이스 하키를 좋아하는 재현이는 아버지가 외국 분이다. 미국 학교 이름은 Andrew, 한국 이름은 재현, 「재」자가 같다며 특별히 재범을 옹호하며 작년 여름 방학 이야기를 했다.
늘씬한 훈남 재현이가 엘리베이터를 탈 때 겪은 일하나, 문이 닫히려고 할 때 밖에서 어느 여자가 뛰어 오길래 문을 잡고 기다려 주니 아무 말 없이 타고는 14층까지 올라 가는 동안 누구와 큰소리로 통화를 하며 어느 놈이 자기를 보며 쪼갠다느니 생긴 것 진짜 괜찮다느니 마구 얘기를 해서 내릴 때 한국 말로「잘 들었습니다. 」하니 오히려 화를 냈고, 겪은 일 둘, 꽉 찬 엘리베이터 안으로 어느 여자가 막무가내로 밀치고 들어 오는데 소리가 났는데 내리지 않고 오히려 옆의 자기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하여, 「너나 내리세요.」하니 그 안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우~하며 이상한 소리를 냈단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서 한국 말을 하니 엄마 흉을 보아(자기가 듣고 이해 하기에는) 한국에서 야구 선수 하고 싶었던 꿈이 싹 없어졌다고 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에 혼돈이 와 사실 한글 공부도 싫다고 했다.
또 한 친구는 한국 가서 댄스 가수가 꿈이라 이곳에서 있었던 오디션에도 참석 하고 나름 한글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군대 문제 등 생각지 않은 일들과 이곳에 유학 온 친구들과의 아주 사소한 일로 의견 차가 생길 때에는 조국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이
다 무너져 버렸다고 하며 마냥 좋은 곳으로 생각 했던 때는 지났다고 했다.
그래도 위의 학생들은 2세이지만 한글 공부를 게으르게 하지 않아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에 이렇게 말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다른 학생 몇 몇은 위의 두 글을 이해 조차 하지 못 했고 재범이의 일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듯 했다.
재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재범이가 겪었던 일이 우리 자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마음이 아프다.
어느 예능 프로에 나와 빨리 돈 벌어 엄마 쇼핑 시켜 드리는 게 가장 큰 바램이라던 앳된 모습의 재범이는 그 꿈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씨애틀로 돌아왔다.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나의 의식의 중심에 자랑스런 한국인이라는 사고를 품고 있는 우리의 동포 청소년들에게 이제 더 이상 마구 잡이 식 편견을 두지 말고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2PM 재범이와 또 다른 많은 재범이에게
「하쿠나 마타타 (Hakuna Matata!) 걱정 마, 다 잘 될 꺼야, 힘 내. 」

무조건

드디어 개학이다.
정신 없이 바빴지만 개학 날을 손 꼽아 기다렸다.
이번 여름 방학 동안에도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우고 연구하며 나만의 자료를 만들고 다듬었다.
특히 7월에 있었던 학술 대회에서는 이 지역을 벗어난 미 전역의 교사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배울 수 있었고, 그들은 우리의 귀한 학생들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으며, 특히 한글 학회 김승곤 회장님의「우리말의 말 대접 법 」강의는 전혀 모르고 있던 언어 사용의 예의와 대화법에 대한 교사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막연하게 알고 있던 왜곡된 한국 역사에 대하여 사이버 외교 사절단「반크」를 통해 바르고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알게 된 한국의 현직 중학교 국어 교사인 분을 통해 맞춤법과 틀리기 쉬운 단어에 대한 개별 강좌는 한글 SAT 문법에 자주 나오는 부분이어서 큰 소득이 되었다.
또, 장기 자랑을 위해 배운 노래 역시 새삼스러웠다.
학생들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학생들이 즐겨 듣는 장르의 최신 노래만을 잘 알아 듣지 못하면서도 배우려고 노력하면서, 막상 이런 풍의 노래는 거의 듣지 않았었는데, 가사를 읽다 보니 갑자기 교사인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 줘, 언제든지 달려 갈게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특급 사랑이야……」
과연 나는 귀한 학생들에게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달려 가 필요를 채워 줄 수 있을까?
이 고민이 어찌 나만의 고민일까, 한국 학교에 몸 담은 모든 교사들의 똑 같은 마음이고, 고민이고 각오이며, 소망하는 사랑이겠지.

이런 준비된 마음과 자세로 기다리던 개학이 이제 다음 주이다.
방학 동안에 학교가 이사를 하여 더욱 새로워진 환경에서 만나게 될 우리 학생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바른 말(문법적으로 맞는 말), 고은 말(정성을 다 하는 말)을 가르치며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기를 기대하니 마음은 벌써 부풀어 가을 하늘로 떠 오른다.

썬 글라스

준비물 목록을 하나씩 확인하며 올 해는 또 어떤 기대를 채워 올 수 있을까 하는 설렘으로 들떠 있었는데, 전체 준비물로 썬 글라스를 가져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초등학교 2 학년부터 안경을 사용하여 나의 큰 소원 중에 하나가 멋 있는 썬 글라스를 써 보는 것이었던 나에게 드디어 썬 글라스를 써 볼 기회가 생기는구나 하며 부풀었다.
주말에만 운전을 하는 나는 토요일 아침, 한국 학교에 갈 때 햇빛을 안고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 올 때도 햇빛을 안고 온다.
햇빛이 강한 날은 오만상을 지으며 운전을 하다 보니 두통이 생기는 일이 비일 비재 했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 때 뜻 밖의 선물을 받았다.
조그만 런치 백을 주길래 마침 점심 때가 약간 지난 시간이라 점심이나 간식 인 줄 알고 시장하던 참에 덥석 받았는데 느낌이 아니었다.
「선생님 운전할 때 입으세요」「뭔데」
「되게 원하는 거요」「선생님이 원하는 것이 뭐지? 지금 열어 봐도 돼?」
「맘대로」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이렇게 알아서 선물로 주다니 너무 감격하여 체면도 없이 봉투를 쫙 찢어 보니「검정색 썬 글라스」더불어 눈에 확 뜨인 것은 가격 표, $5.99, 순간 감동과 서운함의 교차지점에서 연출되는 표정 연기.
언젠가 말하기 시간에 갖고 싶은 것에 대해 발표를 할 때 교사인 내가 갖고 싶고, 받고 싶은 선물이 썬 글라스라고 해서 마침 주유소에서 주유 하고 거스름 돈을 받다가 계산대 옆에 주렁 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생각이 나서 샀다고 한다.
한글을 뒤 늦게 철들어 배우는 이 학생은 초 중고등학교 때 한국 학교에 열심히 등교는 해서 개근 상은 몇 번 받았지만, 겨우 한글 자모음 더듬거리며 읽는 정도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이제 한글의 필요성을 깨닫고 열심히 과외 지도까지 받으며 공부하는 이유는 순전히「TaLK」때문이다.
대학 2년을 마치고, TalK로 한국 생활을 꿈 꾸는 이 학생은 내년 5월을 기다리고 있고, 막상 선물로 받은 썬 글라스를 착용 할 기회가 없어서 늘 차 안에 넣고 다니며 때를 기다리던 나는 이번 낙스 학술 대회에 가서 드디어 사용 하게 되었다.
만날 적 마다 썬 글라스 왜 안 입냐고 묻기에 안경을 벗으면 볼 수가 없다는 나에게「안경 위에 덮어 입으면 되요」하던 너의 말대로, 선생님 꼭 썬 글라스 가져가서 안경에 덧쓰고라도 임무 수행 하고 사진 찍어 와서 보여 줄게.
고마워, 까만 썬 글라스.

어머님 은혜

한 학년을 마칠 때 꼭 하는 것 중에 제일 부담 되는 것은 교지와 학습 발표회다.
교지 원고를 위해 봄 학기가 시작 되면서 준비를 해도 출석이 고르지 않은 이유로 한 번에 모아지기 힘들어 마감까지는 애를 먹는다.
그런데 교지 원고 모으기 보다 더 힘들고 맥 빠지는 것은 학습 발표회다.
수업 중간 중간 짬을 내어 연습시켜 놓으면 꼭 종업식 때 빠지는 녀석들이 있어서
황당 했던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찍 계획하여 연극에 동요를 접목 시켜 내용을 녹음 해 놓으면 결석하는 친구가 있어도 발표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하려고 대본 읽기를 시작 했는데, 다른 반이 연극을 하겠다고 계획서를 제출했다. 우리 반과 방법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이라 좀 꺼려졌다. 그래서 계획을 수정하려고 하니 학생들이 난리다.
며칠 고민 끝에 합주로 하기로 결정을 하고, 각자 연주 할 수 있는 악기가 무엇인지 파악을 했다. 다양한 악기가 나왔다. 아직 악기를 다루지 않는 학생에게는 템버린과 트라이 앵글을 맡겼다.
그런데 계획대로 척척 될 줄 알았는데 대부분 학교에서 이제 시작하여, 겨우 악보 읽고 키도 완전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 주(週) 하루 만나 한 시간 연습으로는 어림없는 일이고 갈수록 태산이 되었다. 선곡 된 악보를 각 악기에 맞게 그리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진퇴 양난 (進退 兩難),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허비한 2주의 시간, 그러나 분명, 한 줄기 빛은 나에게 비추고 있었다.
학부모님들과 말씀을 나누다 한 어머니께서 작곡을 공부 중 이신 사실을 알았다.
부탁에 흔쾌히 답을 주셔서 일사 천리(一瀉 千里), 교사 입장에서는 신이 났다.
음악을 전공하신 어머니께서는 학생들의 실력에 맞게 악보를 다시 그리며 쉽게 편곡을 하여 남은 연습시간 3주, 시간으로는 135분, 열심히 지도해 주셨다.
잘 따라 연습에 임하는 개구쟁이들.
만반의 준비를 갖추니 뿌듯함과 흥분, 한편으로는 누가 결석하면 어쩌지, 한 주간 동안 노심초사(勞心焦思).
기다리던 시간, 천하의 개구쟁이들도 긴장이 되는지 화장실을 들락거린다.
연주, 합창, 연주에 맞춰 모이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합창, 짧은 3분이지만 세 시간 공연을 한듯하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자녀들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시던 학부모님들도 옛 생각이 나는지 모두 숙연해지는 분위기였지만, 희망의 베토벤 바이러스를 발견한 학습 발표회였다.
어머님 은혜,
열정으로 도와 주신 어머님 은혜도 감사하며.

비타민

일 주일에 한번 만나지만 꼭 교실로 찾아 오셔서 안부를 묻는 젊은 어머니가 계신다.
개구쟁이 아들 때문이라고 하지만 예의와 성의가 배어 있어 참 고맙다.
현충일 연휴, 속 썩이는 아이들을 떠나 편히 쉬라는 인사를 받고, 한 주 토요일을 집에서 여유 있게 보내는데 몸과 마음은 영 편치 않다.
흐린 날씨로 인한 기분 탓이라고 하기에는 몸이 너무 찌뿌드드하고, 머리가 지끈대며 오한이 나기도 했다.
갱년기 증상이 오기 전에 비타민을 꼼꼼히 챙겨 먹으라던 주변 분들의 충고가 떠오르며, 그럼 나도 이제 그런 나이?
생각하기조차 끔직해 반 학생들의 생활 기록부 및 성적표를 작성해 본다.
차분하게 앉아 시작하지만 눈이 침침하고 뻑뻑하여 불편하기 그지 없어 애꿎은 안경만 벗었다 썼다 한다.

일년을 함께한 귀한 아이들.
이들에게 무슨 말로 칭찬을 해 줄까!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니 나를 미소 짓게 하고, 급기야는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찌근대던 머리도 어느새 맑아져 기분이 산뜻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나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비타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감기 예방과 치료, 항 산화 효과로 암과 동맥경화까지도 예방한다는 비타민 C 같은 아이, 시력 저하를 방지한다는 비타민 A 같은 아이, 피로 회복과 정신 상태를 안정시킨다는 비타민 B1 같은 아이, 해독작용 입술이나 혀가 거칠어지는 것을 방지 한다는 B2 같은 아이, 편두통을 예방하고 통증을 완화 시킨다는 B3, 빈혈 방지, 심장 질환, 우울증 예방의 B9같은 아니,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치매 예방을 한다는 비타민 E같은 아이, 혈액 응고를 돕는 비타민 K같은 아이, 그리고 혈액 순환촉진, 뇌의 영양 공급을 돕는 오메가 3와 같은 아이, 관절 영양제 글루코사민 같은 아이까지.
한 마디로 우리 반 아이들은 종합 비타민의 결정체 이었다.
그런데 생활 기록부에 「교사의 노화를 늦추고 치매 예방을 도와 주는 비타민 E와 같은 학생입니다.」「교사의 편두통의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비타민 B3와 같은 귀한 학생 입니다.」라고 기록할 수 없음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제 긴 여름 방학에 들어 간다.
그 동안 배운 것 잊지 말았으면 좋겠고, 가정에서도 한국어 사용을 활성화 하여 9월 새 학기에는 한국말이 자연스럽게 술술 나왔으면 좋겠고, 특히 경기가 회복 되어 가정 형편으로 등록을 미루는 학생이 없었으면 좋겠고, 등록 학생이 더 많이 늘어 반에서 감당 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그 동안 내 삶의 비타민이 되어 주었고, 또 계속 되어 줄 귀한 우리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오월은 푸르구나

초등 학교 시절, 처음으로 학교 전체 어머니 날(그 당시는) 학예회에 출연하게 되었다. 모든 어머니는 꼭 참석해야 한다, 특히 연극에 출연하는 학생들의 어머니는 모두 참석하시겠다는 도장을 받아 학교에 제출 했다.
도 교육감님께서도 참석하신다고 교장 선생님께서 직접 방과 후까지 연습을 시키셨다. 드디어 공연 날이 왔다. 몇 번이고 준비물을 확인하고 들 뜬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 밤 중에 집안에 소동이 났다.
어린 나이라 무슨 일인지 몰라 울기만 했는데, 할머니의 발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새벽까지 들리고 나중에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아기를 낳으신 거다. 순간 엄마를 모시고 오지 않아 학교 가서 혼 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왜 하필이면 엄마는 아기를 오늘 낳았을까 하는 골 부리를 하며 퉁퉁 부은 얼굴로 학교를 갔던 기억이 떠 오른 하루다.
오는 5월 9일, 북 가주 학생 한글 백일장 대회 및 그림 그리기가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Golden Gate Park에서 열린다. 참가 신청을 받기 위해 알림 장을 발송한 후 확인 하는 날, 한 녀석이 뚱한 얼굴로 「안 가요」대답하며 책상에 엎드린다. 모두 확인 되고 수업이 시작 되는데 이 녀석은 아직도 엎드려 있다.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을 않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순간의 당황함, 등을 토닥거려 주며 다시 물어보니, Golden Gate Park에 가고 싶은데 엄마가 못 가게 하셨단다. 너무 멀고, 가도 상도 못 탈 거고, 돈도 내야 하고…… 이 녀석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약속을 했단다. 거기서 만나자고.
상 타는 것 보다 친구와의 약속이 더 중요한 우리 아이.
우리 학교는 매 년 개최되는 한글 백일장 대회 및 그림 그리기 대회에 참석을 하였는데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 하여 올해부터는 참석자만 개별 참석하고 나머지는 학교 수업을 하기로 결정 하였다. 처음에는 어차피 저조한 출석률로 동의를 하였는데, 막상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어 보니 공감이 갔다.
일년에 한 번 모든 학교가 모여, 작은 학교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여 주고, 다른 학생들이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 주며 동기를 부여 하는 것도 좋고, 함께 공원에서 운동하는 것도 좋고, 참석 학교에 단체 상이라도 하나 주면 학생들뿐 만 아니라 함께 참석한 학부모들도 기분 좋고…… 일일이 맞출 수는 없지만 작은 학교 학부모님의 소망이다.
어쩔 수 없이 친구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아이, 상을 타던 못 타던 대회라는 곳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던 아이, 교실 밖에서 한 번쯤은 선생님과 김밥을 먹고 싶다는 아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큰 소리로 외치며 뛰고 싶다는 아이, 쏘리 쏘리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자는 아이들을 위해 그 날(5월 9일) 파킹 장에서라도 야외 수업을 해 보아야겠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 날 노래를 부르며.

나 시험 봤어

직원 조회시간, 오 해피데이~하며 전화 벨이 울렸다.
받을 상황이 아니라 받지 않았는데 자동 응답으로 넘어 갔다.
첫째 수업시간, 띠띠하며 문자가 온다. 「Taking test」확인만 한 후, 수업을 진행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칠 때까지 잊고 있었는데, 저녁에 이 메일을 확인하다 생각이 났다.
미안한 마음에 자동 응답을 들어보니 「시험 가지러 왔어요.」그리고 문자 메시지.
「Thank you」간단하게 문자로 답했다. 늦은 시간이기도 해서.

지난 학기부터 SAT II 시험이 UC 계열에서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 소문으로
학생들의 한국 학교 등록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라고, 그렇지 않다고 설득을 해도 마음은 벌써 정해진 듯 했었다.
그러면서 아침부터 학원으로 가서 SAT I 과목을 수강하고, 모자라는 과목 수강하면
오후 4시란다. 토요일은 하루 종일 학원에서 있는데 재미도 없고 공부도 안 하는데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하셨단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SAT 한글도 여기서 해요,
그런데 선생님만큼 재미없고 설명을 잘 못해줘요.」과분한 칭찬에 으쓱하며,
모의고사 볼 때 연락한다고 한 후, 모의고사 있기 이틀 전 전화로 가까운 학교 가서
시험보라고 연락을 했는데, 고맙게 시험을 치른다는 연락을 한 것이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 「UC에서 이제는 SAT II 시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의
진상에 대해 알아 본 결과는 「SAT 서브젝트 테스트를 치르지 않았어도 UC에
지원할 수 있다」란 의미였다.
덧붙이면 「지원할 수는 있어도 합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이다.
그리고, 「SAT 서브젝트 테스트 의무 조항 제외」는 고교 졸업률이 50% 밑도는
흑인이나 라틴계 학생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면 되니, 우리 한인
학생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 없음」이다.
그러니까 SAT II 에서 한국 학교를 꾸준히 다녔던 학생들은 한국어로 고득점이
가능하므로 한글 공부를 포기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 이런 루머는 부모님, 학생뿐만 아니라 한국 학교 운영에도 커다란 지장을
초래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한국 학교를 그만 두는 심정 충분히 이해 하지만, 어차피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 중이거나, SAT II를 한국어로 정했다면 가까운 한국 학교에
등록해 시험 준비도 하고, 재미있는 한국 역사도 배우고, 정확한 정보도 알고, 덤으로
한국어 능력 시험까지 치러 여러 모로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또, 학교 운영도 될 수
있게.
시험 보러 왔다는 말을 시험 가지러 왔다고 음성 메시지를 남긴 우리 정우는 이번
모의고사를 어떻게 보았을까?
다음 주가 기다려진다.

거위의 꿈

한번도 결석 지각을 하지 않았던 학생이 봄학기 시작 첫날 결석을 했다.
알림 장에 굵은 글씨로 밑줄까지 그어 봄학기 등록일임을 알렸고, 바로 전날 금요일 저녁, 전화로 내일이 개학일임과 학교에서 보자는 인사를 나누었는데 결석이라니, 의아했다. 2교시 후 간식 시간에 전화를 해 보았다.
아이가 직접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학교 수업이 끝나도록 귀에 맴도는 말.
「내꺼 아빠 일이가 없어 나가 스쿨 안가」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요즈음 모두가 겪는 일이라며 한숨만 내쉬며 아이 셋을 한국 학교에 보내기가 벅차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 아이 하나 잃어야 함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떻게 도와 드려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북 가주에는 크고 작은 한국 학교가 50여 곳이 있고, 이중 반 이상은 교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학생들은 거의 한글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고, 또 다니는 교회에서 한글교육을 하지 않아도 기회를 얻을 수 없어서, 일반 한국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두 곳의 장단점은 있지만, 교회 학교를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상 교육내지는 저렴한 등록금이기 때문이란다. 그 어머니께서도 자녀 셋을 교회 운영 학교로 보내 볼까 생각을 하셨는데 등 하교가 가장 큰 문제고, 아무래도 다니던 학교에 정도 들어서 쉽게 옮기지를 못하고 한 학기 쉬다 경기가 풀리면 다시 등록하겠다 하신다.
그렇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2005년 조사에서 미주 한인 학생 15%만 한글 수업 중이라는 귀동냥에 한 명이라도 기회를 더 주고 싶었다.
그런데 기회를 가진 부모님 혹자는 따끔한 지적을 하신다.
한글 교육 이래도 되는가, 특히 교사의 자질, 초등학생 위주의 학교 운영, 우후 죽순으로 생겨 분산된 학교, 중고등 학생이 되면 한국 학교를 회피하는 이유, 또 외국인을 한쪽 부모로 둔 자녀에 대한 교육 등등.
우리 교사들과 학교 관계자, 재외 동포 재단 등 정부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한번쯤 풀어야 할 숙제이고, 교사 자신들도 자기투자에 게으르지 말고, 학생 수나 교사의 수가 적은 학교는 합병 운영하여 시너지 효과를 누리고, 학생들에게도 SAT II 한국어뿐만 아니라, 고교에서 한국 학교 수업이 제 2 외국어로 학점이 인정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준다면 굳이 한국 학교를 외면 하겠느냐며 중국 학교나 일본 학교를 예로 들으신다. 옳으신 말씀이다. 십분 공감 한다.
공감 하면서도 대책은 아직 멀다. 아쉽게.

「산 산 산 산에는 나무들이 자라고, 들 들 들 들에는 곡식들이 자란다……」 노래 말미에 꼭 이어서 하는 노래 말, 「세종 학교 학생들이 자란다」가 학생의 목소리로 귀에 들리고, 노바디에 맞춰 윙크를 하며 떨던 애교가 눈에 아른거린 한 주였는데, 한 학생의 이 메일을 받았다. 노래가 첨부된.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 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중략)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내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다.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기회가 없어서 등록비가 없어서 다니던 한국 학교를 그만 두는 우리 학생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하는 나의 꿈.
난 그 꿈을 믿는다.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에 함께할 우리 학생들이 있기에.

Thursday, April 1, 2010

설날 잔치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인해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
힘들어, 언제쯤 풀리려나, 못 살겠어, 죽겠어 가 세밑이라 그런지 더욱 맥 빠지게 하더니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으로 금방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 듯 하다.
지난 한해 우리 학교는 급등한 렌트비와 재적생 감소로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과외 활동의 마지막 선택이 한국 학교 등록, 그나마 활동의 스케줄에 따라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요즘같이 여러 가지로 힘이 들 때는 최우선 순위가 한국 학교 자퇴다. (모든 가정이 다 그런 것은 아님.)
2월 봄학기 등록이 다가와 지난 가을 학기 때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한결같이 등록금 걱정을 하시며 지금까지 해 오던 악기레슨을 그만 둘 순 없고,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안 보낼 수 없다고 하시며 등록금 삭감내지는 할인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불경기 속에서도 꾸준히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 주시고 학교 일이라면 두 팔 걷어 붙이고 도우시는 분들도 있다.

이번 설날에도 우리 학교는 예전과 같이 큰 잔치를 한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한복을 입고, 설날의 덕담을 들으며,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고 민속 놀이를 한다.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투호(投壺), 그리고 한국 연은 아니지만 연을 날리며 새해 소망을 빈다.
또, 정성껏 준비해 주신 떡국을 먹으며 가래떡의 유래를 듣는다.
떡의 흰색은 평화를, 가래는 길고 둥글다는 뜻으로 장수(長壽)와 모나지 않은 삶을 상징한다고 열심히 설명을 해 준다.
이해를 하는지 대답은 큰 소리로 하건만, 떡볶이 그릇에 시선은 집중되어 있곤 했다.
힘이 들어 못 살겠고 죽겠다고 신음을 하다가도 설날 잔치 음식 준비로 참석하신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 TV속 놀이인 줄 안, 이런 놀이를 어디서 해보냐며 표정이 밝고, 학생들의 얼굴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교사들도 교실 수업보다 힘은 들었지만 어우러져 함께 한 설날 수업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많은 학생들의 참석을 희망한다.

오랜 기간, 교사를 하면서 이번처럼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을 뵌 적도 처음이고, 학교 운영이 어려운 것도 처음이다.
기축년 새해,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 대한 온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그 동안의 위기가 기회가 되어, 경기 회복으로 못 살겠다느니 죽겠다는 표현은 이제 그만, 우리 자녀들에게 모국의 교육 기회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라면서, 지역의 동포단체나 기관, 교회 등에서 장소를 함께 나누며 사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본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로 인해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
힘들어, 언제쯤 풀리려나, 못 살겠어, 죽겠어 가 세밑이라 그런지 더욱 맥 빠지게 하더니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으로 금방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선 듯 하다.
지난 한해 우리 학교는 급등한 렌트비와 재적생 감소로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과외 활동의 마지막 선택이 한국 학교 등록, 그나마 활동의 스케줄에 따라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요즘같이 여러 가지로 힘이 들 때는 최우선 순위가 한국 학교 자퇴다. (모든 가정이 다 그런 것은 아님.)
2월 봄학기 등록이 다가와 지난 가을 학기 때 등록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화를 해 보니 한결같이 등록금 걱정을 하시며 지금까지 해 오던 악기레슨을 그만 둘 순 없고,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안 보낼 수 없다고 하시며 등록금 삭감내지는 할인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런데 이런 불경기 속에서도 꾸준히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 주시고 학교 일이라면 두 팔 걷어 붙이고 도우시는 분들도 있다.

이번 설날에도 우리 학교는 예전과 같이 큰 잔치를 한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한복을 입고, 설날의 덕담을 들으며,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고 민속 놀이를 한다.
윷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투호(投壺), 그리고 한국 연은 아니지만 연을 날리며 새해 소망을 빈다.
또, 정성껏 준비해 주신 떡국을 먹으며 가래떡의 유래를 듣는다.
떡의 흰색은 평화를, 가래는 길고 둥글다는 뜻으로 장수(長壽)와 모나지 않은 삶을 상징한다고 열심히 설명을 해 준다.
이해를 하는지 대답은 큰 소리로 하건만, 떡볶이 그릇에 시선은 집중되어 있곤 했다.
힘이 들어 못 살겠고 죽겠다고 신음을 하다가도 설날 잔치 음식 준비로 참석하신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 TV속 놀이인 줄 안, 이런 놀이를 어디서 해보냐며 표정이 밝고, 학생들의 얼굴도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교사들도 교실 수업보다 힘은 들었지만 어우러져 함께 한 설날 수업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많은 학생들의 참석을 희망한다.

오랜 기간, 교사를 하면서 이번처럼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을 뵌 적도 처음이고, 학교 운영이 어려운 것도 처음이다.
기축년 새해,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 대한 온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그 동안의 위기가 기회가 되어, 경기 회복으로 못 살겠다느니 죽겠다는 표현은 이제 그만, 우리 자녀들에게 모국의 교육 기회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라면서, 지역의 동포단체나 기관, 교회 등에서 장소를 함께 나누며 사용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본다.

Saturday, March 27, 2010

기분 좋은 말

12월은 아직 학기 중인데도 마치 학기가 끝나는 기분이 들고, 반 학생들과 만나 수업을 한 지 4개월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일년이 지난 기분이 드는 달이다.
학생들 성격을 파악하고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곧 맞는 두 주의 겨울 방학이 아쉽기도 한 달이고, 11월 SAT II 한국어 시험을 끝내고 점수를 받게 되면 학교를 자퇴해 (거의 기대하던 점수를 받으니까) 학생들이 오지 않아 서운한 달이기도 하고, 남은 학생들은 「내년 3월, 아직 멀었잖아요」하며 농땡이를 부리는 달이기도 하다.
보조를 잘못 맞추면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달이 되고, 그러면 다음 학기 등록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는 중요한 달이라 긴장이 되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대 부분은 교사를 기분 좋게 하는 달이다.
「선생님은 좋겠다. 방학에 숙제 없어서」라는 시를 쓴 학생도 있고, 「나 너 보고 싶을 거야」라고 말한 김제동 눈이 전혀 부럽지 않은 아이, 「이거 내가 젤 좋아하는 거야, 진저 브레드」매일이 냄새 맡으라고 핸드크림을 선물한 아이도 있다. 꼭 「미세스 황」이라고 부르던 앤드류, 카드에는 「선셍늠, 꼬맘씀니다. J」하며 웃음을 주고, 「To 싼타, 제발 숙제 없게 도와 주세요」하는 기도문을 작성한 학생도 있고, 내 핸드폰에 자기 핸드폰 번호 입력해 주며 찰칵 사진까지 찍어 올린 못 말리는 애교 덩어리, 「항국 학교 안시러 하게 Homework 보내지마」라는 용기 있는 항변을 하는 아이,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무섭다는 아이, 「하이 킥」좀 하지 마라는 아이, 파리채 게임은 제발 그만 하자고 웃다 못해 우는 아이, 꼬치 꼬치 말 대답에, 말 따라 하고, 억양 흉내고, 심술을 부리지 않으면 어딘가 이상하고 눈물을 쑥 빠지게 하던 아이도 둘이 있으면 그 누구보다 더 「쿨」 한 아이, 그러면서 선생님이 좋단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학생들과는 얼굴을 보며 눈을 맞추고, 손 바닥을 마주치고 몸을 부딪치며 하이 킥에 닭 싸움까지 하면서 속마음을 알았기에 학생들과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다 이해가 되는데, 처음 보시는 부모님은 눈이 휘둥그렇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며 아이와 노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표정은 영 밝지 않다. 그러시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좋단다. 그래서 기분이 매우 좋다.
보내 주시는 카드마다 공통으로 써 주시는 말씀, 「개구쟁이, 말썽쟁이 우리 아이 예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부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지만, 기분은 굉장히 좋다. 학생들과 부모님과 교사인 나와 통한 것이니까.

「천만 번 또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옛날 노래 말처럼, 우리 학생들이 해 주는 모든 말- 아직까지는「I hate you」이 없어 다행이지만- 어느 말이라도 기분이 좋다. 이는 학생들이 나에게 먼저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었기에 나 또한 학생들에게 당연히 사랑을 준 것이다.
새해에는 기분 좋은 말 사랑해, 좋아 해를 먼저 말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도 이제는 듣고 싶다.

아버지의 웃음

나는 아버지의 웃음을 좋아해요.
아버지의 웃음은
나를 기쁘게 해요.
나를 편하게 해요.
나를 웃게 해요.
나를 도와줘요.
나를 크게 했어요.

아버지의 슬픈 웃음은 싫어요.
힘들게 일하신 아버지는 피곤해 보여요.

내일 아빠의 환한 웃음을 보기 원해요.
아빠의 웃음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요.

나는 아빠가 많이 좋아요.
나는 아빠를 하늘만큼 사랑해요.
나는 아빠를 땅만큼 사랑해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빠의 웃음을 나에게 주셔서.
김민영

몇 년을 함께 공부한 6학년 민영이가 쓴 시다.
나와 함께 공부한 아이가 쓴 시이라 그런지 나는 이 시를 자주 읽는다. 어릴 적 나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요즘 아버지들과는 다르게 늘 근엄한 표정과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아버지이셨지만, 돌이켜 보면 시에서 표현했듯 나를 기쁘게 편하게 웃게 해주고 도와 주고 무엇보다 이만큼 크게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좋다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꿈에서라도 고백 한번 못 하였지만 피곤에 지쳐 처진 어깨가 오늘은 보고 싶다.
쑥스러워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더 늦기 전에 해 드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해를 결산하는 감사절에 함께 공부했던 모든 학생들에게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고, 너희들을 기쁘게 편하게 웃게 해주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훗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웃음을 나에게 주셔서」하는 고백을 듣고 싶다.
그 고백을 듣기 위해 선생님은 지금도 무던히 노력하고 있단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답답해 못 살겠어요, 진짜 열심히 할게요, 가르쳐만 주세요.」
애원하듯 보채듯, 한글(한국 말은 잘함)을 배우고 싶어하는 12학년 멋 있는 남학생 때문에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난 시간에 남아 특별 수업을 한다.
어릴 적에 한국 학교 가는 것이 죽어도 싫어, 하기 싫은 축구도 야구도 무조건 시켜 달라고 등록 해 놓고는 이런 저런 핑계, 결국 한글도, 축구도 야구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12학년이 되었다.
지난 여름 온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누나와 동생은 서울을 찾아 다니며 구경을 하고, 특히 노래방에 가서는 거침없이 한국 노래를 신나게 불렀지만 한글을 모르는 이 학생은 미국 노래만 불러 분위기 망치고 더 이상 마이크 잡을 기회를 얻지 못해 기분 상했단다.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한글을 몰라 당했던 창피한 일들로 인해 한글을 배워야지 돌아 오는 비행기안에서 다짐 또 다짐을 하고 왔단다.
누구의 강요가 아니고 본인이 원해서 하는 공부라 비록 토요일 한 시간일지라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한글 날 즈음, 훈민 정음 언해의 머리말을 풀어 설명을 해 주었더니, 이 친구 책상을 탁 치면서 흥분을 했다. 교사인 나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주 당연한 단어, 그러나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될 문제.
세종 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실 때 우리 나라 말이 중국 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 나타내지 못해 한글을 만드신다고 했는데, 한국에 가면 한자어는 대부분 높임 말로 사용되고 있단다. 나이의 높임 말은 「연세(年歲)」나이를 세는 말 살은「세(歲)」 집은 「댁(宅)」아프다 의 높임 말「편(便)찮다」등을 사용할 줄 몰라 버릇없는 「나쁜 놈」이 되었단다.
또, 한국에는 없는 말이 있는 줄 알았단다.
그래서 스톱(Stop), 해피(Happy), 와이프(Wife), 트렌드(Trend)란 한글 단어를 만들고 싶다고 하니 요즘은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 트렌드라고 하면서 그래야 사람들이 럭서리 해 보여 무시하지 않는단다. 그래도 스톱을 「멈춤」이라고 굳이 말하니 「이상한 놈」취급을 했단다.
그리고 예쁜 말이 있는데 한국의 길가에는 꼭 영어를 한글로 표기해 놓았는지 모르겠단다. 「해피 수원」 「글로벌 인천」심지어 「해피 한가위」까지.
이렇게 한글, 한자, 영어 일본어까지 막 믹스되어 있으면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목적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열변을 토하다 「믹스」가 한국말로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렇다. 아름답고 예쁜 우리 말이 있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은 한자어, 마구사용 되고 있는 외국어, SAT II 한국어 시험을 위한 한국어 공부가 아니라 내 뿌리의 말과 글을 꼭 배우고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이 땅에 한글을 몰라 답답해 하는 우리의 아들 딸이 있는 한 나 또한 이들에게 한글 가르치기에 이 한 몸 바치고 싶다.
그러면, 한글을 배우고저 열망하는 다윗과 언제고 가르치기 원하는 나는 「좋은 놈」?

하늘이 열릴 즈음

개학과 입학으로 바쁜 두 주를 보내고 나면 바로 추석 행사를 치르고, 이어서 배우는 것이 대한 민국 건국사이다.
환웅이 하늘의 왕 환인의 뜻을 받들어 하늘 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 인간(弘益 人間)과 이화 세계(理化 世界)을 이념으로 나라를 세운 날이 개천절이고 그 당시 나라 이름을 고조선이라 한다는 설명을 하면, 예전 같으면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만 끄덕 끄덕거렸던 학생들이 요즘은 눈을 반짝거리며 질문이 많다.
종교적 색채가 짙게 단군 신화는 무조건 미신이라며 알 필요가 없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단군은 상상 속의 그대, 해모수부터 믿을 수 있는 역사,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난 아들이 단군? 환웅이 해모수? 단군과 해모수와의 관계는? 등등.
이와 같이 우리 학생들이 단군 신화보다 해모수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로 주몽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드라마의 영향으로 역사의 맥락을 잡고, 대한 민국 건국사를 가르치고 이해하는데 훨씬 쉬워졌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서 고조선이 한반도 북쪽으로부터 지금의 요동반도, 요령지방, 연해주, 만주를 포함했었다는 설명에 시큰둥하며 반응이 없다가, 삼국 시대로 넘어 와 고구려를 세운 사람이 바로 주몽, 주몽 아들 유리 그리고 무휼 왕과 드라마 바람의 나라,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 고조 되어 가다가, 신라의 해상 무역에 대해 설명할 때는 독도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겉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그 중에는 가수 김장환의 뉴욕 타임즈 독도 광고도 자세하게), 요즘의 요꼬 이야기기까지 거론 되기도 한다.

이런 수업을 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우리 학생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접하는 방법이 미국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 속의 아주 일부로 한국사를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더러TV드라마를 통해 단편적으로 그 시대의 주요 사건이나 인물들을 배우는 정도다.
그런데, 한국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 시대에 따른 재미있는 숨은 이야기, 유행 했던 패션 음식 대중 가요까지 배우게 된다. 처음에는 교사를 비웃듯 뭐 이런 것을 가르치냐고 항의를 하다가도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질문이 끊이지 않고, 드라마도 더 열심히 시청하여 오히려 부모님께 미안 하기도 하지만, 이는 뿌리가 한국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귀중한 사건이다.

그래서, 오늘도 학생들은 한글 받아 쓰기 시험보다, 역사에 대해 더 듣고 싶어 하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빅뱅의 노래 가사 읽기를 더 원하고, 원더 걸스의 So Hot 춤을 열심히 따라 한다.
그 누가 알랴! 하늘이 다시 열릴 때 이런 우리 아이들이 미 시민권이면서도 한국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며 한국과 미국을 잇는 다리 역할로 홍익 인간과 이화 세계를 실천하는 선봉자가 될 지.

희망의 선생님

무패(無敗) 행진으로 2008 북경 올림픽 한국 야구 대표 팀이 온 국민에게 흥분과 기쁨, 감동을 주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이번 여름 흥분과 기쁨, 감동을 준 분들이 있다.
6월, 방학으로 한국 학교의 수업은 없었지만, 방학을 이용하여 한글 공부 특히 SAT II 한국어를 공부하던 학생들과의 만남도 접은 채, 소수 민족이란 악조건 속에서 미 주류 사회에 진출해 뿌리를 내린 1세, 그리고 이제는 주역으로 선 2세들, 낯선 이름으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인 입양 인들과의 만남은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흥분과 감동은 올 여름내 기쁨과 도전을 주었다.
더듬거리는 영어와 한국어로 이어간 대화 속에 공통 부분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지라도 모국어가 한국어란 사실이다.
1세의 이분들은 한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이민50년이 넘도록 부단히 노력했고, 2세들은 사회에 진출해 보니 모국어를 말하지 못함이 오히려 창피하게 느껴지고 학교 때 한국어 배움의 기회를 소홀히 했던 일을 후회하며 이야기 했고, 또 다른 분은 학교 때 지긋 지긋 했던 토요 한국 학교로 인해 그나마 지금 이렇게 한국 말을 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한국인이지만 아주 어릴 적 낯선 환경으로 입양 된 분들은 커 가면서 외모와 자신의 이름으로 정체성이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모국어,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생겼단다.
특히 만난 분 중에, 입양 인의 대표자격인 신호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늦은 나이 입양된 선생님은 배움에 남다른 열정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단기간 (지금 우리들이 말하는 시간적 표현, 그렇지만 그 분의 표현은 내 일생)에 꿈 꾸었던 대학 교수직 까지 올랐지만, 어느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람인 당신이 한국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함이 처음으로 부끄러웠단다. 그리고 얼마 후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체계적인 한국어 공부도 난생 처음 하시게 되었단다.
지금은 누구든지 마음만 정하면 어디서든지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음을 부러워하셨고, 기회를 잡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게 희망의 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아직 이 분들의 경험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SAT II 한국어 시험에 관한 확인되지 않은 보도로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 공부를 포기 했었는데, 꼭 SAT II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이므로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워 이 분들이 경험한 창피함, 후회함을 벗어나 자신감 넘치는 자랑스런 2세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주에는 북 가주의 모든 한국 학교들이 개강한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지긋 지긋해도, 힘 들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라도, 조금만 참고 공부하면,
창피하고 부끄럽고,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고, 사회에 나와서는 발전한 모국의 언어를 사용하기에 분명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의 선생님들이 기다리는 한국 학교에서 이번 학기에도 건강한 우리 학생들을 만나기를 소망하며.

어언 20 년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이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는 「공짜」다.
한국에서 젊음의 상징인 그룹이 온다며 딸아이가 티켓을 예약하자고 한 달 전부터 보채었는데 만만찮은 가격에 무응답으로 대응해 왔다.
그런데, 그 공연의 초대권을 받게 되었다. 너무 좋았다. 딸에게 체면도 서고 모처럼 소리지를 기회도 갖고, 무엇보다 그 초대권은 바로 공짜이기에 더 좋았다.
그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예전의 식지 않은 열정이 있기에 두 시간 전부터 가서 주변을 배회하다 공연장소에 가서 줄을 섰다.
건장한 청년 한 명이 꾸벅 인사를 한다. 「선생님도 오셨어요?」 선생님이란 말에 움찔 했다. 초등학교 때 한글 선생님이라고 여자 친구에게 소개를 해서 기억이 없어 미안 했지만 아는 척 했다. (나중에 기억이 났지만)
공연 시간이 늦어지면서 줄은 길어지고, 학생들과 부딪치는 횟수도 많아졌다. 한결같이 하는 말, 민망하게「선생님도 오셨어요?」 그리고 충격적인 한 마디는「세대가 틀리잖아요.」

한국 학교와 인연을 맺은 지 어언 20년이 지났다.
해마다 열리는 재미 한국 학교 협의회의 학술 대회에 올 해는 참석을 했다.
40여 년을 교사로서 남 다른 열정을 갖고 계시는 뉴욕의 선생님, 「기왕 바치는
열정, 기쁨으로」하라며 손 잡아 아낌 없이 주시는 칭찬과 격려, 부모님 연배 되시는 고등학교 대 선배님의 끊임없이 부어 주시는 도전과 사랑, 평소 만나기 힘든 저명 인사들의 주제 강의 및 강연, 특히 대학 총장이라고 소개 되신 분을 만나기 전에는 그 분의 직위에 맞는 직선적인 이미지를 생각 했었는데, 어울리지 않는 아줌마식 솔직한 수다강연, 한 두 번 뵌 기억으로 부담 없이 나누는 각종 정보 등을 얻으며, 한국 학교 교사라는 자부심에, 근속 연수에 따른 자만심까지 갖고 있던 나에게 이번 참석은 앞으로의 20년에 대한 「공동체적 조화」란 새로운 결심을 하게끔 했고, 사랑은 학생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며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

세대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강조하며, 달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기다리는 줄에서 우리는 열심히 토론한 후 극장의 자리에 앉았다.
나누어준 야광 봉으로 팔찌와 머리 띠를 만들었다. 두 개의 고리로 토끼 귀처럼 붙이고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같은 줄에는 점잖은 어르신들이 앉으셨는데(특히 존경하는 김희봉 선생님) 다른 줄에 앉은 우리 학생들에게 선생님도 너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 주어야 됨이 부담이었다. 울려 퍼지는 음악 속에 그런 부담은 녹아 없어졌고, 어느 새 나도 그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공동체적 조화를 위해.

기쁨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오는 키 작은 아이는 반달 눈으로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개구쟁이 남자 친구들이 머리를 만져도, 등을 꾹꾹 찔러도 개의치 않고 가운데 줄, 앞에서 두 번째 자리, (실은 제일 앞자리) 항상 그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는
보기에 손이 또래 아이와는 달랐다.
저 손으로 무엇을 할까? 교사의 궁금증이 커 갈 때 늘 학교에 데려 오던 아버님께서 두툼한 흰 봉투를 하나 주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열어 보지 못하고 며칠을 보내다 한국 신문에 난 기사를 보는데 우리 반에 그 작은 아이 같았다. 주셨던 봉투를 부랴 부랴 열어보니 산호제 머큐리 신문에 실린 기사를 아버님께서 복사해 주신 것이었다. 일곱 살의 작은 아이가 특유의 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제치고 활을 쥔 오른 팔은 옆으로 쭉 뻗고 바이올린을 잡은 왼 손은 머리보다 높게 올린 사진은 분명 연주 하던 음악의 최 절정의 순간이 포착된 듯 했다.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니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가 내 귀에 들렸고, 그들 속에서 나도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예쁘고 통통한 흰 손으로 바이올린을 켜는구나!」무언가 다른 느낌의 작은 아이는 욕심이 많았다. 맡겨진 일은 꼭 하고 만다. 아무리 시끄럽고 장난이 난무해도 그 날 배운 것은 꼭 그 날 소화하고, 숙제를 안 해온 적도 없다.
학교가 끝나면 나이차가 있어 보이는 오빠가 한 손에는 가방을 들어 주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 가곤 했었다.
그 후 아이는 상급 반으로 갔고, 나도 학교를 옮겨 만나는 기회가 없어져, 신문에 나오는 기사마다 나는 관심을 갖고 스크랩을 하면서 아이가 커 가는 모습과 소식을 접 할 수 있었다.
‘Monster’라는 찬사까지 받은 아이, 올 해는 대학을 갈 텐데 궁금해 하던 때에 연락을 받았다. (아버님께서는 나의 연락처를 모르셨기에 우리 교회 사무실을 통해 연락하셨다.)
부녀 합동 음악회, 아버지의 노래와 딸의 바이올린 연주.
읽기만 해도 가슴 벅찬 기쁨이 솟았다.
소개지에는 예전의 그 반달 눈으로 웃고 있는 그 작은 아이는 이제 긴 생머리의 숙녀가 되어 바이올린을 안고, 아버지는 선글라스를 끼고 인자한 웃음으로 자랑스런 딸 옆에 서 계셨다.
그런데, 이렇게 십 년이 넘은 시간을 잊지 않고 연락을 주셨는데, 그 음악회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기쁨이, 그리고 기쁨이 아버님께 너무 죄송했고, 흔치 않은 귀한 음악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워 지금도 보내 주신 소개지만 들여다 보곤 한다.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 공부를 떠나는 우리 자랑스런 기쁨이.
선생님에게 기쁨이 되고, 기쁨을 준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너의 멋지고 아름다운 미래를 축복하며, 기쁨아~, 사랑해~.
한국말과 한글 잊지 않기를 또한 부탁한다.

고맙다, 잘 가!

벌써 일년을 정리해야 하는 날이다.
SAT II 반의 경우는 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등록자가 많았다가 11월 본고사를 치른 후, 만족한 점수가 나오면 일부 빠져나가고, 4월 예비고사를 치를 때까지 꾸준히 나오다가 4월이 가면학교 출석률이 거의 없어진다.
그래도 꾸준하게 나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배웠고, 함께 했던 시간을 얼마나 기억하고, 수업 첫날의 설렘에 대한 기대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그리고 또 하나 선생님도 그렇게 Strict하지 않고 부드러운 여자라는 변명도 해야 한다.
그래서 수업 첫날 배웠던 것을 물어 보았다.
공책을 바인더를 뒤적 뒤적거리며 하는 말, 「옛날 거」「Something something 높다 하되」「Don’t give up」「Great Mountain」그래도 어렴풋이 기억은 나는가 보다.
우리 반에 처음 들어 오면 배우는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한 달간 외우기에 성공 했었는데도 학기말이 되니 모두 가물 가물거리는 표정이다.
그렇지만「Don’t give up」이라는 대답이 나와서 대단히 만족했다.
제일 싫었던 것과 좋았던 것은 글쓰기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매 주 공부한 것에 대한 글 쓰기가SAT II 한국어 시험과 무슨 관계이냐고 따지듯, 협박하듯 하더니, 그래도 끝까지 따라 와 준 학생들은 지난 번 북 가주 백일장 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선생님과 공부하면, 시험 잘 볼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말하는 짓궂은 학생도 있었다.
황당했다. 공부는 각자가 해야 하는 것인데 그냥 교실에 들어와 딴 짓 하며 하루 보내고 돌아가고, 숙제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하기를 거듭하더니 결국 이런 슬픈 말을 들려 준다.
하도 선생님이Strict 해 보여 하라는 대로 했더니 좋은 성적(순전히 본인입장에서) 이 나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학기 중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언론의 보도였다.
UC에서 SAT II 점수를 받지 않고, 시험도 없어질 것이라는 확인, 확정되지 않은 정보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것이다.
조금만 더 한글 공부를 했으면 정말 좋았을 학생들이 SAT I을 위해 학교를 떠나고, 한글 공부할 기회를 놓치게 되었을 때는 언론의 큰 힘을 다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마음 아팠던 일은 무조건 반항(교사 입장에서 보면)하던 학생이 하던 말, 「나는요, 여자들은 다 싫어요. 엄마가 싫으니까 다 싫어요. 살기도 싫어요.」 무슨 뜻이었을까? 말 걸기가 두려워 따뜻한 대화를 한번도 나눠보지 못하고 헤어진 이 학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그 동안 함께 했던 우리의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런 학생들은 이제 대학으로, 아니면 한국 학교는 이제 그만, SAT I 학원을 찾아 제 갈 길로 갈 텐데, 「얘들아~, 그 동안 정말 고마웠다. 어디서든지 열심히! Don’t give up, 알지?」

눈 물

성근이와 성지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인지 여느 학생보다 한국 말을 잘 하고 음식도 한국 음식을 즐겨 먹고, 예의도 깍듯하다.
지난 번 봄 방학 때, 아버지와 스키를 타러 갈 것이라며 좋아하던 두 남매에게 선생님도 눈이 보고 싶다고 했다.
눈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는 아이, 나는 사진을 가져 와 보여 준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 약속은 지키는 것이라며 약속에 대한 전래 동화인 사자와 토끼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신이 난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아빠와 스키 용품을 사러 간다고 수업 시간 끝나기만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은 보너스로 숙제가 없다는 말에 환호하며 「고맙습니다」을 연신 해댄다.
「그런데 눈을 어떻게 보여 줄 건데?」란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 의논 하다 병에 담아 가져 오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사실 나는 이 곳에서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 잊을 거라고 생각 했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수업, 요즘 아이들 굉장히 많은 스케줄 감당 하느라 정신 없는데, 신나게 놀다 보면 약속 자체를 잊어 버리겠지 하며, 변명을 하면 대답으로 어떤 동화를 읽어 줄까 했다.
주중에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우리 애들이 눈을 담아 왔는데 다 녹아서 물을 가져 가야겠네요.」 생각지 않은 말씀에 깜짝 놀랐다. 「어머나 세상에~, 나도 잊고 있던 약속이었네」미안함에 이 두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 줄까 또 고민이 생겼다.
눈에 탄 듯 바알간 얼굴로 만난 우리 성근이와 성지, 일단 빅허그 한번 하고, 「어땠어?」 교과서 읽으며 수업 하는 것보다 더 생생한 한글 수업. 말. 하. 기.
「미안해요」을 합창하며 입이 쭈욱 나오며 하는 말, 「아빠가 차 안에 히터를 틀어 눈이 녹았어. 진짜 눈 보여 주고 싶었는데.」「이것도 진짜 눈이야, 선생님은 약속을 지킨 너희들 마음이 더 좋아, 진짜 눈 본 것처럼」「그럼 오늘도 숙제 안 줄 수 있어요?」「공부 열심히 하면」「예~」
일주일에 한 시간 만나서 공부를 하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 주신 할머니께 감사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아이들 너무 쉽게 잊어 버리고, 잃어 버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조금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커 가는 현실이 아쉽다.
학교에서 반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결같이 하는 말 「걔들은 어리잖아요, 우리도 어릴 땐 그랬어요~」
약속, 어릴 때는 지키는 것, 그러면 반 학생들보다 더 어른인 교사, 부모님들은?
오늘도 냉장고에 넣어 둔 눈(녹은)물을 보니 눈물이 난다.
눈(녹은)물 위에 약속을 지키면서도 미안해 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황당 시추에이션

훈장 어른이 자리를 비운 서당은 금방 난장 판이 되었다.
한참이 지난 후 한 학생이 제안을 했다. 벽장 속에 넣어 두고 혼자 몰래 드시는 것을 하나씩 꺼내 먹자고. 아이들이 먹으면 죽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며 모든 아이들이 대답할 때 용감한 한 아이는 아이가 죽으면 어른도 죽는다며 벽장으로 올라가 곶감이 가득 든 고리짝을 찾아,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며 맛있게 먹었다. 함께 먹던 아이들은 훈장 어른이 돌아 오시는 소리에 그가 가장 아끼던 벼루를 일부러 깨뜨린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훈장 어른, 여차여차 대답하는 학생, 항상 말씀하시던 독약을 먹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 했다.
이럴 때 훈장 어른의 기분은?
조용하던 민우의 기막힌 대답「황당 시추에이션」
이 대답에 내가 황당해졌다. 전혀 생각 못했던 단어, 황당. 그러나 가장 적절한 표현.
이렇게 교실 안에서는 황당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한 주간 어떻게 보냈느냐는 질문에 사생활 간섭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학생도 있고, 교실 문 들어오면서 눈 한번 마주치지 않기에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네니 하는 말, 당신 싸이코지? 할 때 눈물이 핑 놀도록 황당하다.
한 시간이면 충분 하니 잊지 말고 꼭 숙제를 하라고 할 때 한 시간짜리 숙제를 왜 주냐며 말 대답하는 학생, 부모님이 말하는 자녀와 학생이 전혀 다를 때도 황당하다.
간식 담당인 학생이 연락 없이 결석했을 때, 왜 우리 아이는 간식이 두 번이냐고 늦은 시간 전화해 따질 때 정말 황당하다. 수업 시간에 계속 문자를 보내기에 그만 하라는 말에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책임 질 수 있냐고 말할 때도 황당 했었다.
그러나, 이런 쪽의 황당함보다 콧등 시큰거리게 몸 둘 바 모르게 황당할 때가 더 많다.
선생님 늦어서 미안해요 하며 교실문 열고 애교 떠는 학생, 이번 주 학교 못 가요 하고 이 메일 보내며 하트를 몇 개씩 그려 준 학생, 바빠서 숙제 안 할거라고 미리 전화하는 용감한 학생, 수업도 못하게 수업 시간 내 떠들다 집에 가면서 떠들어서 미안해요 말하는 학생, 간식 시간이 끝나고 수업시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걱정과 화가 나 있는데 아이스 크림을 쑥 내밀며 「드세요~」 할 때, 한글 공부보다는 그냥 얘기만 하자고 때 쓰는 학생, 진지하게 가정 얘기 꺼내는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황당하다.
가장 아끼던 벼루가 깨어졌기에 화가 났지만, 먼저 거짓말을 했기에 훈장 어른은 아무 말을 못하고 얼굴만 붉히셨다는 전래 동화처럼, 교사에게 늘 부정적인 학생에게 혹 교사인 내가 먼저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그래서 이런 황당 시추에이션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뒤돌아 보게 한다.「자 주말 잘 보내고, 3월 29일에 있을 SAT II 한국어 모의고사 준비하는 것 잊지 마라.」「네~에, 안녕히 가세요~」「선생님, 오늘 입은 연두색 스웨터 너무 잘 어울려요」하는 예일이의 말에 난 또 황당시추에이션을 연출한다

홍익 인간 (弘益 人間)

떠듬 떠듬, 어눌하게,
그 마음속의 울분을 힘든 한국 말로 승용이는 말 했다. 「나아 절대 한국 말 젤로 한거야. 할라그 시프니까」
함께 공부하는 승용이의 부모님께서는 브라질로 이민을 4~5세 무렵에 갔다가 미국으로 초등학교 2 학년 때 온 이민 1.5세이며 한국 말을 거의 못 하시고, 글은 전혀 모르셔서 2세 자녀에게는 한국어 교육을 일찌감치 개인 교습을 시키시는 전문직 종사자이시다. 부모님의 적극적 노력으로 승용이는 한국을 무척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남 다르고, 한국인임을 무척 자랑하고 다니는 특별한 학생이다.
그런데, 승용이가 숭례문이 화재로 없어졌다는 소식을 나에게 말하다 갑자기 한국 사람 「Stupid」이란다. 그 학교에 조기 유학 와서 엄마와 함께 사는 친구에게 속상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관심도 없고, 얼마 전에는 숙제로 받은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물어 보니 한글을 왜 배우려고 하냐면서 한국에서는 영어만 잘 하면 된다고 해서 화가 나서 한 말이란다.「나 정말 한국 말 제일 잘 할거야. 하고 싶으니까」
이렇게 어릴 적부터 한국 및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이 곳에서 한국어 교육은 대한민국 교육법 제 1 조에 명시된 홍익인간의 이념을 기초로 하기 보다는 SAT II 한국어 시험 만점을 위한 교육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한글 읽기를 조금만 해도SAT II 한국어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막무가내다.
공부를 일단 시작해 보면 한글의 뜻을 모르니 내용 파악이 안되어 지루해지고, 재미 또한 없어지고 바쁜 시간에 숙제도 못하니 학교 수업 받기 짜증나고, 이리 저리 핑계 대다 결석 잦아지면서 하는 말, 시험에 나오는 내용만 뽑아서 해 달라, 너무 Strict 하다, 무슨 수업을 세 시간 다 하려고 하느냐 할 때, 교사로서 정말 서글퍼진다.
그렇지만 이런 일보다는 감사한 일이 더 많다.
한 학생은 한국 말을 절대 하지 않기에 수업이 가능할까 의심을 했었다.
질문을 하면 꼭 영어 대답, 소리 내어 읽기를 시키면 「Sorry」하고 짧게 한마디, 그런데 쓰기를 시키면 정확한 맞춤법에 의한 쓰기를 하고, 듣기 시험을 치를 때는 항상 만점, 늘 나를 헷갈리게 했는데, 이번 SAT II 한국어 시험에서 하나 틀렸다며
이제 한글 공부를 그만 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물어 본 즉, SAT II 한국어 시험에서 말하기는 없어서 연습하지 않았단다. 8 학년 때 한글 배우기를 시작해 2년만의 쾌거(?)다. 또 다른 학생은 내용과 뜻을 이해하기보다는 무조건 외웠다는 학생도 있다. 역시 시험 결과에 만족해 하면서 학교를 그만 두었다. 하라는 대로 했는데 잘 나왔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준 학생도 있었다.
그 나라의 말과 글은 그 나라 사람의 정서와 정신을 대변한다고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사실임을 깨닫는다.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며,
SAT II 한국어 시험에서도 만족한 결과를 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한국 학교로 돌아가자!」이것만이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이요, 교육의 기본 정신인 홍익인간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려 드린다.

책 읽기

우리 학생들이 싫어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책 읽기다.
한글을 깨우치면서 읽기 숙제를 주면, 아직 어렵다고 읽지 않는다.
한글을 제법 아는 이 삼학년 학생들에게 읽기 숙제를 주면 읽기 표에 이중 삼중으로 표시를 해 오다가, 운동 등 과외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바쁘다고 숙제는커녕 학교도 빠지기 일쑤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구, 십 학년이 되면 부모님(특히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겨 SAT II 한국어 공부를 위해 다시 한국 학교에 오게 되면, 다 안다고 수업을 건성으로 듣고, 교과서를 읽으라면 귀찮다고 아우성이다.
숙제로 교과서 본문 읽기를 주면 재미없다고 미리 손사래를 친다.
심지어 SAT II 한국어 연습문제를 풀 때도 읽어 달라고 난리를 떨기도 한다.
이렇게 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독서 왕 선발 대회」가 있다고 광고를 했다.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래도 계속 광고를 하면서 한 권이라도 읽을 것을 부탁하다가 내가 지쳐서 포기를 했다. 다른 반은 열심히 읽는 것 같았는데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바쁘면 책 읽기를 할 시간이 없다고 할까?
핑계라고 단정을 지으며, 딸 아이에게 읽기를 시키니, 「엄마~ 학교 숙제가 얼마나 많은데, 엄마 이러면 한국 학교 학생들이 다 엄마 이상하다고 그래, 학교 오는 것만도 탱큐 해야 돼.」
그럴까? 의아해 하면서 그럼 교사인 내가 해보자고 도전을 했다.
하루 열 시간 이상 생업에 종사 하고, 주말에는 한국 학교에 종일 매달리고, 주중 저녁시간에는 한글 개인 지도로 꽉 찬 스케줄을 틈내, 앉아서 책을 읽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포기 해야지 하다가, 학교에 가서 시간 없어서 죽겠다고 엄살 부리는 학생들을 만나면 「그래도 저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학교에 왔잖아」 하는 위로를 받으면서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신경질만 늘었었는데, 잠을 줄이고 새벽 3시경에 일어나 「나는 할 수 있다.」 하며 읽었다. 그러기를 몇 개월,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우리 학생들도 이제는 아우성 치지 않는다.
6쪽이나 되는 심청전을 두세 줄씩 돌아가며 읽으며, 「So poor!」하며 감정 표현을 하고, 춘향전을 읽고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느낌이 다름은 정확하게 그 내용을 이해 했다는 증거이고, 한석봉의 전기를 읽고는 요즘은 붓 글씨가 아니라 텍스트 메시지 보내기로 바꾸어야 한다는 농담도 하고, 시와 시조를 읽을 때는 제법 운율을 맞춰 가며 읽기도 한다.
조금씩일지라도 매일 꾸준하게 읽은 결과이고, 읽다 보니 습관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다니엘 호오돈의 「큰 바위 얼굴」의 일부분을 읽기 숙제로 주니 하는 말「숙제는 제발 주지 마세요, 부탁 입니다.」부모님과 함께 읽으라고 하니「요즘 엄마들 책 읽어요?」하며 반문이다.
맞다. 정말 책 읽는 분 그리 많지 않다. 비디오는 볼 지라도.
그래서 감히 부탁 드립니다. 「책 좀 읽읍시다.」

엄마의 손

아주 특별한 몇 학생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 글쓰기다.
수필에 대해 공부 할 때 영특한 우리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무언가 써야 된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얻어진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일정한 틀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목적이나 주장이 두드러지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게 쓴 글, 그러나 글쓴이의 생각이 짜임 있고, 정돈 되어야 한다는 말에 함성 (喊聲)이 교실을 덮었다.
글 제(題)를 주지 않으니 더 막막해 하는 우리 아이들. 십 여분간 머리를 쥐어 짜는 모습이 역력 하다.
수업 했던 글 제와 같은 제목을 제시하니 이번에는 탄성(歎聲)을 질렀다.
주어진 제목, 「약손」「얼굴」
제목 써 놓고 연필 돌려가며 생각에 잠긴 이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때 자유 교양 대회에 나가서 생각에 잠겼다가 낮잠으로 이어졌던 기억이 떠 올라 웃음이 절로 나온다. 생각 그만하고 제발 써 보라고, 이런 저런 예를 들어 주어도 못 하겠다고 투정과 애교를 함께 부린다. 영어로 쓰고 한글로 번역 하라는 기막힌 제안을 했건만 제한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큰 소리 오간 후, 침묵은 흐르고, 누군가의 삭삭 글씨 쓰는 소리가 나더니 너도 나도 따각 따각 소리 내며 글쓰기에 여념이 없다.
끝까지 쓸 것 같지 않던 우리 반을 대표하는 패션 모델, 가장 열심히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쓴다.

「약손, 약은 낫게 한다. 그래서 매직이다. 그러니까 약은 매직이다.
손은 보살펴 준다. 그래서 엄마 손이다. 그러니까 약손은 엄마 손, 매직 손이다.」 로
시작한 글은 짧지만, 가슴 뭉클한 글이었다.
세탁소에서 10년을 넘게 일한 엄마는 여기 저기 다리미에 데인 자국이 많단다. 여름이면 땀띠가 목이며 겨드랑이에 나서 가려워하시고, 비가 오면 팔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신단다. 친구네 집에서 일하시는 엄마가 싫단다. 주인들은 모두 놀러 갈 때 엄마가 일하러 가는 것을 보면 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비즈니스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위해 새벽에 일 나가시는 엄마가 불쌍하단다. 그렇지만 엄마는 주인들이 못하는 것을 한단다. 옷의 모든 주름을 쫙 펴는 일,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일,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일,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는 것, 우리가 싫어해도 한국 학교에 보내 주는 것,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의 옷에 있던 주름이 엄마 손으로 와서 우리 엄마 손에는 주인 보다 주름이 많다고 하면서 그 주름마다 사랑이 박혀 있고, 기쁨이 박혀 있고, 모든 것을 좋게 하고 낫게 하는 것이 있는 매직 손, 그 손을 좋아한단다. 매일 속 상하게 하지만.
이 글은 모든 엄마께 드리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진 우리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얘들아, 진짜 진짜 사랑해, 다음 학기에 또 꼭 만나자~」

Best Student

「우리 애는요, 미국 학교에서 best student예요. 그런데 왜 한국 학교에서는 그렇게 보시죠? 섭섭해요.」라고 부모님들께서 가끔 말씀 하신다.
사실 이런 말씀을 하시면 듣는 교사들도 서운하다.
왜냐하면, 미국 학교나 한국 학교나 학교라는 공동체로서 다를 바 없는데, 굳이 차별을 두며 한국 학교라는 단서를 다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도 한국 학교와 미국 학교가 꼭 같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 중에 속한다.)
특히, 출결 문제에 있어서 토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 학교 가는 날이라고 하시며, 지각은 더욱 용납 못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는가 하면,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학교 가 주는 것만도 고마운 줄 알라는 분도 계신다.
숙제를 주면 아이가 얼마나 바쁜데 숙제를 주느냐는 부모님이 계시는가 하면, 온갖 정성과 성의가 묻어 있게 도와 주시는 분도 계신다.
수업시간 학습 분위기 조절을 위해 큰 소리가 나간 날은 영락없이 전화 세례를 받는다. 특정 학생을 지적하지 않았음이 천만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릴 때, 「우리 애 때문에 속 많이 상했지요?」하는 전화를 받게 되면 그 날의 감정과 피로가 녹아 내린다. 사실 그 학생 때문이 아니었을지라도.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시는 미국 학교에서의 Best student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재치 있는 대답,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무슨 뜻인지 알 듯 하지만 재차 물어본다.
「미국 학교Best student, 한국 학교Best student.」더 명쾌한 대답이다. 미국 학교에서 Best student이면 한국 학교에서도Best student 이라는 정곡을 찌른 정답이다.
우리 학생들은 이렇게 말하는데 왜 부모님의 생각은 다른지 모르겠다.
토요일은 늦잠을 자도 깨우지 않으신다는 부모님, 그래서 지각, 너무 늦었으니까 오늘은 가지 말라고 하셨다 나?
한국 학교 숙제가 많아서 못한 것이 아니라, 일 주일에 한번 학교를 가니 미루다 잊어 버리고 못한 것이라는데 미국 학교 숙제 핑계 대며 변명 해주시는 부모님,
다 내 자식 위해 해주시는 것이지만 정작 아이들은 싫어한다.
정현이 말처럼「미국 학교Best student, 한국 학교Best student.」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하며, 한국 학교에서도Best student가 되어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배운 속담을 활용했으면 싶다.
그런데, 아세요?
매 주 토요일마다 한국 학교에 오는 학생 모두가Best student이고,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사실.

Same Grandma

「내꺼 하무니 니꺼 하무니 Same Grandma.」
가족의 명칭에 대해 배우면서 이름도 함께 공부 할 때, 늘 붙어 다니는 아이가 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아이가 성(姓)도 같고 이름의 끝 자도 같아 사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사촌이 매 주일마다 만나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보기 좋았다.
공부 시간 쉬는 시간 늘 붙어 다니며, 장난에 일가견을 이룰 때, 다른 학생들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 했다. 부모님께 꼭 한번 교실에 들려 달라는 메모를 보내고 그 다음주 만난 두 어머니들께서는 서로 초면이란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민망한 마음에 「분명 같은 할머니라고 하던데」 만 되풀이 했고, 학기 말에 작품 정리 하다가, 학기 초에 만든 가족 나무를 보고 할머니 성함이 같은 글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글을 이제 막 배우는 어린 학생만 이런 웃지 못할 일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SAT II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Son-in-law의 한글이 무엇이지 라는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나오는 다양한 대답,
김 서방, 아범, 형부, 애비 등, Daughter-in-law는 에미, 어멈, 얘야, 며눌애기, 싹퉁 바가지, 오빠의 부인은 올케라는 정확한 명칭이 한번도 나오지 않았고, 대부분 이름을 대거나, 얌체, 몰라요, 무슨 꽃 이름인데, 여기에 기 막힌 대답, 싸가지.
형의 부인은 깍듯이 형수님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생들이 대답한 대부분의 호칭은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는 각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었고, TV 드라마에서 보고 들은 명칭이었다. 이를 통해 각 가정의 분위기를 알 듯 했고, 또 TV 드라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 나는 한국 말을 너무 잘해 사람들이 FOB인 줄 안다?」하며, 늘 자신만만한 딸에게 물어 보았다.
「엄마의 어머니는?」「한국 할머니」, 「엄마의 남 동생은?」「한국 삼촌」 꾹 참으며 또 물어 본다. 「엄마의 아버지는?」「한국 할아버지」, 「그러면 엄마의 자매는?」 「자매? 자매가 뭐야?」「아이구 맙소사, 한국 할머니가 뭐니, 한국 할아버지는 뭐고,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데?」「어? 엄마가 아까도 그랬는데 한국 삼촌이라고」.
다른 집 이야기 할 처지가 아니다.우선 한국 학교 교사인 나부터 정확한 한국 말을 사용해야 됨을 깨달은 한글 날 저녁이었다.

Back To School

"엄마, 오늘 Minimum day 인데 학교 끝나고 (John)이랑 점심 먹고 와도 되요?"

"잔 누구? 점심?" "으응, 엄마 했던 잔이 이제 학교에 간다고 점심 한번 먹재, 엄마한테도 고맙다고 하면서" "아니, 고마우면 엄마한테 점심을 사야지 너한테 ? 웃기지 않니?"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물론 알지만, 그래도 고마워 한다는 말에 역시도 고마웠다.

죽도록 싫어하던 한글 공부, 한국 학교에 대한 반감, 그래서 시간 낭비라고 말하던 아이가, 한글 공부보다는 엄마 같은 아줌마 선생님과 티격태격 하며, 한글로 메일도 받고, 문자 메시지도 받다 보니, 마음이 열리고 정이 들어 마지 못해 하던 한글 공부에 조금은 재미를 부치고, 그래서 SAT II 한국어에도 도전했었다.

지난 학년도에는 모두가 꺼리는 가장 어린 유치 반을 담임 했다.

역시 마지 못해 따라 어리광을 피운다.

졸려요, 고파요, 마실래요, 화장실 갈래요, 쉴새 없는 주문과 선생님에 대해 쏟아지는 관심들.

귀여운 아이들과 학년을 마칠 무렵에는, 교실에 들어 오기 싫어 찔찔 짜던 아이가 집에 가기 싫다고 책상 밑으로 숨고, 인사를 시키면 혀만 내밀던 아이가 공손히 머리 숙여 만나는 횟수만큼 인사하고, 나누어 간식 움큼 집어 막무가내 입에 넣어 주고, 팔을 들어 하트 모양을 만들며, "썬쌩님~ 싸랑해" 한다.

이제 한국학교가 개학을 했다.

등록 첫날은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정신 없이 바쁜데, 지난 학기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이 허리에 매달리고, 다리를 붙잡고, 손을 끌고, 앞에서 뒤에서 졸졸 따라 다니며 "선생님 어디가?" 한다.

이번 학기에는 SAT II 한국어 반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선생님 반이 우리 이라며 굳이 형들과 함께 앉아 있는 말리는 귀염둥이, 개구쟁이들.

반으로 데려다 주고 오니, 형들 , 유치 학생들보다 떠들고 있네.

"자, 여기를 보세요"듣는지 마는지, 전화를 하고 있는 아이, 문자를 열심히 누르고 있는 아이, 음악을 듣고 있는 아이, 다시 한번 주목하라고 하지만 통한다.

"얘들아, 너희들 지난 학기 선생님은 나이스 하시고 하셨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거든, ? 나는 ...거든, 아줌마는 어떻지?" "쿠~ 해요"

그래, 선생님 하거든, 그러니까 우리 학기 쿨하게 열심히 공부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