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7, 2010

기분 좋은 말

12월은 아직 학기 중인데도 마치 학기가 끝나는 기분이 들고, 반 학생들과 만나 수업을 한 지 4개월여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일년이 지난 기분이 드는 달이다.
학생들 성격을 파악하고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곧 맞는 두 주의 겨울 방학이 아쉽기도 한 달이고, 11월 SAT II 한국어 시험을 끝내고 점수를 받게 되면 학교를 자퇴해 (거의 기대하던 점수를 받으니까) 학생들이 오지 않아 서운한 달이기도 하고, 남은 학생들은 「내년 3월, 아직 멀었잖아요」하며 농땡이를 부리는 달이기도 하다.
보조를 잘못 맞추면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달이 되고, 그러면 다음 학기 등록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는 중요한 달이라 긴장이 되기 일쑤이다.

그렇지만 대 부분은 교사를 기분 좋게 하는 달이다.
「선생님은 좋겠다. 방학에 숙제 없어서」라는 시를 쓴 학생도 있고, 「나 너 보고 싶을 거야」라고 말한 김제동 눈이 전혀 부럽지 않은 아이, 「이거 내가 젤 좋아하는 거야, 진저 브레드」매일이 냄새 맡으라고 핸드크림을 선물한 아이도 있다. 꼭 「미세스 황」이라고 부르던 앤드류, 카드에는 「선셍늠, 꼬맘씀니다. J」하며 웃음을 주고, 「To 싼타, 제발 숙제 없게 도와 주세요」하는 기도문을 작성한 학생도 있고, 내 핸드폰에 자기 핸드폰 번호 입력해 주며 찰칵 사진까지 찍어 올린 못 말리는 애교 덩어리, 「항국 학교 안시러 하게 Homework 보내지마」라는 용기 있는 항변을 하는 아이,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무섭다는 아이, 「하이 킥」좀 하지 마라는 아이, 파리채 게임은 제발 그만 하자고 웃다 못해 우는 아이, 꼬치 꼬치 말 대답에, 말 따라 하고, 억양 흉내고, 심술을 부리지 않으면 어딘가 이상하고 눈물을 쑥 빠지게 하던 아이도 둘이 있으면 그 누구보다 더 「쿨」 한 아이, 그러면서 선생님이 좋단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그런데, 학생들과는 얼굴을 보며 눈을 맞추고, 손 바닥을 마주치고 몸을 부딪치며 하이 킥에 닭 싸움까지 하면서 속마음을 알았기에 학생들과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다 이해가 되는데, 처음 보시는 부모님은 눈이 휘둥그렇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며 아이와 노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씀은 하시지만 표정은 영 밝지 않다. 그러시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좋단다. 그래서 기분이 매우 좋다.
보내 주시는 카드마다 공통으로 써 주시는 말씀, 「개구쟁이, 말썽쟁이 우리 아이 예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부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지만, 기분은 굉장히 좋다. 학생들과 부모님과 교사인 나와 통한 것이니까.

「천만 번 또 들어도 기분 좋은 말, 사랑해~」옛날 노래 말처럼, 우리 학생들이 해 주는 모든 말- 아직까지는「I hate you」이 없어 다행이지만- 어느 말이라도 기분이 좋다. 이는 학생들이 나에게 먼저 웃음을 주고 행복을 주었기에 나 또한 학생들에게 당연히 사랑을 준 것이다.
새해에는 기분 좋은 말 사랑해, 좋아 해를 먼저 말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도 이제는 듣고 싶다.

아버지의 웃음

나는 아버지의 웃음을 좋아해요.
아버지의 웃음은
나를 기쁘게 해요.
나를 편하게 해요.
나를 웃게 해요.
나를 도와줘요.
나를 크게 했어요.

아버지의 슬픈 웃음은 싫어요.
힘들게 일하신 아버지는 피곤해 보여요.

내일 아빠의 환한 웃음을 보기 원해요.
아빠의 웃음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요.

나는 아빠가 많이 좋아요.
나는 아빠를 하늘만큼 사랑해요.
나는 아빠를 땅만큼 사랑해요.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빠의 웃음을 나에게 주셔서.
김민영

몇 년을 함께 공부한 6학년 민영이가 쓴 시다.
나와 함께 공부한 아이가 쓴 시이라 그런지 나는 이 시를 자주 읽는다. 어릴 적 나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요즘 아버지들과는 다르게 늘 근엄한 표정과 침묵으로 일관하시던 아버지이셨지만, 돌이켜 보면 시에서 표현했듯 나를 기쁘게 편하게 웃게 해주고 도와 주고 무엇보다 이만큼 크게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좋다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꿈에서라도 고백 한번 못 하였지만 피곤에 지쳐 처진 어깨가 오늘은 보고 싶다.
쑥스러워 사랑한다는 말보다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 더 늦기 전에 해 드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해를 결산하는 감사절에 함께 공부했던 모든 학생들에게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고, 너희들을 기쁘게 편하게 웃게 해주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훗날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웃음을 나에게 주셔서」하는 고백을 듣고 싶다.
그 고백을 듣기 위해 선생님은 지금도 무던히 노력하고 있단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답답해 못 살겠어요, 진짜 열심히 할게요, 가르쳐만 주세요.」
애원하듯 보채듯, 한글(한국 말은 잘함)을 배우고 싶어하는 12학년 멋 있는 남학생 때문에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난 시간에 남아 특별 수업을 한다.
어릴 적에 한국 학교 가는 것이 죽어도 싫어, 하기 싫은 축구도 야구도 무조건 시켜 달라고 등록 해 놓고는 이런 저런 핑계, 결국 한글도, 축구도 야구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12학년이 되었다.
지난 여름 온 가족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누나와 동생은 서울을 찾아 다니며 구경을 하고, 특히 노래방에 가서는 거침없이 한국 노래를 신나게 불렀지만 한글을 모르는 이 학생은 미국 노래만 불러 분위기 망치고 더 이상 마이크 잡을 기회를 얻지 못해 기분 상했단다.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한글을 몰라 당했던 창피한 일들로 인해 한글을 배워야지 돌아 오는 비행기안에서 다짐 또 다짐을 하고 왔단다.
누구의 강요가 아니고 본인이 원해서 하는 공부라 비록 토요일 한 시간일지라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한글 날 즈음, 훈민 정음 언해의 머리말을 풀어 설명을 해 주었더니, 이 친구 책상을 탁 치면서 흥분을 했다. 교사인 나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주 당연한 단어, 그러나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될 문제.
세종 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실 때 우리 나라 말이 중국 말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그 뜻을 담아 나타내지 못해 한글을 만드신다고 했는데, 한국에 가면 한자어는 대부분 높임 말로 사용되고 있단다. 나이의 높임 말은 「연세(年歲)」나이를 세는 말 살은「세(歲)」 집은 「댁(宅)」아프다 의 높임 말「편(便)찮다」등을 사용할 줄 몰라 버릇없는 「나쁜 놈」이 되었단다.
또, 한국에는 없는 말이 있는 줄 알았단다.
그래서 스톱(Stop), 해피(Happy), 와이프(Wife), 트렌드(Trend)란 한글 단어를 만들고 싶다고 하니 요즘은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 트렌드라고 하면서 그래야 사람들이 럭서리 해 보여 무시하지 않는단다. 그래도 스톱을 「멈춤」이라고 굳이 말하니 「이상한 놈」취급을 했단다.
그리고 예쁜 말이 있는데 한국의 길가에는 꼭 영어를 한글로 표기해 놓았는지 모르겠단다. 「해피 수원」 「글로벌 인천」심지어 「해피 한가위」까지.
이렇게 한글, 한자, 영어 일본어까지 막 믹스되어 있으면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목적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열변을 토하다 「믹스」가 한국말로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렇다. 아름답고 예쁜 우리 말이 있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은 한자어, 마구사용 되고 있는 외국어, SAT II 한국어 시험을 위한 한국어 공부가 아니라 내 뿌리의 말과 글을 꼭 배우고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이 땅에 한글을 몰라 답답해 하는 우리의 아들 딸이 있는 한 나 또한 이들에게 한글 가르치기에 이 한 몸 바치고 싶다.
그러면, 한글을 배우고저 열망하는 다윗과 언제고 가르치기 원하는 나는 「좋은 놈」?

하늘이 열릴 즈음

개학과 입학으로 바쁜 두 주를 보내고 나면 바로 추석 행사를 치르고, 이어서 배우는 것이 대한 민국 건국사이다.
환웅이 하늘의 왕 환인의 뜻을 받들어 하늘 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 인간(弘益 人間)과 이화 세계(理化 世界)을 이념으로 나라를 세운 날이 개천절이고 그 당시 나라 이름을 고조선이라 한다는 설명을 하면, 예전 같으면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만 끄덕 끄덕거렸던 학생들이 요즘은 눈을 반짝거리며 질문이 많다.
종교적 색채가 짙게 단군 신화는 무조건 미신이라며 알 필요가 없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단군은 상상 속의 그대, 해모수부터 믿을 수 있는 역사,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난 아들이 단군? 환웅이 해모수? 단군과 해모수와의 관계는? 등등.
이와 같이 우리 학생들이 단군 신화보다 해모수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바로 주몽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드라마의 영향으로 역사의 맥락을 잡고, 대한 민국 건국사를 가르치고 이해하는데 훨씬 쉬워졌다.
그런데, 지도를 보면서 고조선이 한반도 북쪽으로부터 지금의 요동반도, 요령지방, 연해주, 만주를 포함했었다는 설명에 시큰둥하며 반응이 없다가, 삼국 시대로 넘어 와 고구려를 세운 사람이 바로 주몽, 주몽 아들 유리 그리고 무휼 왕과 드라마 바람의 나라,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 고조 되어 가다가, 신라의 해상 무역에 대해 설명할 때는 독도에 대해 각자의 의견이 겉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그 중에는 가수 김장환의 뉴욕 타임즈 독도 광고도 자세하게), 요즘의 요꼬 이야기기까지 거론 되기도 한다.

이런 수업을 하면서 자주 느끼는 것은 대부분의 우리 학생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접하는 방법이 미국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사 속의 아주 일부로 한국사를 배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더러TV드라마를 통해 단편적으로 그 시대의 주요 사건이나 인물들을 배우는 정도다.
그런데, 한국 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 시대에 따른 재미있는 숨은 이야기, 유행 했던 패션 음식 대중 가요까지 배우게 된다. 처음에는 교사를 비웃듯 뭐 이런 것을 가르치냐고 항의를 하다가도 한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질문이 끊이지 않고, 드라마도 더 열심히 시청하여 오히려 부모님께 미안 하기도 하지만, 이는 뿌리가 한국이란 사실을 입증하는 귀중한 사건이다.

그래서, 오늘도 학생들은 한글 받아 쓰기 시험보다, 역사에 대해 더 듣고 싶어 하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빅뱅의 노래 가사 읽기를 더 원하고, 원더 걸스의 So Hot 춤을 열심히 따라 한다.
그 누가 알랴! 하늘이 다시 열릴 때 이런 우리 아이들이 미 시민권이면서도 한국을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하며 한국과 미국을 잇는 다리 역할로 홍익 인간과 이화 세계를 실천하는 선봉자가 될 지.

희망의 선생님

무패(無敗) 행진으로 2008 북경 올림픽 한국 야구 대표 팀이 온 국민에게 흥분과 기쁨, 감동을 주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이번 여름 흥분과 기쁨, 감동을 준 분들이 있다.
6월, 방학으로 한국 학교의 수업은 없었지만, 방학을 이용하여 한글 공부 특히 SAT II 한국어를 공부하던 학생들과의 만남도 접은 채, 소수 민족이란 악조건 속에서 미 주류 사회에 진출해 뿌리를 내린 1세, 그리고 이제는 주역으로 선 2세들, 낯선 이름으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인 입양 인들과의 만남은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흥분과 감동은 올 여름내 기쁨과 도전을 주었다.
더듬거리는 영어와 한국어로 이어간 대화 속에 공통 부분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지라도 모국어가 한국어란 사실이다.
1세의 이분들은 한국어를 잊지 않기 위해 이민50년이 넘도록 부단히 노력했고, 2세들은 사회에 진출해 보니 모국어를 말하지 못함이 오히려 창피하게 느껴지고 학교 때 한국어 배움의 기회를 소홀히 했던 일을 후회하며 이야기 했고, 또 다른 분은 학교 때 지긋 지긋 했던 토요 한국 학교로 인해 그나마 지금 이렇게 한국 말을 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한국인이지만 아주 어릴 적 낯선 환경으로 입양 된 분들은 커 가면서 외모와 자신의 이름으로 정체성이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모국어, 한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생겼단다.
특히 만난 분 중에, 입양 인의 대표자격인 신호범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늦은 나이 입양된 선생님은 배움에 남다른 열정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단기간 (지금 우리들이 말하는 시간적 표현, 그렇지만 그 분의 표현은 내 일생)에 꿈 꾸었던 대학 교수직 까지 올랐지만, 어느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람인 당신이 한국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함이 처음으로 부끄러웠단다. 그리고 얼마 후 좋으신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체계적인 한국어 공부도 난생 처음 하시게 되었단다.
지금은 누구든지 마음만 정하면 어디서든지 한국어 공부를 할 수 있음을 부러워하셨고, 기회를 잡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게 희망의 선생님이 되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아직 이 분들의 경험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SAT II 한국어 시험에 관한 확인되지 않은 보도로 많은 학생들이 한국어 공부를 포기 했었는데, 꼭 SAT II 시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이므로 모국어인 한국어를 배워 이 분들이 경험한 창피함, 후회함을 벗어나 자신감 넘치는 자랑스런 2세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음 주에는 북 가주의 모든 한국 학교들이 개강한다.
지금이 바로 기회다.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지긋 지긋해도, 힘 들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라도, 조금만 참고 공부하면,
창피하고 부끄럽고,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고, 사회에 나와서는 발전한 모국의 언어를 사용하기에 분명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의 선생님들이 기다리는 한국 학교에서 이번 학기에도 건강한 우리 학생들을 만나기를 소망하며.

어언 20 년

나이가 들어도 변함없이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는 「공짜」다.
한국에서 젊음의 상징인 그룹이 온다며 딸아이가 티켓을 예약하자고 한 달 전부터 보채었는데 만만찮은 가격에 무응답으로 대응해 왔다.
그런데, 그 공연의 초대권을 받게 되었다. 너무 좋았다. 딸에게 체면도 서고 모처럼 소리지를 기회도 갖고, 무엇보다 그 초대권은 바로 공짜이기에 더 좋았다.
그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예전의 식지 않은 열정이 있기에 두 시간 전부터 가서 주변을 배회하다 공연장소에 가서 줄을 섰다.
건장한 청년 한 명이 꾸벅 인사를 한다. 「선생님도 오셨어요?」 선생님이란 말에 움찔 했다. 초등학교 때 한글 선생님이라고 여자 친구에게 소개를 해서 기억이 없어 미안 했지만 아는 척 했다. (나중에 기억이 났지만)
공연 시간이 늦어지면서 줄은 길어지고, 학생들과 부딪치는 횟수도 많아졌다. 한결같이 하는 말, 민망하게「선생님도 오셨어요?」 그리고 충격적인 한 마디는「세대가 틀리잖아요.」

한국 학교와 인연을 맺은 지 어언 20년이 지났다.
해마다 열리는 재미 한국 학교 협의회의 학술 대회에 올 해는 참석을 했다.
40여 년을 교사로서 남 다른 열정을 갖고 계시는 뉴욕의 선생님, 「기왕 바치는
열정, 기쁨으로」하라며 손 잡아 아낌 없이 주시는 칭찬과 격려, 부모님 연배 되시는 고등학교 대 선배님의 끊임없이 부어 주시는 도전과 사랑, 평소 만나기 힘든 저명 인사들의 주제 강의 및 강연, 특히 대학 총장이라고 소개 되신 분을 만나기 전에는 그 분의 직위에 맞는 직선적인 이미지를 생각 했었는데, 어울리지 않는 아줌마식 솔직한 수다강연, 한 두 번 뵌 기억으로 부담 없이 나누는 각종 정보 등을 얻으며, 한국 학교 교사라는 자부심에, 근속 연수에 따른 자만심까지 갖고 있던 나에게 이번 참석은 앞으로의 20년에 대한 「공동체적 조화」란 새로운 결심을 하게끔 했고, 사랑은 학생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며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라는 정의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

세대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임을 강조하며, 달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기다리는 줄에서 우리는 열심히 토론한 후 극장의 자리에 앉았다.
나누어준 야광 봉으로 팔찌와 머리 띠를 만들었다. 두 개의 고리로 토끼 귀처럼 붙이고 공연 시작을 기다렸다. 같은 줄에는 점잖은 어르신들이 앉으셨는데(특히 존경하는 김희봉 선생님) 다른 줄에 앉은 우리 학생들에게 선생님도 너희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 주어야 됨이 부담이었다. 울려 퍼지는 음악 속에 그런 부담은 녹아 없어졌고, 어느 새 나도 그들과 함께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공동체적 조화를 위해.

기쁨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오는 키 작은 아이는 반달 눈으로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개구쟁이 남자 친구들이 머리를 만져도, 등을 꾹꾹 찔러도 개의치 않고 가운데 줄, 앞에서 두 번째 자리, (실은 제일 앞자리) 항상 그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는
보기에 손이 또래 아이와는 달랐다.
저 손으로 무엇을 할까? 교사의 궁금증이 커 갈 때 늘 학교에 데려 오던 아버님께서 두툼한 흰 봉투를 하나 주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열어 보지 못하고 며칠을 보내다 한국 신문에 난 기사를 보는데 우리 반에 그 작은 아이 같았다. 주셨던 봉투를 부랴 부랴 열어보니 산호제 머큐리 신문에 실린 기사를 아버님께서 복사해 주신 것이었다. 일곱 살의 작은 아이가 특유의 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제치고 활을 쥔 오른 팔은 옆으로 쭉 뻗고 바이올린을 잡은 왼 손은 머리보다 높게 올린 사진은 분명 연주 하던 음악의 최 절정의 순간이 포착된 듯 했다.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니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가 내 귀에 들렸고, 그들 속에서 나도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예쁘고 통통한 흰 손으로 바이올린을 켜는구나!」무언가 다른 느낌의 작은 아이는 욕심이 많았다. 맡겨진 일은 꼭 하고 만다. 아무리 시끄럽고 장난이 난무해도 그 날 배운 것은 꼭 그 날 소화하고, 숙제를 안 해온 적도 없다.
학교가 끝나면 나이차가 있어 보이는 오빠가 한 손에는 가방을 들어 주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 가곤 했었다.
그 후 아이는 상급 반으로 갔고, 나도 학교를 옮겨 만나는 기회가 없어져, 신문에 나오는 기사마다 나는 관심을 갖고 스크랩을 하면서 아이가 커 가는 모습과 소식을 접 할 수 있었다.
‘Monster’라는 찬사까지 받은 아이, 올 해는 대학을 갈 텐데 궁금해 하던 때에 연락을 받았다. (아버님께서는 나의 연락처를 모르셨기에 우리 교회 사무실을 통해 연락하셨다.)
부녀 합동 음악회, 아버지의 노래와 딸의 바이올린 연주.
읽기만 해도 가슴 벅찬 기쁨이 솟았다.
소개지에는 예전의 그 반달 눈으로 웃고 있는 그 작은 아이는 이제 긴 생머리의 숙녀가 되어 바이올린을 안고, 아버지는 선글라스를 끼고 인자한 웃음으로 자랑스런 딸 옆에 서 계셨다.
그런데, 이렇게 십 년이 넘은 시간을 잊지 않고 연락을 주셨는데, 그 음악회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기쁨이, 그리고 기쁨이 아버님께 너무 죄송했고, 흔치 않은 귀한 음악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워 지금도 보내 주신 소개지만 들여다 보곤 한다.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 공부를 떠나는 우리 자랑스런 기쁨이.
선생님에게 기쁨이 되고, 기쁨을 준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너의 멋지고 아름다운 미래를 축복하며, 기쁨아~, 사랑해~.
한국말과 한글 잊지 않기를 또한 부탁한다.

고맙다, 잘 가!

벌써 일년을 정리해야 하는 날이다.
SAT II 반의 경우는 학기가 시작하는 9월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등록자가 많았다가 11월 본고사를 치른 후, 만족한 점수가 나오면 일부 빠져나가고, 4월 예비고사를 치를 때까지 꾸준히 나오다가 4월이 가면학교 출석률이 거의 없어진다.
그래도 꾸준하게 나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 학생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배웠고, 함께 했던 시간을 얼마나 기억하고, 수업 첫날의 설렘에 대한 기대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그리고 또 하나 선생님도 그렇게 Strict하지 않고 부드러운 여자라는 변명도 해야 한다.
그래서 수업 첫날 배웠던 것을 물어 보았다.
공책을 바인더를 뒤적 뒤적거리며 하는 말, 「옛날 거」「Something something 높다 하되」「Don’t give up」「Great Mountain」그래도 어렴풋이 기억은 나는가 보다.
우리 반에 처음 들어 오면 배우는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한 달간 외우기에 성공 했었는데도 학기말이 되니 모두 가물 가물거리는 표정이다.
그렇지만「Don’t give up」이라는 대답이 나와서 대단히 만족했다.
제일 싫었던 것과 좋았던 것은 글쓰기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매 주 공부한 것에 대한 글 쓰기가SAT II 한국어 시험과 무슨 관계이냐고 따지듯, 협박하듯 하더니, 그래도 끝까지 따라 와 준 학생들은 지난 번 북 가주 백일장 에서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선생님과 공부하면, 시험 잘 볼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말하는 짓궂은 학생도 있었다.
황당했다. 공부는 각자가 해야 하는 것인데 그냥 교실에 들어와 딴 짓 하며 하루 보내고 돌아가고, 숙제가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하기를 거듭하더니 결국 이런 슬픈 말을 들려 준다.
하도 선생님이Strict 해 보여 하라는 대로 했더니 좋은 성적(순전히 본인입장에서) 이 나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데 학기 중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언론의 보도였다.
UC에서 SAT II 점수를 받지 않고, 시험도 없어질 것이라는 확인, 확정되지 않은 정보로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것이다.
조금만 더 한글 공부를 했으면 정말 좋았을 학생들이 SAT I을 위해 학교를 떠나고, 한글 공부할 기회를 놓치게 되었을 때는 언론의 큰 힘을 다시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마음 아팠던 일은 무조건 반항(교사 입장에서 보면)하던 학생이 하던 말, 「나는요, 여자들은 다 싫어요. 엄마가 싫으니까 다 싫어요. 살기도 싫어요.」 무슨 뜻이었을까? 말 걸기가 두려워 따뜻한 대화를 한번도 나눠보지 못하고 헤어진 이 학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그 동안 함께 했던 우리의 예쁘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런 학생들은 이제 대학으로, 아니면 한국 학교는 이제 그만, SAT I 학원을 찾아 제 갈 길로 갈 텐데, 「얘들아~, 그 동안 정말 고마웠다. 어디서든지 열심히! Don’t give up, 알지?」

눈 물

성근이와 성지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인지 여느 학생보다 한국 말을 잘 하고 음식도 한국 음식을 즐겨 먹고, 예의도 깍듯하다.
지난 번 봄 방학 때, 아버지와 스키를 타러 갈 것이라며 좋아하던 두 남매에게 선생님도 눈이 보고 싶다고 했다.
눈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는 아이, 나는 사진을 가져 와 보여 준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 약속은 지키는 것이라며 약속에 대한 전래 동화인 사자와 토끼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신이 난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아빠와 스키 용품을 사러 간다고 수업 시간 끝나기만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은 보너스로 숙제가 없다는 말에 환호하며 「고맙습니다」을 연신 해댄다.
「그런데 눈을 어떻게 보여 줄 건데?」란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 의논 하다 병에 담아 가져 오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사실 나는 이 곳에서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 잊을 거라고 생각 했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수업, 요즘 아이들 굉장히 많은 스케줄 감당 하느라 정신 없는데, 신나게 놀다 보면 약속 자체를 잊어 버리겠지 하며, 변명을 하면 대답으로 어떤 동화를 읽어 줄까 했다.
주중에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우리 애들이 눈을 담아 왔는데 다 녹아서 물을 가져 가야겠네요.」 생각지 않은 말씀에 깜짝 놀랐다. 「어머나 세상에~, 나도 잊고 있던 약속이었네」미안함에 이 두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 줄까 또 고민이 생겼다.
눈에 탄 듯 바알간 얼굴로 만난 우리 성근이와 성지, 일단 빅허그 한번 하고, 「어땠어?」 교과서 읽으며 수업 하는 것보다 더 생생한 한글 수업. 말. 하. 기.
「미안해요」을 합창하며 입이 쭈욱 나오며 하는 말, 「아빠가 차 안에 히터를 틀어 눈이 녹았어. 진짜 눈 보여 주고 싶었는데.」「이것도 진짜 눈이야, 선생님은 약속을 지킨 너희들 마음이 더 좋아, 진짜 눈 본 것처럼」「그럼 오늘도 숙제 안 줄 수 있어요?」「공부 열심히 하면」「예~」
일주일에 한 시간 만나서 공부를 하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 주신 할머니께 감사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아이들 너무 쉽게 잊어 버리고, 잃어 버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조금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커 가는 현실이 아쉽다.
학교에서 반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결같이 하는 말 「걔들은 어리잖아요, 우리도 어릴 땐 그랬어요~」
약속, 어릴 때는 지키는 것, 그러면 반 학생들보다 더 어른인 교사, 부모님들은?
오늘도 냉장고에 넣어 둔 눈(녹은)물을 보니 눈물이 난다.
눈(녹은)물 위에 약속을 지키면서도 미안해 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황당 시추에이션

훈장 어른이 자리를 비운 서당은 금방 난장 판이 되었다.
한참이 지난 후 한 학생이 제안을 했다. 벽장 속에 넣어 두고 혼자 몰래 드시는 것을 하나씩 꺼내 먹자고. 아이들이 먹으면 죽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며 모든 아이들이 대답할 때 용감한 한 아이는 아이가 죽으면 어른도 죽는다며 벽장으로 올라가 곶감이 가득 든 고리짝을 찾아,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며 맛있게 먹었다. 함께 먹던 아이들은 훈장 어른이 돌아 오시는 소리에 그가 가장 아끼던 벼루를 일부러 깨뜨린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훈장 어른, 여차여차 대답하는 학생, 항상 말씀하시던 독약을 먹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 했다.
이럴 때 훈장 어른의 기분은?
조용하던 민우의 기막힌 대답「황당 시추에이션」
이 대답에 내가 황당해졌다. 전혀 생각 못했던 단어, 황당. 그러나 가장 적절한 표현.
이렇게 교실 안에서는 황당한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한 주간 어떻게 보냈느냐는 질문에 사생활 간섭이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학생도 있고, 교실 문 들어오면서 눈 한번 마주치지 않기에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건네니 하는 말, 당신 싸이코지? 할 때 눈물이 핑 놀도록 황당하다.
한 시간이면 충분 하니 잊지 말고 꼭 숙제를 하라고 할 때 한 시간짜리 숙제를 왜 주냐며 말 대답하는 학생, 부모님이 말하는 자녀와 학생이 전혀 다를 때도 황당하다.
간식 담당인 학생이 연락 없이 결석했을 때, 왜 우리 아이는 간식이 두 번이냐고 늦은 시간 전화해 따질 때 정말 황당하다. 수업 시간에 계속 문자를 보내기에 그만 하라는 말에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 책임 질 수 있냐고 말할 때도 황당 했었다.
그러나, 이런 쪽의 황당함보다 콧등 시큰거리게 몸 둘 바 모르게 황당할 때가 더 많다.
선생님 늦어서 미안해요 하며 교실문 열고 애교 떠는 학생, 이번 주 학교 못 가요 하고 이 메일 보내며 하트를 몇 개씩 그려 준 학생, 바빠서 숙제 안 할거라고 미리 전화하는 용감한 학생, 수업도 못하게 수업 시간 내 떠들다 집에 가면서 떠들어서 미안해요 말하는 학생, 간식 시간이 끝나고 수업시간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걱정과 화가 나 있는데 아이스 크림을 쑥 내밀며 「드세요~」 할 때, 한글 공부보다는 그냥 얘기만 하자고 때 쓰는 학생, 진지하게 가정 얘기 꺼내는 학생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황당하다.
가장 아끼던 벼루가 깨어졌기에 화가 났지만, 먼저 거짓말을 했기에 훈장 어른은 아무 말을 못하고 얼굴만 붉히셨다는 전래 동화처럼, 교사에게 늘 부정적인 학생에게 혹 교사인 내가 먼저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그래서 이런 황당 시추에이션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뒤돌아 보게 한다.「자 주말 잘 보내고, 3월 29일에 있을 SAT II 한국어 모의고사 준비하는 것 잊지 마라.」「네~에, 안녕히 가세요~」「선생님, 오늘 입은 연두색 스웨터 너무 잘 어울려요」하는 예일이의 말에 난 또 황당시추에이션을 연출한다

홍익 인간 (弘益 人間)

떠듬 떠듬, 어눌하게,
그 마음속의 울분을 힘든 한국 말로 승용이는 말 했다. 「나아 절대 한국 말 젤로 한거야. 할라그 시프니까」
함께 공부하는 승용이의 부모님께서는 브라질로 이민을 4~5세 무렵에 갔다가 미국으로 초등학교 2 학년 때 온 이민 1.5세이며 한국 말을 거의 못 하시고, 글은 전혀 모르셔서 2세 자녀에게는 한국어 교육을 일찌감치 개인 교습을 시키시는 전문직 종사자이시다. 부모님의 적극적 노력으로 승용이는 한국을 무척 좋아하고 역사에 관심이 남 다르고, 한국인임을 무척 자랑하고 다니는 특별한 학생이다.
그런데, 승용이가 숭례문이 화재로 없어졌다는 소식을 나에게 말하다 갑자기 한국 사람 「Stupid」이란다. 그 학교에 조기 유학 와서 엄마와 함께 사는 친구에게 속상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관심도 없고, 얼마 전에는 숙제로 받은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물어 보니 한글을 왜 배우려고 하냐면서 한국에서는 영어만 잘 하면 된다고 해서 화가 나서 한 말이란다.「나 정말 한국 말 제일 잘 할거야. 하고 싶으니까」
이렇게 어릴 적부터 한국 및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이 곳에서 한국어 교육은 대한민국 교육법 제 1 조에 명시된 홍익인간의 이념을 기초로 하기 보다는 SAT II 한국어 시험 만점을 위한 교육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한글 읽기를 조금만 해도SAT II 한국어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막무가내다.
공부를 일단 시작해 보면 한글의 뜻을 모르니 내용 파악이 안되어 지루해지고, 재미 또한 없어지고 바쁜 시간에 숙제도 못하니 학교 수업 받기 짜증나고, 이리 저리 핑계 대다 결석 잦아지면서 하는 말, 시험에 나오는 내용만 뽑아서 해 달라, 너무 Strict 하다, 무슨 수업을 세 시간 다 하려고 하느냐 할 때, 교사로서 정말 서글퍼진다.
그렇지만 이런 일보다는 감사한 일이 더 많다.
한 학생은 한국 말을 절대 하지 않기에 수업이 가능할까 의심을 했었다.
질문을 하면 꼭 영어 대답, 소리 내어 읽기를 시키면 「Sorry」하고 짧게 한마디, 그런데 쓰기를 시키면 정확한 맞춤법에 의한 쓰기를 하고, 듣기 시험을 치를 때는 항상 만점, 늘 나를 헷갈리게 했는데, 이번 SAT II 한국어 시험에서 하나 틀렸다며
이제 한글 공부를 그만 하겠다고 연락이 와서 물어 본 즉, SAT II 한국어 시험에서 말하기는 없어서 연습하지 않았단다. 8 학년 때 한글 배우기를 시작해 2년만의 쾌거(?)다. 또 다른 학생은 내용과 뜻을 이해하기보다는 무조건 외웠다는 학생도 있다. 역시 시험 결과에 만족해 하면서 학교를 그만 두었다. 하라는 대로 했는데 잘 나왔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워 준 학생도 있었다.
그 나라의 말과 글은 그 나라 사람의 정서와 정신을 대변한다고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사실임을 깨닫는다. 한국어를 배움으로써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며,
SAT II 한국어 시험에서도 만족한 결과를 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한국 학교로 돌아가자!」이것만이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이요, 교육의 기본 정신인 홍익인간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알려 드린다.

책 읽기

우리 학생들이 싫어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책 읽기다.
한글을 깨우치면서 읽기 숙제를 주면, 아직 어렵다고 읽지 않는다.
한글을 제법 아는 이 삼학년 학생들에게 읽기 숙제를 주면 읽기 표에 이중 삼중으로 표시를 해 오다가, 운동 등 과외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바쁘다고 숙제는커녕 학교도 빠지기 일쑤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구, 십 학년이 되면 부모님(특히 어머님)의 성화에 못 이겨 SAT II 한국어 공부를 위해 다시 한국 학교에 오게 되면, 다 안다고 수업을 건성으로 듣고, 교과서를 읽으라면 귀찮다고 아우성이다.
숙제로 교과서 본문 읽기를 주면 재미없다고 미리 손사래를 친다.
심지어 SAT II 한국어 연습문제를 풀 때도 읽어 달라고 난리를 떨기도 한다.
이렇게 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독서 왕 선발 대회」가 있다고 광고를 했다.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래도 계속 광고를 하면서 한 권이라도 읽을 것을 부탁하다가 내가 지쳐서 포기를 했다. 다른 반은 열심히 읽는 것 같았는데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바쁘면 책 읽기를 할 시간이 없다고 할까?
핑계라고 단정을 지으며, 딸 아이에게 읽기를 시키니, 「엄마~ 학교 숙제가 얼마나 많은데, 엄마 이러면 한국 학교 학생들이 다 엄마 이상하다고 그래, 학교 오는 것만도 탱큐 해야 돼.」
그럴까? 의아해 하면서 그럼 교사인 내가 해보자고 도전을 했다.
하루 열 시간 이상 생업에 종사 하고, 주말에는 한국 학교에 종일 매달리고, 주중 저녁시간에는 한글 개인 지도로 꽉 찬 스케줄을 틈내, 앉아서 책을 읽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 포기 해야지 하다가, 학교에 가서 시간 없어서 죽겠다고 엄살 부리는 학생들을 만나면 「그래도 저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학교에 왔잖아」 하는 위로를 받으면서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신경질만 늘었었는데, 잠을 줄이고 새벽 3시경에 일어나 「나는 할 수 있다.」 하며 읽었다. 그러기를 몇 개월,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우리 학생들도 이제는 아우성 치지 않는다.
6쪽이나 되는 심청전을 두세 줄씩 돌아가며 읽으며, 「So poor!」하며 감정 표현을 하고, 춘향전을 읽고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느낌이 다름은 정확하게 그 내용을 이해 했다는 증거이고, 한석봉의 전기를 읽고는 요즘은 붓 글씨가 아니라 텍스트 메시지 보내기로 바꾸어야 한다는 농담도 하고, 시와 시조를 읽을 때는 제법 운율을 맞춰 가며 읽기도 한다.
조금씩일지라도 매일 꾸준하게 읽은 결과이고, 읽다 보니 습관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다니엘 호오돈의 「큰 바위 얼굴」의 일부분을 읽기 숙제로 주니 하는 말「숙제는 제발 주지 마세요, 부탁 입니다.」부모님과 함께 읽으라고 하니「요즘 엄마들 책 읽어요?」하며 반문이다.
맞다. 정말 책 읽는 분 그리 많지 않다. 비디오는 볼 지라도.
그래서 감히 부탁 드립니다. 「책 좀 읽읍시다.」

엄마의 손

아주 특별한 몇 학생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 글쓰기다.
수필에 대해 공부 할 때 영특한 우리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시간이 끝나면 무언가 써야 된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얻어진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일정한 틀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목적이나 주장이 두드러지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게 쓴 글, 그러나 글쓴이의 생각이 짜임 있고, 정돈 되어야 한다는 말에 함성 (喊聲)이 교실을 덮었다.
글 제(題)를 주지 않으니 더 막막해 하는 우리 아이들. 십 여분간 머리를 쥐어 짜는 모습이 역력 하다.
수업 했던 글 제와 같은 제목을 제시하니 이번에는 탄성(歎聲)을 질렀다.
주어진 제목, 「약손」「얼굴」
제목 써 놓고 연필 돌려가며 생각에 잠긴 이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때 자유 교양 대회에 나가서 생각에 잠겼다가 낮잠으로 이어졌던 기억이 떠 올라 웃음이 절로 나온다. 생각 그만하고 제발 써 보라고, 이런 저런 예를 들어 주어도 못 하겠다고 투정과 애교를 함께 부린다. 영어로 쓰고 한글로 번역 하라는 기막힌 제안을 했건만 제한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큰 소리 오간 후, 침묵은 흐르고, 누군가의 삭삭 글씨 쓰는 소리가 나더니 너도 나도 따각 따각 소리 내며 글쓰기에 여념이 없다.
끝까지 쓸 것 같지 않던 우리 반을 대표하는 패션 모델, 가장 열심히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쓴다.

「약손, 약은 낫게 한다. 그래서 매직이다. 그러니까 약은 매직이다.
손은 보살펴 준다. 그래서 엄마 손이다. 그러니까 약손은 엄마 손, 매직 손이다.」 로
시작한 글은 짧지만, 가슴 뭉클한 글이었다.
세탁소에서 10년을 넘게 일한 엄마는 여기 저기 다리미에 데인 자국이 많단다. 여름이면 땀띠가 목이며 겨드랑이에 나서 가려워하시고, 비가 오면 팔이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신단다. 친구네 집에서 일하시는 엄마가 싫단다. 주인들은 모두 놀러 갈 때 엄마가 일하러 가는 것을 보면 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비즈니스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위해 새벽에 일 나가시는 엄마가 불쌍하단다. 그렇지만 엄마는 주인들이 못하는 것을 한단다. 옷의 모든 주름을 쫙 펴는 일,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하는 일,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일,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는 것, 우리가 싫어해도 한국 학교에 보내 주는 것,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의 옷에 있던 주름이 엄마 손으로 와서 우리 엄마 손에는 주인 보다 주름이 많다고 하면서 그 주름마다 사랑이 박혀 있고, 기쁨이 박혀 있고, 모든 것을 좋게 하고 낫게 하는 것이 있는 매직 손, 그 손을 좋아한단다. 매일 속 상하게 하지만.
이 글은 모든 엄마께 드리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예쁜 마음을 가진 우리 아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얘들아, 진짜 진짜 사랑해, 다음 학기에 또 꼭 만나자~」

Best Student

「우리 애는요, 미국 학교에서 best student예요. 그런데 왜 한국 학교에서는 그렇게 보시죠? 섭섭해요.」라고 부모님들께서 가끔 말씀 하신다.
사실 이런 말씀을 하시면 듣는 교사들도 서운하다.
왜냐하면, 미국 학교나 한국 학교나 학교라는 공동체로서 다를 바 없는데, 굳이 차별을 두며 한국 학교라는 단서를 다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도 한국 학교와 미국 학교가 꼭 같다고 생각지 않는 사람 중에 속한다.)
특히, 출결 문제에 있어서 토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 학교 가는 날이라고 하시며, 지각은 더욱 용납 못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는가 하면,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학교 가 주는 것만도 고마운 줄 알라는 분도 계신다.
숙제를 주면 아이가 얼마나 바쁜데 숙제를 주느냐는 부모님이 계시는가 하면, 온갖 정성과 성의가 묻어 있게 도와 주시는 분도 계신다.
수업시간 학습 분위기 조절을 위해 큰 소리가 나간 날은 영락없이 전화 세례를 받는다. 특정 학생을 지적하지 않았음이 천만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릴 때, 「우리 애 때문에 속 많이 상했지요?」하는 전화를 받게 되면 그 날의 감정과 피로가 녹아 내린다. 사실 그 학생 때문이 아니었을지라도.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시는 미국 학교에서의 Best student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재치 있는 대답,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무슨 뜻인지 알 듯 하지만 재차 물어본다.
「미국 학교Best student, 한국 학교Best student.」더 명쾌한 대답이다. 미국 학교에서 Best student이면 한국 학교에서도Best student 이라는 정곡을 찌른 정답이다.
우리 학생들은 이렇게 말하는데 왜 부모님의 생각은 다른지 모르겠다.
토요일은 늦잠을 자도 깨우지 않으신다는 부모님, 그래서 지각, 너무 늦었으니까 오늘은 가지 말라고 하셨다 나?
한국 학교 숙제가 많아서 못한 것이 아니라, 일 주일에 한번 학교를 가니 미루다 잊어 버리고 못한 것이라는데 미국 학교 숙제 핑계 대며 변명 해주시는 부모님,
다 내 자식 위해 해주시는 것이지만 정작 아이들은 싫어한다.
정현이 말처럼「미국 학교Best student, 한국 학교Best student.」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하며, 한국 학교에서도Best student가 되어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배운 속담을 활용했으면 싶다.
그런데, 아세요?
매 주 토요일마다 한국 학교에 오는 학생 모두가Best student이고, 진정한 챔피언이라는 사실.

Same Grandma

「내꺼 하무니 니꺼 하무니 Same Grandma.」
가족의 명칭에 대해 배우면서 이름도 함께 공부 할 때, 늘 붙어 다니는 아이가 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두 아이가 성(姓)도 같고 이름의 끝 자도 같아 사촌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사촌이 매 주일마다 만나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보기 좋았다.
공부 시간 쉬는 시간 늘 붙어 다니며, 장난에 일가견을 이룰 때, 다른 학생들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 했다. 부모님께 꼭 한번 교실에 들려 달라는 메모를 보내고 그 다음주 만난 두 어머니들께서는 서로 초면이란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민망한 마음에 「분명 같은 할머니라고 하던데」 만 되풀이 했고, 학기 말에 작품 정리 하다가, 학기 초에 만든 가족 나무를 보고 할머니 성함이 같은 글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글을 이제 막 배우는 어린 학생만 이런 웃지 못할 일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SAT II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Son-in-law의 한글이 무엇이지 라는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나오는 다양한 대답,
김 서방, 아범, 형부, 애비 등, Daughter-in-law는 에미, 어멈, 얘야, 며눌애기, 싹퉁 바가지, 오빠의 부인은 올케라는 정확한 명칭이 한번도 나오지 않았고, 대부분 이름을 대거나, 얌체, 몰라요, 무슨 꽃 이름인데, 여기에 기 막힌 대답, 싸가지.
형의 부인은 깍듯이 형수님이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생들이 대답한 대부분의 호칭은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는 각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었고, TV 드라마에서 보고 들은 명칭이었다. 이를 통해 각 가정의 분위기를 알 듯 했고, 또 TV 드라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 나는 한국 말을 너무 잘해 사람들이 FOB인 줄 안다?」하며, 늘 자신만만한 딸에게 물어 보았다.
「엄마의 어머니는?」「한국 할머니」, 「엄마의 남 동생은?」「한국 삼촌」 꾹 참으며 또 물어 본다. 「엄마의 아버지는?」「한국 할아버지」, 「그러면 엄마의 자매는?」 「자매? 자매가 뭐야?」「아이구 맙소사, 한국 할머니가 뭐니, 한국 할아버지는 뭐고,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데?」「어? 엄마가 아까도 그랬는데 한국 삼촌이라고」.
다른 집 이야기 할 처지가 아니다.우선 한국 학교 교사인 나부터 정확한 한국 말을 사용해야 됨을 깨달은 한글 날 저녁이었다.

Back To School

"엄마, 오늘 Minimum day 인데 학교 끝나고 (John)이랑 점심 먹고 와도 되요?"

"잔 누구? 점심?" "으응, 엄마 했던 잔이 이제 학교에 간다고 점심 한번 먹재, 엄마한테도 고맙다고 하면서" "아니, 고마우면 엄마한테 점심을 사야지 너한테 ? 웃기지 않니?"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물론 알지만, 그래도 고마워 한다는 말에 역시도 고마웠다.

죽도록 싫어하던 한글 공부, 한국 학교에 대한 반감, 그래서 시간 낭비라고 말하던 아이가, 한글 공부보다는 엄마 같은 아줌마 선생님과 티격태격 하며, 한글로 메일도 받고, 문자 메시지도 받다 보니, 마음이 열리고 정이 들어 마지 못해 하던 한글 공부에 조금은 재미를 부치고, 그래서 SAT II 한국어에도 도전했었다.

지난 학년도에는 모두가 꺼리는 가장 어린 유치 반을 담임 했다.

역시 마지 못해 따라 어리광을 피운다.

졸려요, 고파요, 마실래요, 화장실 갈래요, 쉴새 없는 주문과 선생님에 대해 쏟아지는 관심들.

귀여운 아이들과 학년을 마칠 무렵에는, 교실에 들어 오기 싫어 찔찔 짜던 아이가 집에 가기 싫다고 책상 밑으로 숨고, 인사를 시키면 혀만 내밀던 아이가 공손히 머리 숙여 만나는 횟수만큼 인사하고, 나누어 간식 움큼 집어 막무가내 입에 넣어 주고, 팔을 들어 하트 모양을 만들며, "썬쌩님~ 싸랑해" 한다.

이제 한국학교가 개학을 했다.

등록 첫날은 아무리 준비를 한다고 해도 정신 없이 바쁜데, 지난 학기 함께 공부했던 아이들이 허리에 매달리고, 다리를 붙잡고, 손을 끌고, 앞에서 뒤에서 졸졸 따라 다니며 "선생님 어디가?" 한다.

이번 학기에는 SAT II 한국어 반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선생님 반이 우리 이라며 굳이 형들과 함께 앉아 있는 말리는 귀염둥이, 개구쟁이들.

반으로 데려다 주고 오니, 형들 , 유치 학생들보다 떠들고 있네.

"자, 여기를 보세요"듣는지 마는지, 전화를 하고 있는 아이, 문자를 열심히 누르고 있는 아이, 음악을 듣고 있는 아이, 다시 한번 주목하라고 하지만 통한다.

"얘들아, 너희들 지난 학기 선생님은 나이스 하시고 하셨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거든, ? 나는 ...거든, 아줌마는 어떻지?" "쿠~ 해요"

그래, 선생님 하거든, 그러니까 우리 학기 쿨하게 열심히 공부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