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February 22, 2011

부럼 깨기

어릴 때, 손 꼽아 기다렸던 날 중에 한 날이 정월 대 보름이었다.
그 날은 내가 좋아하던 약식을 맘껏 먹을 수 있던 날이라 설이 지나면서부터 기다렸었는데,
정확한 날짜를 알고 기다리던 것이 아니고 찹쌀을 물에 담그고, 마른 나물들이 광에서 나와 있으면 그 날이구나 하며 기다렸었다.
할머니가 돌아 가시기 전까지 정월 보름날은 우리 집에서 꼭 지켜졌던 명절이었다.
이른 새벽 어둠 컴컴할 때, 할머니는 아직 자고 있는 손자 손녀들을 깨워 남보다 먼저호두와 깨금(개암), 밤을 어금니로 꽉 물어 ‘딱’ 소리가 나도록 깨라고 하셨다.
그리고 ‘부럼이요’를 크게 외치면 할머니는 모든 잡귀는 물러가고, 올해 부스럼이나 종기 나지 않고 튼튼한 이(치아)로 한해 건강 하라는 축복을 하며, 차가운 술(정종)을 한 모금씩 마시게 한 후 세상의 좋은 소리만 들으라고 귀를 비벼 주셨다.
새벽부터 마신 찬 술로 얼얼해서는 대문 앞에 서서, 내 더위 사가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고 하루를 시작 했다. 저녁에 잘 먹을 거라며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 후에는 복 조리를 방마다 걸어 놓게 하셨고 내 더위 사간 사람에게는 부채를 갖다 주라고도 하셨다.
엄마는 하루 종일 음식 하느라 바쁘고, 점심 건너 뛰고, 많은 종류의 나물만 한 상 차려진 이른 저녁을 약식과 오곡 밥으로 먹고, 대문을 활짝 열어 어두워지기 전 집안 곳곳에 등잔 불을 켜 놓은 후 부뚜막에는 음식들을 담아 덮어 놓고(밤에 누군가가 와서 가져 가도록), 설에 날렸던 연에 붓글씨로 무어라고 쓴 후 달이 뜨기 전, 동네 큰 다리로 데리고 나가 올 한해 소원을 빌라 하며 연을 날려 보내 셨다.
그리고 우리는 다리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했다. 한해 동안 다리 아프지 말게 해달라고 빌면서.
사실 다리 위를 걸으면서 우리들의 관심은 둑방에서 하는 쥐불 놀이이었다.
깨진 두레박에 못 구멍을 숭숭 내거나, 솜을 넣어 짚으로 단단하게 뭉쳐 둥글게 만든 것에 송진을 발라서 불을 붙여 돌리며 동네 별로 시합을 하기도 했었다.

이번 주 대보름에 대해 수업을 했다.
대보름의 유래부터 음식, 놀이까지 설명을 해주고 준비해간 부럼 재료로 부럼 깨기를 했다.
귀밝이 술의 의미를 설명 하며 식혜로 대신 했고, 다리 밟기는 학교 주차장에서 대신 하며
할머니가 우리에게 해 주셨던 것처럼 학생 한 아이씩에게 똑같이 해주었다.
더위 팔기와 종이 접기로 부채를 만들어 선물을 하기도 하고 달에 관한 동요 몇 가지를 부르고 아리랑까지 배워 불렀다.
그런데, 한 학생이 수업 시간 내내 못 마땅한 듯, 아니면 흥미가 없는 듯 유독 눈에 띄었다.
이유인즉 크리스천 이기 때문이란다.
대략난감(大略難堪), 우리 말 어법에 어긋나는 말이지만 가장 적절한 표현으로 이 단어가 떠올랐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하여 고국의 풍속을 꼭 지키자는 것이 아니라 모국을 알기 위해 배우고 경험하는 것인데, 이렇게 까지 어린 학생이 말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 했기에 몹시 당황했다.
한 나라의 고유 풍속이 문화와 역사로 이어지는 것이 분명한데, 왜 우리들은 전통 풍속을 종교와 연관 지으며 배우기 조차 거부 하는 것일까!
가정이 핵가족화 되고, 부부 모두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작은 명절들을 그냥 지나치거나, 잊고 있는 것일 텐데, 굳이 이유를 들어 배우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전통 풍습에 대해 가정에서 보고 들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가끔은 가정에서 부모들이 경험한 명절 이야기를 자녀들에게 들려 주어 모국을 배우는데 거부감 없이 받아 들이고,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도 함께 참석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