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9, 2010

Mr. Rogers’ Neighborhood

언젠가, 아들은 컴퓨터로 열심히 무엇을 보느라 부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정신 없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궁금하여 가까이 가서 보니, 체크 무늬 모직 스웨터를 입은 미스터 로저스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컴퓨터 속의 후레드 로저스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넋 놓고 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딸아이도 함께 합석을 하여 미스터 로저스가 하는 말에 숨을 죽이며 듣고 있었다.
「다 큰 애가 뭐 이런걸 보느냐」는 질문에 아들은 어렸을 적 「Mr. Rogers’ Neighborhood」은 엄마가 가르쳐 주지 않은 모든 것, 새로운 물건들의 사용 방법, 일반 생활의 기본 상식, 예절 등을 가르쳐 준 TV 프로그램이라면서 지금도 컴퓨터에 저장을 해 놓고 그 때를 생각하며 자주 보곤 한다고 하니, 딸도「맞아!」하며 맞장구를 친다.
돌이켜 보니 그렇다.
미국 생활이 생소한 상황에서 아이는 태어났고, 일은 해야 하는 형편이니 교육 방송 격인 채널 9을 아이에게 계속 틀어 주게 되어, 아이는 자연스럽게 이 프로가 바로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되었고, 이 프로를 통해서 미국을 배우며 경험하게 되었다.
동생이 태어나도 상황은 변하지 않아 두 남매가 늘 함께 보면서 곧장 잘 따라 하며 미국의 문화에 적응되어 갔다.
서너 살 무렵, 아이는 갖고 놀던 작은 장난감들을 줄을 맞춰 정리 정돈 하며 무어라 하기에 무슨 소리인가 물으니 미스터 로저스가 그렇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여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때 잘 배워 습관이 들어서인지, 지금도 혼자 사는 아파트에 가 보면 기가 막힐 정도로 정리 정돈을 철저하게 해 놓고 살며, 이웃에 대한 예의, 예절이 반듯하여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요즈음 학생들은 사뭇 다르다.
「Mr. Rogers’ Neighborhood」와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하지 않아서인지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아서인지 정리 정돈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수업 후에도 자기 물건이나 앉았던 의자조차도 아무렇게나 두고 교실을 도망치듯 떠나고, 심지어는 데리러 오시는 부모님들도 이런 상황을 묵인할 때가 많다.
사용한 컵도 책상 위에 그대로 놓고, 사용한 냅킨 또한 바닥에서 뒹굴어도 줍는 경우가 흔치 않고, 여럿이 모여 함께 간식을 할 때도 어른들이 들기 전에 불쑥 손을 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분명 함께 하는 간식이면 서로 적당 량을 나누어 가져가 먹는 것이 보이지 않는 약속인데, 주변 사람 생각 않고 혼자만 야금 야금거려도 주의를 주지 않으니 가끔은 교사로서 훈계를 하면 서운한 듯 몇 주 영 불편하다.
특히 한국 학교 수업 시간 지키기는 가장 어려운 듯, 첫째 시간 수업은 거의 자유 시간이 될 때가 많다. 수업 준비물과 숙제도 학부모님과 자녀가 서로 떠밀며 탓만 하면서, 모르쇠를 잡는다.
그러면, 이 학생들이 가정과 미국 정규 학교 생활도 이럴까?
대부분 부모님들께서는「절대 아니다.」라고 대답하신다. 무엇이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왜 한국 학교에서만 학생들의 행동이 이런 것이지?
교사들은 매 시간 목에 힘줄이 돋도록 목소리 높여 설명을 하고 부탁을 하며「절대 하지마!」「절대 안 돼!」를 외치는데 왜「절대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다정하게 얼굴을 마주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을 하며, 몇 번씩이라도 몸소 행동으로 보여 주는 후레드 로저스가 문득 생각이 난다.
한번의 설명이 두 번째는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하는 훈계로 바뀌고, 세 번째는 마지 못해 짜증 섞인 명령을 하는 권위 있는 교사로서 교실을 지키기에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었는지 되돌아 보며, 학년 초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서약한 서약서의 내용에 다시 한번 나를 비추어 본다.
「우리는 세종한국학교 태극기 반입니다.
우리는 선생님과 모든 반 친구들을 존중하며, 우리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집니다.
한국 학교에 와서 많이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며 숙제를 잘 하겠습니다.
학교의 약속을 지키고 훌륭한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랄 것입니다.」

Monday, October 18, 2010

깻잎 머리

대학 때 가정교사를 했던 학생의 어머님께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오셨다.
3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멋쟁이이신 어머님은 광수(그 개구쟁이 학생, 지금은 치료 잘 한다고 시내에서 입 소문난 유명한 치과 의사)의 소식을 전하며, 광수가 꼭 선생님께 자장면을 대접해 드리라 했다며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따라 나섰다.
동네에서 제일 비싸다는 중국집으로 가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이 더위에 무슨 자장면을 먹는담?」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때를 맞춰 광수가 전화를 해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하는 듯 감미로운 목소리가「선생님~」을 불러 주며, 꼭 자장면과 탕수육을 드시라고 한다.
목소리에 취해 얼떨결에「왜?」라고 물으니, 과외 받던 때, 시험만 끝나면 사주셨던 자장면에 대한 선생님의 추억이라며, 출국 전 치과에 들려 진료 받고 가라는 말까지 한다.
맛보다 감동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남김없이 먹고 나오는 데, 머리가 벗겨져 더 늙수그레한 깡마른 남자가 배달 통을 들고 들어오며, 나와 동행하신 분들을 보고 웃으며 다가오다 내 쪽을 보더니 반가움이 역력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순간 움찔 놀라 귀를 의심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이었다.
듣기로는 대기업에 다닌다고 했었는데, 강제 명퇴한 후 고향에 와서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내 얘기가 나왔다며 배달 밀렸다고 성화인 부인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40여 년 세월을 한달음에 쏟아 내며, 내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며 아직껏 변하지 않은 깻잎 머리(지금 용어로)를 말했다.
지금에야 헤어 스프레이도 있고 젤도 있고 폼도 있지만 그 당시는 보통 앞머리를 일자로 짧게 자르던지, 옆으로 넘겨 실핀으로 고정하는 정도였는데, 최신 유행인 「윤복희」
스타일로 멋을 한껏 부리던 나는 앞머리를 비스듬히 내려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를 고정하고 다녔었는데 부러움의 대상으로 눈총을 자주 받곤 했었다.
친구는 여기 저기 전화를 열심히 하면서 반창회를 열자고 했다. 내 일정은 무시한 채.
연결된 전화를 건네며 거울 보듯 통화하라고 하기에 신기함에 보니 영상 통화였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내 기억에서도 한번도 지워지지 않았던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일거수 일투족 기억해 주시며, 아직도 앞머리 내리고 다니냐고 물으신다.
너무나 뵙고 싶고 그리웠던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눈물을 보이시며 보고 싶었다고 하신다.
점심 장사 망쳤다고 투덜대던 안주인도 내 동생의 동창생이라며 얼음을 동동 띄운 수박 화채를 들고 나와서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군다.

한 나절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와 닿아 하루가 아쉬움에 일렁거린다.
나도 교사가 되리라고 다짐하도록 했던 선생님.
50이 넘은 제자를 아직까지도 일일이 기억하며 칭찬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선생님.
이런 든든한 선생님이 계시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늘 지켜주고 칭찬으로 이끌어 주는 그런 교사, 또 학생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 한번쯤 뵙고 싶어하는 그런 교사가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