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18, 2010

깻잎 머리

대학 때 가정교사를 했던 학생의 어머님께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오셨다.
3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멋쟁이이신 어머님은 광수(그 개구쟁이 학생, 지금은 치료 잘 한다고 시내에서 입 소문난 유명한 치과 의사)의 소식을 전하며, 광수가 꼭 선생님께 자장면을 대접해 드리라 했다며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따라 나섰다.
동네에서 제일 비싸다는 중국집으로 가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이 더위에 무슨 자장면을 먹는담?」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때를 맞춰 광수가 전화를 해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하는 듯 감미로운 목소리가「선생님~」을 불러 주며, 꼭 자장면과 탕수육을 드시라고 한다.
목소리에 취해 얼떨결에「왜?」라고 물으니, 과외 받던 때, 시험만 끝나면 사주셨던 자장면에 대한 선생님의 추억이라며, 출국 전 치과에 들려 진료 받고 가라는 말까지 한다.
맛보다 감동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남김없이 먹고 나오는 데, 머리가 벗겨져 더 늙수그레한 깡마른 남자가 배달 통을 들고 들어오며, 나와 동행하신 분들을 보고 웃으며 다가오다 내 쪽을 보더니 반가움이 역력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순간 움찔 놀라 귀를 의심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이었다.
듣기로는 대기업에 다닌다고 했었는데, 강제 명퇴한 후 고향에 와서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얼마 전, 동창회에서 내 얘기가 나왔다며 배달 밀렸다고 성화인 부인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40여 년 세월을 한달음에 쏟아 내며, 내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며 아직껏 변하지 않은 깻잎 머리(지금 용어로)를 말했다.
지금에야 헤어 스프레이도 있고 젤도 있고 폼도 있지만 그 당시는 보통 앞머리를 일자로 짧게 자르던지, 옆으로 넘겨 실핀으로 고정하는 정도였는데, 최신 유행인 「윤복희」
스타일로 멋을 한껏 부리던 나는 앞머리를 비스듬히 내려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를 고정하고 다녔었는데 부러움의 대상으로 눈총을 자주 받곤 했었다.
친구는 여기 저기 전화를 열심히 하면서 반창회를 열자고 했다. 내 일정은 무시한 채.
연결된 전화를 건네며 거울 보듯 통화하라고 하기에 신기함에 보니 영상 통화였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내 기억에서도 한번도 지워지지 않았던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일거수 일투족 기억해 주시며, 아직도 앞머리 내리고 다니냐고 물으신다.
너무나 뵙고 싶고 그리웠던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눈물을 보이시며 보고 싶었다고 하신다.
점심 장사 망쳤다고 투덜대던 안주인도 내 동생의 동창생이라며 얼음을 동동 띄운 수박 화채를 들고 나와서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군다.

한 나절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와 닿아 하루가 아쉬움에 일렁거린다.
나도 교사가 되리라고 다짐하도록 했던 선생님.
50이 넘은 제자를 아직까지도 일일이 기억하며 칭찬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선생님.
이런 든든한 선생님이 계시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늘 지켜주고 칭찬으로 이끌어 주는 그런 교사, 또 학생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 한번쯤 뵙고 싶어하는 그런 교사가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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