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3, 2010

가을 편지

1980년 5월 18일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던 친구를 올 여름 한국 방문 때, 만나게 되었다.
시를 무척 좋아하던 친구는 3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나왔다.
왁자지껄한 가운데 주머니에서 너덜너덜한 작은 수첩을 꺼내, 시 한편을 읽어 준다.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서늘한 기운에 옷깃을 여미며 /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화려 하지 않은 코스모스처럼/ 풋풋한 가을향기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 그립다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차 한 잔을 마주하며 / 말없이 눈빛만 마주보아도
행복의 미소가 절로 샘솟는 사람

가을날 맑은 하늘빛처럼 / 그윽한 향기가
전해지는 사람이 그립다

찻잔 속에 / 향기가 녹아 들어 / 그윽한 향기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사람

가을엔 / 그런 사람이 그리워진다

산등성이의/ 은빛 억새처럼 / 초라하지 않으면서 /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에 억새처럼 출렁이는 / 은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시를 잘 쓰던 친구라 당연히 친구의 작품인 줄 알고, 안경의 초점을 맞춰 가며 깨알처럼 적힌 시를 천천히 음미하며 낭독하는 중에, 요즘 유행하는 최신식 전화겸용 컴퓨터까지 되는 작은 패드를 손가락으로 밀 듯 무언가에 집중하던 친구가 하는 말, “아! 이 분” 그럴 줄 알았다는 투다.
이외수의 ‘가을엔 맑은 인연이 그립다.’ 란 시였다. 까르르 터지는 웃음은 대학 신입생이라 해도 손색이 없고, 50을 넘긴 중년이란 표현이 무색했다.

늦가을의 파란 하늘을 쳐다 보니 여름에 읽었던 그 시가 생각나며, 함께 한국 학교 교사를 하셨던 박혜서 선생님이 떠올라 그 시를 메일로 보내 드렸더니, 뜨끈 뜨끈하게 도착한 선생님의 마음, 「miss you~ 」라 써 있는 파란 카드와 함께 한편의 시를 선생님도 보내 주셨다.

수확의 가을이 끝나면 / 나무들은 잎을 떨구어
자신들의 시린 발목을 덮는다.
바람이 불면 세월의 편린처럼 / 흩날리는 갈색 엽신들.

모든 사연들은 / 망각의 땅에 묻히고
모든 기억들은 / 허무의 공간 속에 흩어져 버린다.

나무들은 인고의 겨울 속에 / 나신으로 버려진다.

낙엽은 퇴락한 꿈의 조각들로 썩어가지만 / 봄이 되면 다시금 푸른 숲이 된다.

숲의 영혼을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낙엽 / 이외수)

친구가 읽어 준 시와 선생님이 보내 주신 시를 연결하여 몇 번을 읽으며, 가을로 빠져 드는데,
논어 학이편(論語 學而篇)의 명언 중 명언이 기억난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공자 가라사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다.
벗이 있어 생각을 함께 나눔이 이렇게 큰 기쁨이 되어짐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가슴 깊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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