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7, 2010

기쁨아~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오는 키 작은 아이는 반달 눈으로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개구쟁이 남자 친구들이 머리를 만져도, 등을 꾹꾹 찔러도 개의치 않고 가운데 줄, 앞에서 두 번째 자리, (실은 제일 앞자리) 항상 그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는
보기에 손이 또래 아이와는 달랐다.
저 손으로 무엇을 할까? 교사의 궁금증이 커 갈 때 늘 학교에 데려 오던 아버님께서 두툼한 흰 봉투를 하나 주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열어 보지 못하고 며칠을 보내다 한국 신문에 난 기사를 보는데 우리 반에 그 작은 아이 같았다. 주셨던 봉투를 부랴 부랴 열어보니 산호제 머큐리 신문에 실린 기사를 아버님께서 복사해 주신 것이었다. 일곱 살의 작은 아이가 특유의 눈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제치고 활을 쥔 오른 팔은 옆으로 쭉 뻗고 바이올린을 잡은 왼 손은 머리보다 높게 올린 사진은 분명 연주 하던 음악의 최 절정의 순간이 포착된 듯 했다.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고 있으니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가 내 귀에 들렸고, 그들 속에서 나도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예쁘고 통통한 흰 손으로 바이올린을 켜는구나!」무언가 다른 느낌의 작은 아이는 욕심이 많았다. 맡겨진 일은 꼭 하고 만다. 아무리 시끄럽고 장난이 난무해도 그 날 배운 것은 꼭 그 날 소화하고, 숙제를 안 해온 적도 없다.
학교가 끝나면 나이차가 있어 보이는 오빠가 한 손에는 가방을 들어 주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 가곤 했었다.
그 후 아이는 상급 반으로 갔고, 나도 학교를 옮겨 만나는 기회가 없어져, 신문에 나오는 기사마다 나는 관심을 갖고 스크랩을 하면서 아이가 커 가는 모습과 소식을 접 할 수 있었다.
‘Monster’라는 찬사까지 받은 아이, 올 해는 대학을 갈 텐데 궁금해 하던 때에 연락을 받았다. (아버님께서는 나의 연락처를 모르셨기에 우리 교회 사무실을 통해 연락하셨다.)
부녀 합동 음악회, 아버지의 노래와 딸의 바이올린 연주.
읽기만 해도 가슴 벅찬 기쁨이 솟았다.
소개지에는 예전의 그 반달 눈으로 웃고 있는 그 작은 아이는 이제 긴 생머리의 숙녀가 되어 바이올린을 안고, 아버지는 선글라스를 끼고 인자한 웃음으로 자랑스런 딸 옆에 서 계셨다.
그런데, 이렇게 십 년이 넘은 시간을 잊지 않고 연락을 주셨는데, 그 음악회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기쁨이, 그리고 기쁨이 아버님께 너무 죄송했고, 흔치 않은 귀한 음악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워 지금도 보내 주신 소개지만 들여다 보곤 한다.
전액 장학금으로 대학 공부를 떠나는 우리 자랑스런 기쁨이.
선생님에게 기쁨이 되고, 기쁨을 준 것처럼 모든 이들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너의 멋지고 아름다운 미래를 축복하며, 기쁨아~, 사랑해~.
한국말과 한글 잊지 않기를 또한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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