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7, 2010

눈 물

성근이와 성지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인지 여느 학생보다 한국 말을 잘 하고 음식도 한국 음식을 즐겨 먹고, 예의도 깍듯하다.
지난 번 봄 방학 때, 아버지와 스키를 타러 갈 것이라며 좋아하던 두 남매에게 선생님도 눈이 보고 싶다고 했다.
눈을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는 아이, 나는 사진을 가져 와 보여 준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 약속은 지키는 것이라며 약속에 대한 전래 동화인 사자와 토끼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신이 난 아이들, 수업이 끝나면 아빠와 스키 용품을 사러 간다고 수업 시간 끝나기만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이 미안해서, 오늘은 보너스로 숙제가 없다는 말에 환호하며 「고맙습니다」을 연신 해댄다.
「그런데 눈을 어떻게 보여 줄 건데?」란 나의 질문에 아이들은 서로 의논 하다 병에 담아 가져 오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사실 나는 이 곳에서 수업이 끝나고 나가면 잊을 거라고 생각 했다.
일주일에 한번 하는 수업, 요즘 아이들 굉장히 많은 스케줄 감당 하느라 정신 없는데, 신나게 놀다 보면 약속 자체를 잊어 버리겠지 하며, 변명을 하면 대답으로 어떤 동화를 읽어 줄까 했다.
주중에 할머니께 전화가 왔다. 「우리 애들이 눈을 담아 왔는데 다 녹아서 물을 가져 가야겠네요.」 생각지 않은 말씀에 깜짝 놀랐다. 「어머나 세상에~, 나도 잊고 있던 약속이었네」미안함에 이 두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 줄까 또 고민이 생겼다.
눈에 탄 듯 바알간 얼굴로 만난 우리 성근이와 성지, 일단 빅허그 한번 하고, 「어땠어?」 교과서 읽으며 수업 하는 것보다 더 생생한 한글 수업. 말. 하. 기.
「미안해요」을 합창하며 입이 쭈욱 나오며 하는 말, 「아빠가 차 안에 히터를 틀어 눈이 녹았어. 진짜 눈 보여 주고 싶었는데.」「이것도 진짜 눈이야, 선생님은 약속을 지킨 너희들 마음이 더 좋아, 진짜 눈 본 것처럼」「그럼 오늘도 숙제 안 줄 수 있어요?」「공부 열심히 하면」「예~」
일주일에 한 시간 만나서 공부를 하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 주신 할머니께 감사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요즘 아이들 너무 쉽게 잊어 버리고, 잃어 버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조금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커 가는 현실이 아쉽다.
학교에서 반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결같이 하는 말 「걔들은 어리잖아요, 우리도 어릴 땐 그랬어요~」
약속, 어릴 때는 지키는 것, 그러면 반 학생들보다 더 어른인 교사, 부모님들은?
오늘도 냉장고에 넣어 둔 눈(녹은)물을 보니 눈물이 난다.
눈(녹은)물 위에 약속을 지키면서도 미안해 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어른들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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